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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우주 주권 vs 기술 속국 갈림길에 섰다”

민경주 항공우주硏 나로우주센터장 “위성 발사 능력이 국가 안위와 직결”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우주 주권 vs 기술 속국 갈림길에 섰다”

“우주 주권 vs 기술 속국 갈림길에 섰다”

민경주 나로우주센터장.

민경주(55)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 나로우주센터장은 미국에서 고분자물리학을 공부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다 1989년 ‘해외 유치 과학자’로 한국에 돌아왔다. 가족은 “보장된 미래를 왜 포기하느냐”며 귀국을 말렸지만, 그는 조국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남부럽지 않던 미국 생활을 내던지고 조국을 위해 몸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국에 돌아온 뒤 그는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일하며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 그는 미국의 미사일 기술을 가까이서 지켜본 거의 유일한 한국인 과학자다. 그러나 꿈을 가슴 한 켠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협정을 비롯한 군사적, 정치적 제약 때문이다.

그는 1991년 KARI로 일터를 옮겼고, 이곳에서 고체연료를 쓰는 우주로켓 KSR-I과 KSR-II를 개발했다. KSR-I은 1단 로켓으로 1993년 6월 발사됐고, KSR-II는 2단 로켓으로 1998년 6월 발사돼 단 분리에 성공했다. 그는 “소형이지만 로켓이 하늘로 치솟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웠다”고 회고한다.

발사대 완공 23개월 예측 깨고 1년여 만에 결실 눈앞

그의 꿈은 지금 외나로도(전남 고흥군 봉래면 예내리)에 가 있다. “우리의 우주기술로 대한민국의 강토를 보호하는 것”이 그의 바람. 그의 소망이 익어가는 강토(疆土)의 남쪽 끝 외나로도의 풍광은 눈부셨다. 오후 햇살은 명주처럼 빛났고, 바닷바람은 파도를 일순 날려버렸다. 꽃이 흐르고 바다가 열리는(花流海開) 이 땅에서 우주산업의 신기원(新紀元)이 열리고 있다.



10, 9, 8 … 3, 2, 1. 발사!

12월21일 오후 6시, ‘우리 땅’인 북위 34.26도, 동경 127.3도에서 ‘우리 발사체’에 실린 ‘우리 위성’이 우주로 솟구쳐 오른다. 어스름에 위성을 발사하는 이유는 태양전지가 가동되는 시점에 맞춰 햇빛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우주로 오르는 ‘문’[론칭 윈도(launching window)라 불린다]이 열리는 때는 오후 4시부터 7시까지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위성을 발사하면 위성이 남극을 넘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요. 그러곤 태양을 바라보면서 전지판을 펴는 거죠. 12월21일을 디데이로 정했지만, 날씨에 따라 발사 날짜는 바뀔 수 있어요. 우주 선진국들도 새로운 발사체를 이용한 첫 발사에 성공할 확률이 27.2%에 그쳐요. 물론 그런 일은 없어야겠지만, 실패할 수도 있어요.”

그는 한국의 첫 우주인으로 기록된 이소연 박사를 실은 소유즈호가 지구 밖으로 날아오르는 광경을 외나로도에서 TV로 지켜봤다. 이 박사가 우주로 ‘발사’된 4월8일 나로우주센터 연구원들은 TV 중계를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한국의 첫 우주인과 관련해 “비행 참여자에 가깝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소연 박사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웅변해준 거예요. 과학실험을 할 수 있는 우주인을 배출하는 일은 우주 선진국으로 가는 필수조건이죠. 우주인 탄생으로 우주산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관심이 고조된 것도 큰 성과이고요. 이명박 대통령도 ‘우주국가 시대를 열게 됐으니 10년 후에는 7대 우주강국을 목표로 하게 됐다’고 밝혔잖아요.”

