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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크리트’ 지고 ‘배드 걸’ 떴다

영국에선 가벼운 영미권 소설 인기 시들 ... 블로그에 연재된 섹스 관련 일기 폭발적 반응

  • 전원경 자유기고가

‘치크리트’ 지고 ‘배드 걸’ 떴다

얼마 전 ‘치크리트(chick-lit)’라는 단어가 국내 언론의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 아가씨를 뜻하는 속어 ‘치크(chick)’와 문학이라는 뜻의 ‘리터러처(literature)’가 합성된 단어인 ‘치크리트’는 20대 여성들의 입맛에 맞는 가벼운 영미권 소설을 말한다. 최근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워커홀릭’ 등 치크리트 소설이 국내에 번역돼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치크리트’ 지고 ‘배드 걸’ 떴다

1.한 아랍 여성이 성에 눈뜨는 과정을 그린 ‘아몬드’
2.런던 콜걸의 일기 ‘벨 드 주르’
3.애비 리의 ‘섹스 생각만 하는 여자.

그러나 정작 이 단어의 탄생지인 영국에서 치크리트의 인기는 벌써 시들한 분위기다. 치크리트보다 훨씬 더 ‘쎈’ 장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바로 ‘배드 걸(Bad Girl)’, 즉 나쁜 여자들의 일기다. 인터넷 블로그에 익명으로 연재되는 이들의 일기는 주로 섹스에 대한 대담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배드 걸의 일기’가 그대로 출판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벨 드 주르’ ‘아몬드’ 베스트셀러 등극

‘애비게일’이라는 닉네임으로 자신의 블로그 일기 ‘섹스 생각만 하는 여자’를 출간한 작가 애비 리는 책에서 섹스와 일, 남자 등에 대한 속마음을 숨김없이 털어놓는다. 인터넷 사이트의 ‘베스트 블로그’ 상을 여러 번 수상하며 유명해진 애비게일의 블로그 일기는 마침내 에버리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지난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를 통해 해외로도 판권이 팔려나갔다는 소식이다.

애비게일의 경우처럼 ‘매의 눈’을 가진 출판 기획자들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배드 걸들의 블로그는 한둘이 아니다. 런던 콜걸의 일기인 ‘벨 드 주르’나 한 아랍 여성이 성에 눈뜨는 과정을 그려간 ‘아몬드’는 벌써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워싱턴 여자’의 작가 제시카 커틀러는 이 소설이 출간된 뒤 그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됐다고 한다. 최근에는 끝까지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은 한 여성 블로거의 일기 ‘내 남자친구는 머저리’가 출간돼 다시 한번 거센 인기를 얻고 있다.



블로그라는 공개된 공간에 일기를 쓰는 블로거는 세계적으로 5000만 명에 달하며, 그중 반수 이상이 여성이라는 통계 결과도 있다. 애비게일은 “배드 걸들의 섹스 블로그는 이미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뜨개질이나 목공 등 특정한 취미를 내세운 블로그들과 무엇이 다르냐는 이야기다.

‘치크리트’ 지고 ‘배드 걸’ 떴다
‘벨 드 주르’를 발굴해 소설로 만들어낸 기획자 패트릭 월시는 여자들이 일상에서 표현할 수 없는 억압된 부분을 블로그를 통해 표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직도 남자보다 여자에게 억압된 부분이 더 많다는 증거지요. 그래서 배드 걸들의 블로그에는 섹스뿐만 아니라 정치나 반체제에 대한 이야기도 적지 않습니다.” 월시는 ‘벨 드 주르’에 이어 전직 창녀였던 브라질 여성의 블로그 일기를 올여름 출간할 계획이다.

배드 걸들의 단행본 출간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에로틱 리뷰’의 전직 편집장인 로완 펠링은 이들의 책이 ‘너무 직설적이라서’ 섹스에 대해 상상할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그리고 모든 블로거들의 일기가 섹스 일색인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선정적 주제들이 확실한 판매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책으로 출간될 기회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인터넷이 성에 대한 여성의 심리를 표현할 수 있는 장소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남자친구는 머저리’의 작가는 “모니터 뒤에 숨어서 이야기하면 말로 할 수 없는 부분을 훨씬 더 쉽게 써버릴 수 있다. 모니터는 사람을 대담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544호 (p55~55)

전원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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