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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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한 롯, 딸들에게 당했다?

종족 보존 노린 두 딸 계략에 넘어가 동침 … 근친상간에 성폭행 피해까지 겪은 셈

  • 조성기/ 소설가

    입력2003-12-18 16: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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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취한 롯, 딸들에게 당했다?

    아버지 롯과 동침하기 위해 술을 권하는 롯의 두 딸들.

    요즈음 관객의 호응을 얻고 있는 ‘올드보이’라는 영화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기독교를 표방하는 어느 일간지는 ‘한국영화 막간다. 사회가치관 붕괴 위기’라는 제하의 기사를 1면 톱에 싣기도 했다.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를 영화에서 버젓이 다룬 것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영화의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염려할 만한 사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올드보이’는 그런 문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빠져나갈 구멍들을 교묘하게 장치해둠으로써 단정적으로 판단하거나 함부로 정죄하지 못하도록 했다. 최면술과 복수극이라는 장치가 바로 그것이다. 근친상간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고의적인 범죄자가 아니라 오히려 처절하게 복수를 당한 피해자라는 아이러니 앞에서 관객들은 한동안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참으로 거북살스런 물건 하나가 마치 이라크 바그다드 지역에 떨어진 폭탄처럼 우리 사회 한복판에 떨어진 셈이다.

    그런데 가장 자극적이라 할 수 있는 근친상간이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이보다 더 큰 아이러니가 없다. ‘올드보이’에 나오는 근친상간자들은 최면술에 걸려 복수극의 희생양으로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되는 반면, 성경에 나오는 근친상간자들의 경우 적어도 한쪽에서는 고의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롯과 그의 아내, 두 딸이 간신히 소돔을 빠져나왔으나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거역하는 바람에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롯은 겨우 소알이라는 곳으로 피했으나 거기에도 유황불이 내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두 딸과 함께 그곳에서 나와 산속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딸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통해서라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먼저 큰딸이 작은딸에게 제안했다.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이 될 사람이 없으니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동침한 뒤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대를 이어나가게 하자.”

    인사불성 상태에서 어떻게? … ‘여전한 미스터리’

    만취한 롯, 딸들에게 당했다?

    ‘근친상간’을 다뤄 논란이 된 영화 ‘올드보이’의 한 장면.

    늙은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면 대를 이어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니 하루빨리 일을 감행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로 그날 밤 딸들은 아버지 롯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는 큰딸이 먼저 아버지와 동침했다. 그러나 롯은 술에 취한 상태라 큰딸이 자신과 동침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 다음날 이번에는 큰딸이 작은딸에게 아버지와 동침할 것을 권유한다. 그래서 그날 밤에도 아버지 롯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는 작은딸이 들어가 아버지와 동침했다. 이번에도 롯은 만취하여 작은딸이 자기 옆에 눕고 일어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여기서 일단 롯은 근친상간을 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딸들의 음모에 휘말렸고 술에 취한 상태라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변명할 수 있다. 또한 딸들도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대를 잇기 위해 동침할 마땅한 남자가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를 통해서나마 자식을 낳으려 했을 뿐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다.

    만취한 롯, 딸들에게 당했다?

    여성에게 성희롱을 당한 남성의 얘기를 다룬 영화‘폭로’의 장면들.

    그런데 큰딸의 말 중에서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이 될 사람이 없으니’라는 문구의 뜻을 우선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로 인해 멸망하는 것을 보며 세상 남자들이 다 죽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세상에는 아버지와 자기들만 남게 되어 노아의 가족들이 그랬듯 인류를 퍼뜨릴 책임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여긴 것일까.

    그러나 그들이 거쳐온 소알은 소돔 고모라와 달리 유황불 세례를 받지 않았다. 천사도 롯이 소알로 도망가겠다고 하자 도피를 허락하면서 소알은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소알은 비록 작은 성이긴 하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롯의 딸들도 그 사람들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산 위 동굴에서도 소알 성안에서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모습이 내려다보였을 것이다.

    두 딸 통해 자손 번성 … 생물학적 동침 ‘성공’

    그렇다면 큰딸은 왜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이 될 사람이 없다”고 했을까. 어떤 주석학자는 소돔 지역의 남자들이 거의 모두 남색가들이었기 때문에 롯의 딸들이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하나, 그것은 지나친 해석이 아닌가 싶다.

    롯의 딸들은 세상 남자들이 다 죽었다고 착각하지도 않았고, 소돔 지역 남자들이 모두 남색가라고 단정할 수 없다면, 마음에 맞는 남자가 없다는 뜻으로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이 가장 많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통해서나마 자식을 낳아야겠다는 말이 면죄부를 안겨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롯의 딸들이 부패할 대로 부패한 소돔 문화의 영향으로 선악에 대한 분별력이 흐려졌다고밖에 볼 수 없다. 소돔에서는 아버지와 딸들 간의 근친상간이 공공연히 행해졌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요즘 한국의 극히 일부 가정에서 그렇듯이 딸들을 성폭행하는 아버지들이 소돔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올드보이’의 딸이 롯의 딸들보다는 훨씬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올드보이’의 딸은 롯이 그랬듯 나중에도 자신이 근친상간을 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괴로워하며 혀까지 자르는데 말이다. 아버지가 혀를 자른 것은 그 비밀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만취한 늙은 아버지 롯과 딸들의 동침이 가능했을까 하는 문제가 남는다. 롯이 딸들이 자기 옆에 눕고 일어나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한 것인데, 그런 상태에서 음경이 발기할 수 있을까. 비록 어찌어찌하여 발기되었다 하더라도 사정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지만 롯의 딸들이 모아브 족속의 조상과 암몬 족속의 조상을 낳았다고 하니, 생물학적인 동침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결국 롯은 딸들에게 일종의 성폭행을 당한 셈이다.

    여성들의 남성에 대한 성폭행을 연구해온 한스 페터 뒤르 같은 학자들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그러한 사례는 넘치도록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도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번은 건장한 미국인 화물차 운전기사가 재갈이 물린 채 알몸으로 침대에 결박되어 여자들에게 성폭행당한 사건이 있었다. 네 명의 여자가 남자를 희롱하다가 차례로 강간한 것이다. 그 다음 상황은 한스 페터 뒤르의 저서 ‘음란과 폭력’에 있는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한 여자가 여러 번 덤벼드는 바람에 그는 두 번이나 사정을 빨리 해버렸다. 그러다가 더 이상 발기가 되지 않자 여자들은 음낭 사이에 칼을 들이대면서, 만일 더 이상 발기하지 않으면 거세하겠다고 협박했다. 여자들은-그의 느낌으로-하루 동안 밤낮을 쉬지 않고 성폭행을 하고 나서야 그를 풀어주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그는 신고하지 않았다. 만일 그 사실이 알려지면 여자한테 강간당했다는 이유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내답지 못한 놈으로 취급받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 남자는 다른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성불구자가 되었다.”

    1988년 미군에 근무하는 남성들의 17%가 남자나 여자 동료에게 성추행 내지 성폭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는데, 그중 60%가 개인 또는 집단으로 여성에게 성폭행당한 경우였다고 한다. 남자가 당하는 경우는 여자가 당하는 경우보다 신고율이 더 낮다고 하니 실제는 이 통계치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롯은 근친상간에다 성폭행까지 당했으니 이래저래 천추의 한을 남긴 셈이다. 성경은 이런 숨기고 싶은 수치스런 진실까지 기록하고 있으니 섬뜩한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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