주간동아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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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 군단’으로 러시아에 반격 나선 우크라이나

공군력 열세 우크라이나, 가성비 좋은 드론으로 러시아 방어선 돌파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3-08-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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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인근에서 드론을 출격시키고 있다. [Ukrinform]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 인근에서 드론을 출격시키고 있다. [Ukrinform]

    러시아 국방부는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 도시와 군사기지를 드론(무인기)으로 잇달아 공격하자 전전긍긍하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 드론은 8월 18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5㎞가량 떨어진 엑스포센터를 공격해 건물 일부를 파손시켰다. 엑스포센터는 대규모 전시관과 다목적 홀 등을 갖춘 시설이다. 모스크바 중심가에는 엑스포센터 같은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가성비 좋은 우크라이나 드론

    모스크바는 5월 크렘린궁에 대한 공격 시도 이후 우크라이나군의 잇단 드론 공습으로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크렘린궁은 드론의 모스크바 공격에 상당한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은 올해 러시아 본토와 자국 러시아 점령지를 겨냥해 120여 차례 드론 공격을 감행했다. 이 중 모스크바와 인근 지역에 대한 드론 공격도 30여 차례나 됐다.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의 주요 도시를 드론으로 공격하는 이유는 러시아 국민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본토를 노려 국민 불안을 자극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러시아 전문가 케이어 자일스 연구원은 “우크라이나는 전쟁에 관한 러시아 국민의 여론이 종전을 위한 핵심 요소 중 하나임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모스크바에 대한 드론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교묘한 심리전”이라고 표현했다. 유리 이나트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도 “전쟁과 무관하게 지내며 걱정하지 않던 러시아 국민에게도 이제 전쟁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군의 러시아 본토 드론 공격은 아직 공포를 일으키는 정도다. 대규모 인명 피해와 시설 파괴를 초래하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탄약고와 유류창고 같은 군사시설을 공격해 큰 화재가 발생하는 등 상당한 피해를 입힌 경우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한 ‘대반격’을 시작하고 2개월 반이 지나면서 드론을 활용한 공격을 대폭 늘리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 확대는 무엇보다 드론의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미사일 등 다른 무기에 비해 제조비용이 저렴하고 대량 생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파괴력도 상당하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군 드론 부대 아에로로즈비드카(Aerorozvidka)가 러시아 보병전투차량 BMP-3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회전 날개 8개짜리 드론 ‘옥토콥터’의 제작비는 1만 달러(약 1338만 원) 정도다. 반면 드론 공격의 목표물인 BMP-3는 한 대에 80만 달러(약 10억7000만 원)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군은 옥토콥터에 100달러(약 13만3800원)짜리 수류탄 한 발을 장착해 BMP-3에 접근한 뒤 투하시켜 파괴한다. 우크라이나군 드론 조종사인 예벤 일병은 “우리 군이 사용하는 드론은 대부분 수백 달러에서 1만 달러 수준”이라며 “제작비는 저렴하지만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예벤 일병은 “드론을 이용하면 적 후방까지 수㎞를 날아가 중요 목표물을 파괴하거나, 경계심이 풀린 러시아군 병사들을 향해 폭탄을 손쉽게 투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군에 비해 공군력이 훨씬 약세인 우크라이나군 입장에서는 드론 공격이 적 방어선을 뚫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7월 드론 1700대를 최전선에 투입했다. 이 드론들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드론 군단(Army of Drones)’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자체적으로 개발·생산한 것이다. 개발 기반이 부족하던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2월 러시아군 침공 초기 사거리 150㎞인 터키산 TB2 드론을 수입해 사용했다. 하지만 드론 군단 프로젝트에 따라 우크라이나 드론 제조업체 40여 곳이 정찰과 공격용 드론을 속속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 드론에 들어가는 부품 중 90%는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이 운용하는 28개 모델 중 상당수는 속도가 평균 100㎞에 달한다. 일부 모델은 작전 반경이 최대 1000㎞나 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우크라이나군 드론은 기부금으로 제작됐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재건단체 ‘유나이티드 24’가 그동안 모금 활동을 통해 드론 제작비용을 충당해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연말까지 드론 20만 대 생산을 목표로 박차를 가하고 있다. 데니스 슈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드론 생산 투자를 지난해 1억800만 달러(약 1445억 원)의 10배 수준인 10억 달러(약 1조4000억 원)로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에서 드론을 제조하는 업체도 200여 개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선 이미 소규모 스타트업 수백 곳이 새로운 드론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드론 생산 및 조달 총책임자인 미하일로 페드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 겸 디지털혁신장관은 “드론 군단을 대폭 확대하고자 드론 조종사 양성에 적극 나설 것”이라면서 “현재 1만여 명 수준인 드론 조종사를 수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드론 부대도 17개에서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해상 봉쇄한 드론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작전에 투입하고 있는 드론들은 성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원격 조종 초소형 무인 육상 드론 ‘타르간’(우크라이나어로 바퀴벌레라는 뜻)이 있다. 타르간은 무선 조종으로 최대 1.5㎞ 떨어진 적진지 근처까지 다가가 지뢰를 설치할 수 있다. 바퀴 4개로 이동하는 타르간은 크기가 작아 민첩한 데다, 숲이나 덤불에서도 잘 움직인다. 무게는 18㎏에 불과하지만 최대 30㎏에 달하는 각종 보급품과 무기를 운반할 수 있다.

