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8

2006.08.15

거친 포지션에 왜 흑인이 많을까

  • 최성욱 스포츠 칼럼니스트 sungwook@kr.yahoo - inc.com

    입력2006-08-09 16:1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국 스포츠를 보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흑인 선수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중요한 포지션은 어김없이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NFL(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만 보더라도 팀을 진두지휘하는 쿼터백의 경우 백인들이 많다. 반면 와이드 리시버 등 공을 받고, 뛰고, 태클을 거는 거친 포지션은 대개 흑인들 몫이다.

    야구에서도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투수와 포수엔 백인들이 많다. 아니, 바꿔 말해 흑인 투수나 흑인 포수는 많지 않다. 흑인들은 대부분 외야수로 뛴다. 농구에서도 마찬가지. 지금은 덜하지만 게임 전체를 조율하는 포지션인 가드는 대체로 백인들 몫이었다.

    백인 지도자들의 교묘한 인종차별 여전

    왜 그럴까? 백인들은 리더십이 있고 흑인들은 그런 능력이 없어서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백인은 우월하다는 암묵적인 편견에서 비롯됐고, 선수 구성의 전권을 쥐고 있는 지도자들 가운데 백인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인종차별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오늘날 흑인이 미국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2%. 그런데 전체 NBA(북미프로농구리그)의 78%가 흑인이고 NFL도 65%가 흑인이다. 하지만 이렇게 흑인 선수들이 많은데도 구단주, 단장, 감독, 심판, 구단 직원, 해설자, 기자 등 경기 주변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포지션에는 여전히 백인이 많다. 선수를 선발하고, 훈련시키고, 엔트리를 짜는 감독도 대부분 백인이다. NFL은 무려 94%가 백인 감독이고, 흑인 선수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NBA에서도 감독의 절반 이상은 백인이다. 이런 ‘주변 환경’은 그라운드 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로 이어진다. 즉 팀을 리드하는 좋은 포지션은 백인들 차지이고, 허드렛일을 하는 포지션은 으레 흑인들에게 돌아간다.



    미식축구의 쿼터백이 가장 좋은 예다. 미식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쿼터백은 전체 작전을 지휘하는 것은 물론 공을 분배하고 패스하는 역할로, 팀의 운명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포지션은 항상 백인들 몫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NFL 팀 쿼터백의 99%가 백인이었다. 이 수치는 2002년 76%로 떨어졌고 최근 들어 마이클 빅(애틀랜타) 등 스타급 흑인 쿼터백의 등장으로 인식이 조금 바뀌고는 있지만 여전히 백인들 몫으로 남아 있다. 반면 흑인들은 주로 패스를 받거나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돌파하는 포지션에 기용된다. 또 재미있는 사실은 수비를 전체적으로 리드하는 역할인 센터 포지션도 백인들이 무려 83%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투수의 경우 70%가량이 백인이고, 흑인은 고작 3%에 지나지 않는다. 포수 또한 메이저리그 전체의 61%가 백인이고 흑인은 1%밖에 안 된다. 반면 흑인 선수들은 대부분 외야수 훈련을 받는다.

    본래 NBA 초창기인 50~60년대만 해도 팀의 공격을 전체적으로 조율하는 가드는 백인들의 몫이었다. 그러다 농구를 하는 흑인들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이 포지션도 결국 흑인들에게로 돌아간 것이지, 만약 백인과 흑인 선수 비율이 50대 50이었다면 아직도 가드 포지션은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공식적인 인종차별은 철폐됐지만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은 미국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만 그 ‘수법’이 더욱 교묘해질 뿐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