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8

2003.06.12

‘대전 시티즌’ 있어 요즘 살맛 나유

‘만년 꼴찌’서 홈 6연승 ‘안방불패’ … 감독+신세대 스타+시민 축구사랑 ‘3박자 척척’

  • 최원창/ 굿데이신문 종합스포츠부 기자 gerrard@hot.co.kr

    입력2003-06-04 15: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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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시티즌’ 있어 요즘 살맛 나유

    ‘꼴찌에서 2위로’. K리그에서 대전 시티즌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밭골’ 대전광역시가 ‘축구특별시’로 우뚝 솟았다.

    지난해 정규리그에서 단 1승만을 거두며 최하위에 그쳤던 대전이 올 시즌 무서운 기세로 홈에서 6연승을 거두며 성남 일화에 이어 2위(7승2무3패 승점23)를 달리고 있다. 대전은 홈에서 치러진 6경기에서 총 12만3767명의 관중을 모으며 한국 프로스포츠팀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중이다.

    1997년 창단 이후 ‘만년 꼴찌’ 신세를 면치 못하던 ‘한국 최초의 시민구단’ 대전이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덕장’ 최윤겸 감독의 용병술이다. 이밖에 이관우 김은중 등 신세대 스타들의 부활과 대전 시민들의 적극적인 ‘축구 사랑’도 큰 몫을 했다.

    4-3-3 전술 창의적 플레이 펼쳐

    감독의 선수 관리는 팀워크를 강화하는 핵심요소다. “감독이 게임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여유의 지도자론’을 펴는 최감독은 특히 선수 관리가 탁월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명선수들에게도 골고루 출전 기회를 주는 등 최감독의 공평무사한 선수 관리는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대전 선수들이 인연을 맺은 지 6개월밖에 안 되는 최감독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것도 이 같은 선수 관리법 덕분이다. 최감독의 힘은 전술적인 면보다도 ‘따뜻한 인간미’와 ‘훌륭한 인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올 시즌 최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대전식 축구’는 네덜란드리그의 경기를 연상케 한다. 그는 부천 시절 유고의 명장 니폼니시 감독을 통해 터득한 탄탄한 조직축구와 지난해 네덜란드에서 익힌 ‘히딩크식 축구’를 접목한 새로운 ‘대전식 축구’를 선보이고 있다.

    대전이 올 시즌 시도하고 있는 4-3-3 포메이션은 미드필더들이 마치 아코디언을 연주하듯 상황에 따라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게다가 최감독이 각각의 선수 스타일에 맞게 포지션을 배치해 더욱 효과적이다. 체력을 앞세운 압박 축구로 상대 선수들을 지치게 한 뒤 후반에 승부수를 던지는 전술도 눈에 띄는 대목.

    ‘대전의 히딩크’로 불리며 ‘최윤겸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최감독은 “우리 축구는 아직 모험을 즐기지 않는 편이다. 수비에 치중하다 보면 경기가 재미없어지고 그러다 보면 팬들도 경기장을 찾지 않게 된다”며 ‘팬과의 공존’을 강조했다.

    김은중 김종현 이관우 삼총사는 ‘최윤겸 축구’의 화룡점정.

    ‘샤프’ 김은중은 힘차게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 지난 시즌 7골에 그친 김은중은 시즌 초반인 현재 이미 4골을 기록했고 이중 3골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터뜨리며 홈 연승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김은중은 ‘대전의 수호신’이라고 불리며 코엘류 감독의 축구대표팀에서도 차세대 원톱 스트라이커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1997년 프로에 데뷔한 김은중은 그동안 이름값에 어울리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10골 이상을 기록한 해가 단 한 해도 없었고 잦은 부상으로 인해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던 기간도 많았다. 올 시즌 비로소 킬러 본능을 드러내며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것. 김은중은 “대전 돌풍이 거품이 되지 않도록 올해는 꼭 10골 이상을 터뜨리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 돌풍의 또 다른 주역 김종현은 요즘 축구할 맛이 난다며 싱글벙글이다. 이미 30대에 접어든 그지만 열정은 처음 축구화를 신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뜨겁다. 올해 대전으로 둥지를 옮겨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한 김종현은 올 시즌 4골을 터뜨리며 김은중과 공동으로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김종현은 “화려한 선수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K리그 최고의 조커’로 거듭난 이관우는 대전 돌풍의 숨은 주역이다. 이관우는 후반 조커로 기용되면서 특유의 감각적인 패스워크와 날카로운 슈팅이 되살아나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이관우는 특히 기세 싸움이 치열했던 1라운드 초반의 중요한 게임마다 공격포인트를 올림으로써 이후 대전의 폭발적인 상승 드라이브를 가능케 한 공이 크다. 대전 팬들 사이에 ‘이관우가 후반에 나오면 이긴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

    ”영원토록 휘날려라! 자줏빛 투혼”

    매년 적자에 시달리며 선수들의 월급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못했던 대전이 올 시즌 부활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알음알음으로 돈을 모아 시민구단 살리기에 나선 대전 시민들이었다.

    올 2월 사단법인으로 발족한 ‘대전축구발전시민협의회’(회장 김보성·이하 협의회)가 그 중심이다. 대전지역의 기업체, 학교, 법인 등 260여개 단체가 축구팀을 돕기 위해 하나로 뭉친 것. 협의회를 통한 연간회원권(15만원) 판매액만 5억원을 넘어섰다.

    대전 시티즌 김광식 사장의 행정력과 염홍철 대전시장의 적극적인 지원도 눈길을 끈다.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 단장 출신인 김사장의 열정은 시티즌 살리기에 나선 염시장의 의지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김사장은 지역기업들의 광고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축구단 재정을 든든히 하고 있고 염시장은 팀의 원정경기에 응원하러 갈 정도로 대전 시티즌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축구단을 위해 추경예산을 책정하고 유니폼 광고료로 10억원을 지급했을 만큼 대전시의 지원 또한 전폭적이다.

    대전 시티즌 서포터스의 클럽송은 대전에서 ‘오 필승 코리아’보다 더 인기가 있다. ‘영원토록 휘날려라! 자줏빛 투혼. 모든 이의 가슴속에 무궁하거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일제 강점기 신흥무관학교의 교가를 개사한 것으로 대전에선 가장 인기 있는 노래가 된 지 오래다. 서포터스가 아닌 일반시민들까지 클럽송을 흥얼거리는 모습은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이처럼 대전에선 말로만 외치던 지역연고제가 가시화하면서 팬들과 선수단이 하나가 돼 함께 울고 웃고 있다. 18년째 대전에 둥지를 틀고 있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를 누르고 대전 시티즌이 대전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시티즌이 ‘대전시민의 구단’이라는 사실을 시민들이 온몸으로 느끼고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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