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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委 조사만 하다 강산 변할라

인력 부족으로 접수사건 처리에 10여 년 걸릴 판…관련 시민단체들 ‘발 동동’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진실화해委 조사만 하다 강산 변할라

진실화해委 조사만 하다 강산 변할라

7월18일 진실화해위 사무실에서 조사인력 증원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이고 있는 피학살자 유족들.

“지금의 조사인력만으로는 제대로 된 조사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는 7월18일을 전후해 한 통의 정책제안서를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등에 띄웠다. 제안서 요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따라 지난해 12월1일 한시적 독립기구로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송기인 신부·이하 ‘진실화해위’)의 조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6·25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 희생에 대한 진실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는 것. 따라서 올해 안으로 조사인력 보강 내용을 담은 법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하라는 것이 그 골자다.

진실화해위의 역할은 항일독립운동, 일제강점기 이후 국력을 신장시킨 해외동포사, 광복 이후 반민주적·반인권적 인권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 3대 부문 관련 사건의 진상조사를 통해 은폐된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진실화해위는 이를 위해 장관급 정무직인 위원장 1명을 포함한 15명의 위원을 두고, 4년을 기본 활동 기간으로 정하고 있다(2년 범위 내 연장 가능).

조사인력 증원하려면 시행령 개정돼야

문제는 진실화해위의 조사대상 사건 중 그 폭이 가장 넓다고 할 수 있는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에 대한 조사인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진실화해위 전체 인력은 6월30일 현재 위원장을 포함해 187명. 이는 정규 직원뿐 아니라 전문계약직, 사무보조직, 지방자치단체 파견 인력까지 망라한 인원이다. 이 가운데 진실화해위가 밝히는 조사인력은 108명.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항일독립운동 및 해외동포사 진상조사를 위한 민족독립조사국에 26명, 공권력에 의한 반인권적 사건이나 의문사 사건을 다루는 인권침해조사국에 37명,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을 조사하는 조사1∼4팀에 45명이 배치돼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사무보조 인력까지 포함한 수치다. 따라서 실제 현장에서 조사활동을 펼칠 인력이 부족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진실화해위는 현장조사가 아닌 단순한 자료조사 인원까지도 조사인력에 넣고 있는데, 자료조사는 지원 기능이지 조사활동의 본류라고 보긴 어렵지 않은가.” 범국민위 이춘열 사무처장은 “철저한 진실규명은 사건을 지역별·유형별로 나눠 포괄적으로 조사하는 핵심 인력의 확보와 그 효율적 운용에 달려 있는데, 진실화해위는 현재 그런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조사인력 확충 등으로 조직을 대폭 확대 개편하지 않을 경우 지엽적이고 형식적인 조사에 그칠 것이며, 그 부담은 결국 진실화해위와 정부가 떠안게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범국민위가 조사인력 증원을 촉구하는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2000년 발족한 범국민위는 언론보도와 자체 신고 접수 등을 종합한 결과 6·25전쟁을 전후해 발생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 전국적으로 700여 건, 피학살자는 1건당 평균 300~4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반면 7월31일 현재 진실화해위에 접수된 집단희생 사건 관련 진실규명 신청자(유족 등)는 3410명. 조사대상이 되는 사건으로 따지면 100여 건에 이른다. 진실규명 신청 접수는 11월30일까지 계속될 예정이어서 조사대상 사건은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범국민위는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 자체 파악한 700여 건의 3배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그만큼의 집단희생 사건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이미 희생자 유족이 사망했거나, 옛 악몽을 떠올리기 싫어 진실규명 신청을 기피할 것도 예상돼 실제로 진실화해위에 접수될 사건은 훨씬 적을 수도 있다.

진실화해委 조사만 하다 강산 변할라

2005년 12월 열린 진실화해위 현판식.