2003년 8월 첫 삽을 뜬 500만㎡ 규모의 나로우주센터에는 현재 △위성발사 통제시설 △레이더 및 원격자료 수신시설 △광학추적 시설 △우주체험관이 들어서 있다. △발사장 △발사대를 제외한 모든 시설이 완공됐다고 보면 된다. 지상기계설비, 추진체공급설비, 관재설비로 이뤄진 발사대 건설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우주 주권 vs 기술 속국 갈림길에 섰다”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 박사(오른쪽).

- 나로우주센터는 언제 준공되나요?

“발사장이 완공되는 9월 초 준공식을 할 예정이에요. 늦어진 이유는 러시아가 발사장 설계도를 늦게 넘겨줬기 때문이죠. 나로우주센터가 완공되면 한국은 세계에서 13번째로 우주센터를 보유한 국가가 되는 거예요.”

러시아는 지난해 3월 2만 쪽이 넘는 설계자료를 한국에 넘겼다. 지금까지 축적된 러시아의 노하우가 한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트럭 2대 분량의 이 설계자료를 바탕으로 KARI와 현대중공업이 한국의 조건에 맞는 발사대를 제작하고 있다. 러시아 기술자들은 설계자료를 주면서 완공까지 23개월이 걸릴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이 1년여 만에 발사대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 러시아인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어요. 우주산업은 가장 늦게 시작해 가장 빠르게 세계 수준을 따라잡고 있는 분야죠. 러시아에서 기술을 들여오는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거예요. 우리가 계약할 당시의 러시아 경제는 오일 머니로 호황인 지금과는 많이 달랐거든요.”

발사체 개발은 우주 선진국이 기술이전을 꺼리는 분야다. 미국이 주도하는 MTCR(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미사일 기술 통제체제)는 사거리 300km, 탄두중량 500kg급 미사일의 수출과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인공위성 발사체를 제작하는 경우에는 MTCR 회원국에 한해 기술이전을 허락하고 있다.

‘우리 땅’에서 ‘우리 발사체’로 ‘우리 위성’을 쏘아올리는 쾌거는 당초 지난해 10월을 목표로 진행됐지만, 러시아와의 협조가 더뎌지면서 올 12월로 미뤄진 것이다.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우려한 미국 국무부가 발사체 기술의 한국 이전을 반대하는 서한을 러시아에 보냈다는 내용이 정부의 대외비보고서에 담기기도 했다.

“그건 사실과 다를 거예요. 미국과 러시아 간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보진 않아요.”

“우주 주권 vs 기술 속국 갈림길에 섰다”

KARI가 개발한 KSR-Ш.

우주 선진국들 발사체 개발기술 이전 꺼려

발사체 기술은 ICBM 기술과 거의 유사하다. 로켓에 위성을 실어 우주로 쏘면 발사체가, 핵무기를 실어 다른 나라로 쏘면 핵미사일이 된다. 고고도 정지위성을 쏘아올리는 나라는 ICBM을 확보한 것이다. 1998년 북한은 인공위성인 광명성 1호를 로켓에 실어 발사했는데, 그때 사용된 발사체가 대포동 1호(북한에선 백두산 1호라 부른다)다.

“2010년 이후로 예정됐던 위성자력 발사가 북한의 대포동 1호 발사로 2005년으로 앞당겨졌더랬어요. 하지만 러시아가 기술이전을 미루면서 결국 올해 말로 미뤄졌죠.”

12월 외나로도에서 발사되는 위성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한국이 개발 중인 KSLV-I 발사체에 실리게 된다. KSLV-I은 2단으로 이뤄지는데,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1단 로켓은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2단 로켓은 KARI가 자체 개발했다.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1단 로켓 수준의 발사체 제작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한국이 풀어야 할 난제다.

“평균 40명의 러시아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어요. 그중 상당수가 보안요원이라더군요. 우리 연구원들은 그들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보드카잔을 기울이며 맨투맨으로 접촉하고 있어요.”

- 외나로도에서 위성을 쏘아올리는 일의 의미는 뭔가요? 일각에선 돈을 주고 외국에서 위성을 발사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주장하는데요.

