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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줄게 남조선 물자 보내라우”

북한산 모래 수입 3개월 선수금은 기본 … 철근·시멘트·벙커C유까지 비밀리 제공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모래 줄게 남조선 물자 보내라우”

“모래 줄게 남조선 물자 보내라우”

북한 해주 모래가 경기 김포시 모래 부두에 하역되고 있다.

2월27일 점심시간 무렵, 서울 중구 남대문로의 한 빌딩 20층에서 H사 부장 임모 씨가 건물 밖으로 몸을 던졌다. 한낮에 벌어진 끔찍한 자살 사건이었다. 경찰은 임 씨가 “회사에 큰 피해를 끼쳐 죄송하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점과 주변 참고인 조사 등을 통해 업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임 씨가 맡았던 주 업무는 H사가 보유한 화물선을 이용해 업체에 해상운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용선료를 받는 일. 그가 담당한 화물선 중에는 모래수입 판매업체인 S사에 임대해준 북한 해주-남한 군산 간 모래운반선도 포함돼 있었다.

바로 그 S사가 화물선 용선료를 제때 결재하지 못해 발생한 미수금이 자살 사건의 발단이 됐다. 그 일로 임 씨는 다른 부서로 전출됐고, 그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보면 단순 자살 사건에 불과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현실이 숨어 있다. 북한산 모래 수입업자가 북한과의 거래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말 못할 고충과 암암리에 횡행하는 불법 거래다.

H사 관계자는 “미수금 10억원 중 6억원은 이미 변제받았고, 4억원가량의 미수금에 대해서도 S사가 북한 해주에서 들여온 모래에 질권을 설정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H사는 별다른 손해를 보지 않은 셈이다.



이 사건으로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회사는 S사다. S사 대표 이모 씨는 “올해 초 북한에 3개월치 선수금 45만 달러를 주고 한 달치 모래를 수입해왔는데 그게 팔리지 않아 미수금을 갚지 못했고, 그것 때문에 결국 자살 사건까지 벌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씨는 이 사건으로 사실상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모래 줄게 남조선 물자 보내라우”

한 모래 수입업체가 북한에서 받은 독점계약 통지문과 이에 대한 북한 개선총회사의 해명서.

물량 확보 업체들 간 과당경쟁

이 씨에 따르면 수입한 모래는 차압당해 있고, 용선료가 없어 다시 모래를 실어오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북한에 준 선수금을 돌려받을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에 회사가 부도났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기존 투자자들까지 자금 회수를 독촉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H사로부터 질권 설정된 모래를 판매해 미수금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점.

하지만 이 씨가 시작한 북한 모래 수입사업은 사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일이었다. 이 씨가 비수기에 판로를 확보하지 않고 무작정 모래를 수입한 것도 잘못이지만, 북측에서 요구한 ‘3개월치 선수금’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실 정상적인 상거래에서 선수금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남북 간 거래에서는 특수성에 기반해 언제부턴가 관행화돼버렸다. 그 책임은 남북한 모두에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모래 줄게 남조선 물자 보내라우”

북한 사천강 모래가 육로로 반입되고 있다.

북한 해주 모래가 남한에 수입되기 시작한 때는 건설경기가 살아나면서 모래 파동이 발생했던 2004년 3월부터다. 정부에서 건설용 모래 수급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수입을 허용하면서 북한 모래 반입이 가능해진 것. 북한 모래 수입량은 매년 급증하는 추세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4년 28만7000루베(모래 계량단위 ㎥)였던 수입량이 2005년에는 384만 루베로 15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는 2월까지의 수입량이 벌써 68만 루베를 넘어섰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동안 25만 루베를 수입한 것과 비교해보면 3배 가까이 증가한 양이다.

수입업체도 2004년 6개사에서 현재 16개사로 크게 늘었다. 그러다 보니 북한 모래 수입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업체들 간의 과당경쟁이 벌어졌다. 모래가 없어서 못 파는 판에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도 모래를 팔 수 있는 기관들은 모두 대남 거래에 나섰다. 모래를 팔아서 수입을 챙기는 기관이 임자였기 때문. 초기부터 ‘조선금릉무역회사’, ‘조선신진경제련합체’, ‘조선성봉무역회사’, ‘개선무역총회사(현 개선총회사)’ 등이 난립해 남한 업체들과 거래를 텄다.

이처럼 물량을 남보다 먼저, 많이 확보하려는 남한 업체와 북한 기관들 간의 거래 과정에서 ‘선수금’이라는 것이 생겨나 관행처럼 굳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불법적인 뒷돈도 오갔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 책임 소재에 대해서는 업체 관계자들마다 시각이 조금씩 달랐다.

모래 수입업체 A사 관계자는 “모래 100만 달러어치도 수입하기 힘든 업체들이 1000만 달러어치를 수입하겠다면서 접근하는 등 과도하게 자기과시를 한 것이 문제”라며 “북한은 그런 업체들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기초 담보라도 해두고 시작하자’고 했던 것이고, 그게 선수금이 된 것”이라고 남한 업체들에 화살을 돌렸다. 반면 B사 관계자는 “북한에서 모래를 미끼로 여러 가지를 요구했고 계약서에 선수금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에 수입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선수금 이면에 오가는 남한 모래 수입업체와 북한 기관 간에 비밀리에 행해지는 것으로 알려진 불법적인 물자 반출이다. 모래 수입업체 C사 관계자는 “최근 수입업체들이 북한 모래 수입 독점권을 따내기 위해 철근과 시멘트, 심지어 벙커C유까지 북한에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독점권을 미끼로 요구할 때도 있고,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할 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합리적 거래 위해 공동 대안 필요

이 관계자는 이어 “우리 회사도 철근 150만t과 시멘트 300만t을 모래와 무관하게 북한에 전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전략물자를 보낸 적은 없다”면서도 “대부분 통일부의 사전 허가를 받지 않고 이뤄지는 것이므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문제점을 시인했다.

이런 불법거래와 직접 연관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한 수입업체가 2월 초 “조선신진경제련합체와 개선(무역)총회사로부터 경인지역 모래 수입 독점권을 땄다”며 국내 모래 판매업체들에 통지문을 발송했다가 철회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은 C사가 개선총회사에 문제 제기와 함께 사실 확인을 요청해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의 해명서를 받아내면서 일단락됐다.

이 일과 관련해 독점권을 따냈다고 주장한 업체는 그 대가로 중국에서 15t 트럭 30대를 구입해 북한에 제공한 한편, 선수금 200만 달러를 약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해당업체 관계자는 “우리가 결제한 돈으로 북한에서 트럭을 구입하든 말든 우리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며 “트럭은 물론 선수금 200만 달러를 약속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얼마 전 해주 일대 모래 생산은 ‘조선신진경제련합체’, 판매는 ‘개선총회사’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업무를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남 모래사업의 창구를 단일화한 것.

하지만 남한 수입업체들 간의 긴장감은 오히려 더 고조됐다. 날씨가 풀리고 본격적인 건설공사가 시작되면서 모래 수입 독점권에 대한 업체들의 욕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폐해를 막기 위해 선수금의 가이드라인을 25만 달러 정도로 정했지만 이미 무의미한 기준이 됐다. 그렇다고 북한처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시장경제의 본성인 ‘자율경쟁’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 “북한에 제공되는 물자들은 대부분 모래 대금을 대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북한 거래상 특수성이 있어 다소 문제가 발생되기도 하는데, 남북 정부 간 경협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모래 수입업체 한 관계자는 “북한 기관과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남한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협의체를 만들어 공동 대안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531호 (p14~15)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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