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8

2006.08.15

방송 나간 집, 규모 큰 집 ‘일단 꽝’!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발해농원 대표 ceo@bohaifarm.com

    입력2006-08-09 17: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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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나간 집, 규모 큰 집 ‘일단 꽝’!

    재래시장의 먹자골목에선 특색 있는 향토음식점을 찾을 확률이 비교적 높다.

    일반인들이 맛집을 찾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또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는다. 그러나 맛 칼럼니스트는 이런 식으로 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남이 해놓은 것을 재탕, 삼탕하라고 맛 칼럼니스트가 있는 게 아니다.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한다. 자, 나의 헤딩법이다.

    첫째, 현지인에게 물어라. 한 지역에서 식당에 관한 정보를 누가 가장 많이 알고 있을까. 당연히 음식업중앙회 같은 단체의 지부가 첫째일 것이다. 그러나 지부가 지역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자칫 지역 업주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경우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렵다. 그 다음으로는 지자체의 위생계 직원이다(문화공보실 직원도 정보량이 많지만, 음식업체 관리는 위생계에서 하므로 더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공무원들의 태도가 예전과 달리 매우 친절하다. 이런 질문이 가장 효과적이다. “위생계 직원들은 어느 식당에서 밥 먹나요?”

    휴일이라 관공서가 쉰다면 시장통의 큰 가게 주인에게 묻는 것도 요령이다. 물을 때는 꼭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 “신문이나 방송에 난 데 말고, 이 동네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을 알려주세요.”

    둘째, 작은 식당일수록 음식 맛이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 묘하다. 식당이 크면 음식 맛도 더 좋은 줄 안다. 내가 사는 일산 신도시에서는 식당들의 규모 경쟁이 그야말로 가관이다. 수백억 규모의 식당도 있다. 그런데 거기서 정작 무얼 파느냐 하면, 설렁탕과 싸구려 회, 동네 배달 전문 식당 수준의 중국음식이다. 주인 말이 이렇다. “뭔가 있어 보여야 손님이 온다고.” 정말 손님은 미어터질 만큼 많다. 도대체 식당을 먹으러 가는 건지, 음식을 먹으러 가는 건지.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보거나 재래시장에서 찾아라



    어떤 요리사에게 “하루 저녁에 요리사 한 명이 받을 수 있는 손님의 수로 몇 명이 적당한가”를 물은 적이 있다. 최선을 다해 음식을 내놓을 수 있는 손님의 수를 말하는 것이다. 일식이든 양식이든 한식이든 하나같이 “두 테이블, 그러니까 여덟 명 정도”라고 말했다. 미리 해놓은 음식을 공장에서 찍듯이 내는 음식, 대형 식당들 대부분이 그렇다. 요리하는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 정말 맛있는 음식이고, 이런 음식은 규모가 작을수록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셋째, 나 잘났다 동네방네 떠드는 식당은 피하라. 언론매체가 선정한 맛있는 집, 방송 출연 따위의 글을 닥지닥지 붙여둔 집은 일단 ‘꽝’이다. 물론 신문이나 방송에 소개된 집들 중에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음식점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식당들은 한마디로 수준 이하다. 신문과 방송 관계자들도 나름대로 맛있는 집이라고 판단해서 취재를 했을 것이므로 입맛 차이일 뿐이지 싶겠지만, 순수한 취재보다는 기사형 광고를 신문에 게재한 뒤 이를 이용하는 음식점, 또 맛보다는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특이한 점 덕에 방송된 것을 맛있는 집으로 선정됐다고 홍보하는 음식점이 더 많다. 음식을 정말 잘하는 집은 신문이나 방송에 나고도 이를 알리지 않는다. 경험상, 음식 잘하는 사람들은 참 겸손하다.

    넷째, 시장의 ‘먹자골목’을 찾아라. 우리나라의 모든 것이 그렇지만, 음식 맛의 획일화는 심각한 문제다. 바로 서울 중심의 획일화다. 경상도에 가도 서울 음식을 먹고 전라도에 가도 서울 음식을 먹게 될 때가 흔하다. 특히 ‘모범업소’ 같은 간판이 붙은 지방 대형 식당들의 음식은 대부분 서울화돼 내가 지금 어디에서 밥을 먹는지 착각하게 될 정도다.

    식당에 대한 정보 없이 어디를 가게 되었다면, 근처 시장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재래시장이면 어디든 ‘먹자골목’이 있는데, 이곳 음식들은 아직 중앙화되지 않은 맛을 낼 확률이 높다. 특히 시장 귀퉁이 조그만 좌판에서는 그 지역에서도 사라져가는 향토 음식을 발견할 수도 있는데, 이게 진짜 최고의 맛이다.

    다섯째, 문화적 미맹에서 벗어나라. 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색맹이라고 하는 것처럼 맛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을 미맹(味盲)이라고 한다. 이는 생리적 이상 때문인데, 선천적으로 음식 맛을 느낄 수 없다니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문화적 미맹’도 있다. 항상 먹는 것만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또 제 입에 맞지 않으면 맛없는 음식으로 여긴다. 이런 문화적 미맹 탓에 지방마다 식당마다 특색 있는 맛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진정한 미식가는 어떤 의미에서 악식가이기도 하다. 새로운 맛에 대한 도전정신이 없으면 맛있는 식당을 코앞에 두고도 지나칠 수밖에 없다. 우연히 지나치는 식당 간판에 ‘닭대가리꼬치구이’ 같은 메뉴가 써 있으면 무조건 들어가서 먹어보라. 이게 맛있는 집 찾는 최상의 요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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