그럼에도 현재까지 접수된 조사대상 사건 수만 해도 이미 제주도 4·3사건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제주 4·3위원회가 3년간 40여 명의 조사인력을 두고 활동했음을 상기할 때 진실화해위의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조사인력은 크게 미흡한 수준이다. 게다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진실규명 신청이 이어질지 모르는 만큼 조사인력 보강의 당위성은 충분하다. 피학살자가 3만명으로 추산됐던 제주도 4·3사건의 경우 신고자 1만4373명 중 1만2725명이 희생자로 인정됐다.

이 사무처장은 “민간인 학살사건은 그 특성상 전국적으로 발생했고, 피해자 수도 엄청나다. 다른 어떤 과거사보다도 규모가 크고 조사의 난이도도 높은 만큼 활동 개시 1차년도인 올해 안에 조사인력 증원을 위해 시행령을 개정해야 원활한 조사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며 “그래야 정해진 기한 내에 진실규명이 가능하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인 피해 및 명예회복, 가해자-피해자 간 화해도 실현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는 결국 조사인력 증원이 내년 이후로 미뤄질 경우 사건에 대한 기초조사 및 배경조사, 그에 연동한 지원작업까지 허술해져 조사활동의 효율성을 기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정작 진실화해위 측은 증원에 난색

진실화해위도 내심 조사인력 증원을 바란다. 송기인 위원장이 7월28일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올바른 과거사 정리를 위해 진실화해위의 조사 권한을 확대하고 인원도 확충해야 한다. 조사인원이 부족해 이대로면 10여 년은 조사해야 할 정도다. 정부에 인원 충원을 신청하고 있다”며 속내를 털어놓은 것도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진실화해위 측은 조사인력 증원에 난색을 표한다. 진실화해위 유한범 대외협력과장은 “11월30일로 민간인 집단희생 진실규명 신청이 완료되면 그때 가서 접수된 사건 수와 업무량에 부합하는 적정 조사인력을 증원하겠다는 것이 진실화해위 전원위원회의 내부 의견”이라며 “올해는 인력 증원 부분을 제외한 다른 보완사항에 관한 시행령 개정안을 8월 중에 낼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인력 증원은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으면 이뤄질 수 없는 사안. 따라서 진실화해위의 이 같은 답변은 조사인력 증원의 필요성이 있더라도 사실상 내년에 재차 시행령 개정안을 내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 측은 절박한 입장이다. 7월25일, 과거사 관련 기구에 대한 모니터링 활동을 하는 ‘올바른 과거청산을 위한 범국민위원회’ 주최로 열린 ‘진실화해위 시행령 개정에 대한 토론회’에서도 발제자로 나선 전북대 김희수 교수(법학·변호사)는 “접수되는 사건을 모두 조사하려면 조사인력을 최소 3∼4배 늘려야 한다”며 “시행령 개정으로 조사인력을 대폭 늘리고 비조사인력을 조사요원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앞서 7월18일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협의회 회원 30여 명은 서울 중구 필동 진실화해위 사무실에서 조사인력 증원을 요구하는 농성을 벌인 바 있다. 진실화해위 측은 이날 유족 대표단과의 면담에서 조사인력 증원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고, 위원회 내부 논의를 통해 현재 추진 중인 시행령 개정안에 증원 문제를 반영할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연내 조사인력 증원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시행령 개정 관계부처인 행정자치부 조직혁신단 기능분석팀 관계자는 “진실화해위 측이 조사인력 증원 요구를 해온 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부에 인원 충원을 신청하고 있다”는 송 위원장의 공언도 결국 허언(虛言)이었던 셈이다.

진실화해위가 조사인력 증원을 ‘명분상 무리’라며 현시점에서 추진하기 어렵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데 대해 피학살자 유족들은 ‘의지의 부족’이라고 비난한다. 9개월째 과거 청산의 소명을 떠안아오면서도 여태 시스템조차 온전히 갖추지 못한 진실화해위는 그들의 외침이 들리지 않은 것일까.

“사람과 돈을 주지 않고 국가의 과거 잘못을 바로잡으라는 것은 사실상 형식적인 조사로 사건을 미봉하라는 말 아닌가. 이는 진실화해위의 구성 목적에도 위배된다.”



주간동아 548호 (p28~29)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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