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1

2007.06.26

프랑켄슈타인과 유전자 결정론

  • 김정곤 학림논술연구소 상임연구원

    입력2007-06-25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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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켄슈타인과 유전자 결정론

    유전자보다 사회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영화 ‘프랑켄슈타인’.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은 소녀 마리아와 함께 강물에 꽃을 띄우며 논다. 잠시 후 더 띄울 꽃이 없자 괴물은 마리아를 들어 강물에 던진다. 영화 개봉 당시 매우 충격적이라는 이유로 편집됐던 장면이다. 오늘날 이 장면이 다시 삽입된 영화를 보면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인 동시에 이성이 발달하지 않은 아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쓴 이후 이 소설은 과학문명이나 인간의 오만함을 상징하는 대표 명사가 됐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인간의 시체에 전기 자극을 주어 유기체로 만드는 일은 공상과학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인간의 뇌는 혈액 공급이 끊기면 몇 분 안에 손상되기 시작하며, 한번 손상된 뇌는 회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인간의 형상을 모방한 신화에서 시작해 20세기를 지나면서 실현 가능할 것처럼 들렸고, 오늘날에는 합성생물을 이용한 유기체 창조가 가능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실 오늘날의 유전자 연구는 알츠하이머병, 헌팅턴 무도병, 낭포성 섬유증, 겸형적혈구 빈혈증 같은 유전병에 대한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안고 등장했다. 그런데 정작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황우석 소동에서도 정말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이 소동에서 배아복제가 실제로 성공했느냐, 아니면 포토샵에서만 가능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이 소동의 성과 아닌 성과는 ‘유전자 결정론’이 ‘금전적 이득’이라는 문제와 결합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를 뒤흔든 소동 속에서도 인간의 모든 것은 유전자에 내포돼 있다는 ‘유전자 결정론’이 자리잡았다. 즉 인간의 모든 측면은 하나의 세포 조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는 DNA 검사가 각 개인과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아직까지 학계에서 유효성 논쟁이 일고 있다는 사실은 빠졌다. 대신 각 개인은 가계의 특정 유전자를 이어받는다는 주장이 자리잡았다.

    그들은 미국인 중 흑인이 백인보다 평균 지능지수가 15% 정도 낮다고 보고하고, 이 차이는 백인들의 좀더 좋은 교육환경보다는 두 집단 간의 지능에 관련된 유전적 차이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그들이 산출한 백인 집단의 지능에 대한 높은 유전율에 근거한 것이었다.-동국대 2007학년도 수시 1학기



    유전자 결정론은 ‘우성 유전자’의 존재를 단정한다. 정신(뇌)과 육체 모두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즉 공부를 잘하고, 건장하며, 돈을 많이 버는 것 등이 모두 유전자로 설명된다. 결정학의 기초조차 몰랐던 왓슨과 크릭이 발견한 DNA 나선구조는 하나의 진실로 자리잡았다.

    다시 영화 ‘프랑켄슈타인’으로 돌아가 꽃 대신 소녀를 강물에 던진 괴물을 상기해보자. 영화는 메리 셸리가 원작 소설을 쓰던 기계론 시대가 아닌,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비롯된 생물학·유전학 시대에 만들어졌다. 적자생존 시대에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한 괴물은 완벽한 ‘백지상태’로 등장한다. 더구나 영화에서 그의 육체는 각종 시체의 몸을 짜깁기한 것이며, 조수의 실수로 뇌는 살인자의 뇌로 바뀐다.

    그러나 괴물은 살인마가 아니다. 그는 단지 사회화되지 않은 존재일 뿐이다. 이 영화를 감독한 제임스 웨일은 유전자 결정론이 아닌 사회 결정론의 관점에서 괴물의 존재를 ‘꽃과 소녀’라는 매우 상징적인 방식으로 그려냈다.

    물론 인간은 유전자의 영향을 지닌 채 태어난다. 모든 게 사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발생잡음(developmental noise)의 존재는 완전히 배제된 채 한 개인, 한 집단의 우수성이 유전자로 결정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왜 히틀러는 ‘우수한 아리아인’을 주장했을까? 정말 백인은 흑인보다 뛰어난 두뇌를 타고났을까? 한국 사회는 왜 가장 우수한 민족을 열망할까?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우수한 유전자’가 가져올 이익은 과연 무엇인가?

    - 연관 기출문제 :동국대 2007년 수시1 자연 ‘환경결정론의 입장에서 인간 지능에 미치는 유전자 결정론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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