“우주 주권을 확보하는 초석을 쌓는 거예요. 우주시대를 맞이해 영토 안에 독자적인 우주센터를 보유하고, 발사체 기술을 갖는 것은 주권 확보의 문제죠. 우리가 원할 때 언제든지 위성을 발사하는 능력은 국가의 미래, 안위와 직결되는 일이고요. 그렇지 못하면 우주시대에 기술 속국이 될 수밖에 없어요. 구한말의 우를 반복해서는 안 되잖아요.”

“우주 주권 vs 기술 속국 갈림길에 섰다”

나로우주센터 추적레이더동(왼쪽)과 발사대 건설 현장(오른쪽).

한미 미사일협정이 KSLV-Ⅱ 개발 걸림돌

우주를 활용해 지구에서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우주 선진국 간 경쟁은 치열하다. 미국이 추진 중인 MD(미사일 방어)가 대표적인 우주지배 전략. 특히 동북아시아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일본이 충돌하는 우주전쟁의 최전선이다. 지난해 1월 중국은 ICBM을 발사해 자국의 낡은 기상위성을 격추했는데, 이는 미국이 우주에 띄워놓은 위성을 요격하는 연습이었다는 분석이다.

위성이 공격을 받으면 위성과 연계된 첨단무기는 ‘장님’이 된다. 미국이 2003년 지상과 우주에서 자국 위성을 잠재적 적으로부터 보호(혹은 적의 위성을 공격)하는 제614 우주정보대를 창설한 까닭이다. 미국과 중국은 상대국의 ICBM이 자국 위성을 요격하려 할 때 위성의 궤도를 바꾸는 기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중국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국가안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주”라고 선언했다. 미국 우주사령부는 정책성명서 ‘비전 2020’을 통해 “펜타곤(국방부)의 임무는 잠재적 반미 세계에서 벌어지는 우주 차원의 군사활동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다. 정책의 핵심목표는 다른 국가가 우주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고 밝혔다.

우주 주권을 확보하려면 위성체 제작 능력, 발사체 개발 능력, 영토 내 발사장 구축 등 3축이 완성돼야 한다. 한국의 위성 제작과 위성 운용기술은 후발주자 가운데 상위권. 우주센터가 사실상 완공되면서 발사장도 확보됐다. 그러나 독자적인 발사체 개발은 선진국의 견제 등으로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12월 KSLV-I에 위성을 실어 발사하면 독자적으로 위성을 쏘아올린 아홉 번째 국가가 돼요. 2017년엔 독자기술로 KSLV-II를 개발하는 게 목표고요. KSLV-II는 1.5t급 실용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발사체예요. KSLV-II를 개발한 뒤 성공적으로 실용위성을 쏘아올려야만 우주로의 접근권을 확보할 수 있죠.”

- 영토 안에 우주센터를 확보하고도 위성을 발사하지 못한 나라가 있어요. 강대국의 견제 때문인 것 같은데요.

“브라질이 대표적이에요.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는 것을 꺼리는 외부세력의 견제로 발사에 실패했죠. 스파이가 오작동을 일으키게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KSLV-II 개발엔 제약이 적지 않다. 한미 미사일협정에 따라 한국은 총출력 100만 파운드 범위 안에서만 미사일 개발이 가능하다. 100kg의 소형 저궤도 위성이 실리는 KSLV-I은 이 기준에 맞춘 것이다. 발사체 개발 분야에서는 족쇄가 어느 정도 풀렸으나, 군사용으로 전용하는 데 유리한 고체연료 방식으로는 연구와 개발이 어렵다. KSLV-II의 1, 2단 로켓이 액체연료로 개발되는 까닭이다.

외나로도의 꿈★은 장대하다. KARI는 2026년까지 우주 탐사용 위성발사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2017~2020년 달 탐사 위성(궤도선) 1호를 제작하고, 2021~2025년 달 탐사 위성(착륙선) 2호를 개발한다는 복안도 세워놨다. 2026년 어느 날 강토의 남쪽 끝을 박차고 오르는 달 탐사 위성을 보고 싶다.



주간동아 2008.05.27 637호 (p54~56)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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