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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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거나 혹은 친밀하거나 관계의 시간

  • 이병희 미술평론가

    입력2007-05-28 12: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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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낯설거나 혹은 친밀하거나 관계의 시간
    천경우는 인물을 찍는다. 때로 사진에는 초상사진처럼 한 명의 인물이 촬영되기도 하고(‘Believing is Seeing’, 2006~2007), 두 명이 마주 보면서 기대 있기도 하고(‘VERSUS’, 2006~2007)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기도 하다(‘Pseudonym’, 2004). 그런데 이들은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처럼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천경우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독일 브레멘에 살면서 유럽을 주무대로 사진작업을 하는 작가다. 천경우는 인물을 찍을 때 장시간 노출하는 기법을 이용한다. 그러니까 그는 어떤 ‘시간’을 찍는다. 정확히 말하면 사진 대상 인물에게 고유한 어떤 시간 동안의 미묘한 인상, 이미지, 교감들, 그 흔적을 촬영하는 것이다.

    초상사진처럼 한 인물을 촬영한 일련의 사진인 ‘Believing is Seeing’에서 인물들은 별로 특징적이지 않은 배경을 바탕으로 앉아 있다. 그런데 이들은 오랫동안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탓에 얼굴 부분은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고, 옷 색깔만 비교적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온 초상사진과 달리 이 작품의 인물들은 색깔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아니면 흐릿한 윤곽선이나 미묘한 움직임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인물 노출 … 고유한 어떤 시간 촬영

    또한 ‘VERSUS’와 ‘Pseudonym’은 천경우가 지금까지 탐색해온 ‘관계’에 대한 작업의 일환이다. 마치 ‘인(人)’자의 형상처럼 두 인물이 기대어 포개진 사진은 두 인물이 서로의 나이를 더한 만큼의 시간-분(두 사람이 각각 30세와 34세면 64분) 동안 기대 있게 한 뒤 촬영한 작품이다. 기대 있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어색함을 겪기도 하고 서로 버티기 힘든 순간들을 견뎌야 한다. 그렇다고 서로에게 완전히 기대지도 못하면서 어색하거나 친밀하거나 모호한 협동과 교류 과정을 겪는다.



    천경우의 사진에서 ‘관계’란 이렇듯 주체와 타자에게 서로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주체와 타자는 서로 동일시하거나 적대시하기도 하면서 의존적일 수도, 폭력적일 수도 있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천경우의 사진에서 그러한 관계에 내재된 여러 가지 다층적 교감의 움직임을 본다. ‘관계’를 찍은 사진들, 그 속의 ‘관계’에는 지식, 언어나 이미지를 통한 소통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예를 들어 감성, 정서적 유대감, 일시적 교감, 일시적인 신뢰나 친밀함, 또는 어색함, 껄끄러움, 낯섦이나 폭력적인 것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감이 내포됐다. 6월17일까지, 가인갤러리. 02-394-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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