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5

2003.12.25

딱딱한 과학 알고 보니 말랑말랑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12-19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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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딱한 과학 알고 보니 말랑말랑
    빌 브라이슨은 이 세상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재미있는 글을 쓰는 여행작가다. 국내에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그는 전직 언론인으로 호기심이 어린이처럼 넘쳐난다. 그가 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한 권의 재미있는 과학 교양서가 탄생했다.

    제목처럼 사실 이 책에는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과학에 대한 관심’이 담겨 있다. 은하 태양계의 거대 세계로부터 양성자 세포 등의 미시 세계, 인류 문명의 기원과 그 토대가 되는 지구에 대한 설명, 그리고 다윈 뉴턴 아인슈타인 호킹 등을 비롯한 과학자들의 이론을 한 권의 책에 담고자 했다. 엄청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지만 사실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저자는 4, 5년 전 어느 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안에서 달빛이 비치는 바다를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그는 불현듯 자신이 살고 있는 유일한 행성에 대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불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는 바닷물이 오대호의 물과는 달리 짠맛이 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몰랐다. 양성자가 무엇이고 단백질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쿼크와 퀘이사를 구별하지도 못했다. 지질학자들이 협곡의 바위층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어떻게 알아내는지도 몰랐다. 그는 갑자기 이런 문제는 물론이고, 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어떻게 밝혀내는가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는 예사롭지 않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런 호기심이 발동해 쓰기 시작한 이 책은 우리에게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그것은 과학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역사학과 철학, 문학, 예술이 우주와 지구, 그리고 생물의 진정한 역사와 무시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또한 과학은 우리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까지 와 있고,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가장 객관적으로 밝혀주는, 인류가 이룩한 가장 성스럽고 값진 노력의 결과라는 점을 알게 해준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과학이 왜 그렇게 딱딱하고 재미없다고 여겼는지 확인할 수 있다. 과학 자체가 딱딱하고 재미없었던 게 아니라 그 의미와 중요성을 부드럽고 재미있게 알려주지 못한 탓이다. 이 책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우선 이 책의 설명은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방정식 E=mc2(에너지는 질량과 동등하다는 뜻을 담고 있음)을 설명할 때의 비유가 그렇다. 그는 ‘이 식에 따르면 물질에 갇혀 있는 에너지의 양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특별히 건장하지 않더라도 평균 체격을 가진 성인이라면 몸속에 적어도 7×1018줄(joule) 정도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대형 수소 폭탄 30개 정도가 터질 때의 에너지와 비슷하다’는 식으로 풀이한다.

    그는 초신성을 찾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이렇게 비유한다. 검은 식탁보를 덮은 식탁 위에 소금 한 줌을 뿌렸을 때 흩어진 소금 알갱이 하나하나가 은하라면, 그런 식탁 1500개가 월마트 주차장을 가득 채울 경우 어느 한 식탁에 아무렇게나 소금 알갱이 하나를 뿌린 뒤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과 같다는 식이다.

    딱딱한 이론서를 탈피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연구에 몰두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았던 과학자들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베른 특허국 하급 기술사로 있으면서 1905년 발표한 세 편의 논문으로 노벨상을 받고 급기야 세상을 바꾼 아인슈타인, 대폭발에서 남겨진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아르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 공룡(dinosauria)이란 말을 만들어냈지만 동료 학자의 업적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던 이중적인 해부학자 오언, 기상학자였지만 지질학의 판도를 바꿨던 판게아론의 주창자 알프레드 베게너 같은 이들의 일화는 소설만큼이나 재미있다.

    이 책에 대해 어느 과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지 못한 점, 쿼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지구 이야기로 돌아오는 등 구성이 산만한 점은 눈감아줄 만하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죄송합니다, 다시 설명해주십시오”라고 끝없이 되물었던 브라이슨처럼 반짝이는 호기심을 갖고 과학여행에 나서볼 일이다.

    이덕환 옮김/ 까치 펴냄/ 558쪽/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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