    원격 조종 해상 드론 ‘시 베이비(Sea Baby)’도 최근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길이 5m, 최대 무게 1000㎏인 이 드론은 폭발물 탑재량이 TNT(트라이나이트로톨루엔) 최대 400㎏, 항속거리는 800㎞, 최대속도는 시속 80㎞다. 날렵한 선박 모양으로 폭이 넓은 카누와 비슷하다. 이 해상 드론은 적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적군 감시망을 피해 해군기지와 함정을 타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적 해군을 해안에 묶어두고 자국 해안에서 피해가 발생할 위험을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사실상 해상 봉쇄가 가능한 셈이다.


    우크라이나군의 해상 드론 ‘시 베이비’. [Ukraine Security Service]

    우크라이나군의 해상 드론 ‘시 베이비’. [Ukraine Security Service]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해상 드론을 실전에 투입했다. 우크라이나군은 8월 4일 흑해와 아조우해를 잇는 크림반도 인근 케르치해협 남쪽에서 러시아 유조선 시그(SIG)호를 해상 드론으로 공격해 선체에 구멍을 냈다. 이 선박은 5000t 규모로 러시아 최대 유조선 중 하나다. 2014년 건조 이래 러시아군의 연료 공급용으로 활용돼왔다.

    우크라이나군은 8월 3일 흑해 노보로시스크항 인근에 있던 러시아 해군 상륙함 올레네고르스키 고르냐크함도 해상 드론으로 공격했다. 고르냐크함은 크게 손상됐고 작전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됐다. 노보로시스크항은 흑해 동쪽 러시아 영토에 있는 항구로, 러시아의 석유·곡물 수출 허브다. 특히 이곳에선 러시아산 원유와 카자흐스탄산 원유가 매일 평균 180만 배럴씩 수출되고 있다. 이는 세계 공급량의 2%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군은 7월 17일에도 크림대교를 해상 드론으로 공격해 상당한 피해를 입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발자는 “이 드론은 완전히 우크라이나 제품”이라며 “이 드론의 속도는 현재 흑해 지역 어떤 선박보다 빠르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앞으로 흑해에서 해상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에 대한 공격을 더욱 확대할 것이 분명하다.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를 겨냥한 작전 반경 1000㎞의 드론 ‘보버(Bober)’와 ‘UJ-22 에어본’도 개발해 투입하고 있다. 저스틴 브롱크 영국 왕립군사연구소(RUSI) 수석연구원은 “보버는 비교적 작은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것으로 보이지만 항속거리는 1000㎞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보버가 러시아군 방공망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드론 조종사 양성 나선 러시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격추된 러시아의 이란제 자폭 드론 샤헤드-136 옆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격추된 러시아의 이란제 자폭 드론 샤헤드-136 옆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맞서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800㎞ 떨어진 비밀 드론 제조시설에서 이란제 자폭 드론을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이 시설에선 지난해 11월 이란과 러시아가 체결한 계약에 따라 2025년 9월까지 이란제 자폭 드론 6000대가 생산될 예정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8월 7일 국영방산업체 로스테흐의 세르게이 체메조프 최고경영자(CEO)에게 자폭 드론 생산 강화를 지시했다. 러시아가 이란제 자폭 드론 생산을 본격화하면 우크라이나에는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는 그동안 이란으로부터 수입한 자폭 드론 샤헤드-136 2000대를 전장에 투입해왔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국제과학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러시아가 내년부터 한 번에 수백 대씩 샤헤드-136을 날려 우크라이나 내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드론 조종사 양성에도 나서고 있다. 세르게이 크라프초프 러시아 교육장관은 “직업학교 등에 최대이륙중량 30㎏ 이하 무인기 체계 조종법 교육과정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맥락에서 볼 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사상 유례없는 ‘드론 전쟁’을 치열하게 벌일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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