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1

2007.06.26

숙소에서 천진난만 공놀이 아, 이래서 앙리였구나

  • 김성규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kimsk@donga.com

    입력2007-06-25 11:0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숙소에서 천진난만 공놀이 아, 이래서 앙리였구나

    6월1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프랑스 축구스타 티에리 앙리.

    단 하나의 모습이나 말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그 사람의 전체 이미지가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6월 초 한국을 다녀간 프랑스 출신 축구스타 티에리 앙리(30·아스날)가 그랬다.

    앙리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네 차례나 득점왕에 오르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 두 번이나 뽑힌 현역 세계 최고의 골잡이다. 또 한 해 200억원 가까이 수입을 올리는 축구 갑부다.

    스포츠용품 제조업체 리복이 최근 축구화 시장에 새롭게 진출하면서 간판 모델로 앙리를 내세웠고, 앙리는 이 회사의 아시아 지역 마케팅을 돕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6월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서울 호텔 회의실에 마련된 앙리의 공식 기자회견은 수백명의 취재진이 모일 만큼 성대했고, 그 규모만큼이나 앙리도 까마득히 높아 보였다.

    공식 기자회견이 끝난 뒤 몇몇 주요 매체 기자들을 위한 비공식 인터뷰가 있었는데, 문제의 모습을 그때 목격했다. 인터뷰가 약속된 방으로 무심코 들어간 나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이용해 커다란 소파에 누워 축구공을 갖고 놀던 앙리의 지극히 사적인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고백하건대 ‘다 큰 어른이 축구공을 갖고 놀며 저렇게 해맑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만큼 참으로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곧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그는 사려 깊고 재치 넘쳤으며, 무엇보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특히 1997년 말레이시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때 프랑스 대표로 한국 팀과 조별 예선경기를 벌였던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그는 기자들에게 “그때 그 한국 친구들은 지금도 축구를 하고 있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봐 또 한 번 감동을 줬다.

    앙리는 이후 국내 인기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인간적 면모를 한국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하지만 나에게 앙리는 작은 호텔 방에서 공을 갖고 놀던 그 모습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자신의 일을 즐겨야만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은 진리인 듯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