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점의 형세는 중앙 접전에서 빵때림한 백이 우세한 국면. 여기서 백1로 붙였을 때 검토실에서는 의당 백3·5의 수순을 예상했다. 백5 한방에 흑 넉 점은 달아나기 힘들었을 것이고, 승부는 최종 도전7국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류 7단은 천연덕스럽게 백3으로 끌어당겼다. 형세를 낙관한 것. 이 순간 왕 9단이 마치 산정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던 매처럼 비상하더니 흑4 이하 16까지 선수로 처리한 뒤 흑18·20, 이 수가 놓이는 순간 승부의 물꼬는 흑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지난 2000년 예상을 뒤엎고 조치훈 9단을 꺾고 일인자에 올라선 왕 9단은 이후 조선진 9단, 류시훈 7단으로 이어진 한국기사들의 도전을 모두 4대 2로 물리치며 ‘재일 한국기사 킬러’로 자리했다. 277수 끝, 흑 2집 반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