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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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부자도 스크루지처럼 자기 욕심만 채울까

[돈의 심리] 14억 이상 보유한 부자, 다른 사람들이 지켜볼 때 더 관대하게 행동

  • 최성락 경영학 박사

    입력2023-08-2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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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는 이기적이고 비열할까, 아니면 더 관대할까.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은 이기적이고 비열한 부자의 상징이다. 놀부도 자기 욕심만 채우는 비열한 부자를 대표한다. 보통 부자들은 이기적이고 자기 이익만 챙기며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정말로 부자는 보통 사람보다 더 이기적이고 비열하게 행동할까.

    이기적인 부자의 상징인 스크루지 영감. [GettyImages]

    이기적인 부자의 상징인 스크루지 영감. [GettyImages]

    배려심이 적은 부자?

    2012년 폴 피프 미국 UCI 심리학 교수는 샌프란시스코의 한적한 도로에서 부자들과 보통 사람들 사이에 행동 차이가 있는지 관찰했다. 미국에서도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으면 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건너기 전이라도 무조건 서야 한다. 연구진은 부자가 타는 차와 일반인이 타는 차 사이에 이런 횡단보도 앞 멈춤이 동일하게 수행되는지 살펴봤다. 보통 차들은 대부분 사람이 서 있는 횡단보도 앞에서 우선멈춤을 했다. 그런데 비싼 차들은 우선멈춤 비율이 반밖에 되지 않았다. 횡단보도 앞에 사람이 서 있는데도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일반인은 사회 규칙을 잘 지키면서 길을 건너는 사람을 배려하지만, 부자는 사회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고 보행자를 제대로 배려하지 않는다. 돈이 많은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더 이기적이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비열한 행동을 한다.

    그런데 이 실험에는 문제가 있다. 피프 교수는 비싼 차를 타는 이는 부자, 일반 차를 타는 이는 부자가 아닌 사람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비싼 차를 탄다고 부자라고 말하기 곤란하다. 한국에도 부자는 아니지만 벤츠나 BMW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페라리 등 고급 스포츠카를 타는 이들 중에는 자기 차가 아니라 렌트해 며칠간 몰고 다니는 사람도 적잖다. 이들은 중산층 정도는 된다고 말할 수 있어도 부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빚을 내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은 이번 달 할부 값 등을 고민하며 운전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는 정신적 여유가 없을 수 있다. 또 잘사는 국가는 횡단보도 앞에서 차들이 잘 선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차들이 횡단보도를 무시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잘사는 사람들이 규칙을 더 안 지킨다는 명제는 인정되기 어렵다.

    부자에 대해 연구하려면 겉으로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돈이 있는 부자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2014년 얀 스미츠 네덜란드 마스트리히트대 교수 연구팀은 은행에 100만 유로(약 14억5000만 원) 이상을 예치한 사람들을 섭외했다. 평소 은행에 현금으로 100만 유로를 예치하고 있다면 분명 부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섭외해 경제 실험으로 유명한 최후통첩 게임과 독재자 게임을 실시했다.

    최후통첩 게임은 실험 참가자 A, B 가운데 A에게 100달러를 준다. 그리고 A에게 이 돈 중 일부를 B에게 주라고 한다. A가 70달러는 자기가 갖고, 30달러를 B에게 줬다고 하자. 이때 B가 ‘오케이’를 하면 A는 70달러, B는 30달러를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만약 B가 ‘노’를 하면 A, B는 모두 빈손으로 돌아가야 한다. A는 100달러를 모두 자기가 갖겠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때 B는 노를 할 테고, 그럼 A와 B는 한 푼도 못 갖는다. A는 B가 ‘오케이’ 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을 줘야 한다. 이 실험을 해보면 세부 조건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보통 A는 60~70달러를 자기가 갖고 B에게는 30~40달러를 준다. 만약 A가 80달러 이상을 갖겠다고 나서면 B가 거부해 둘 다 한 푼도 못 건지는 경우가 많다. 보통 사람은 자기가 60~70달러를 갖고 다른 사람에게 30~40달러를 준다.



    부자 대상 최후통첩 게임

    부자는 어떨까. 부자는 보통 사람보다 더 가지려고 할까, 덜 가지려고 할까. 부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A는 부자들이었다. 그리고 B는 연봉 2000만 원 정도인 저소득자들이었다. 연구팀은 미리 부자들에게 게임 상대자들이 연봉 2000만 원의 저소득자라는 사실을 말해줬다. 실험 장소가 유럽이었기 때문에 실험에 사용된 금액은 100유로였다. 이때 부자들이 B에게 제시한 금액은 평균 64유로였다. 부자들은 자기는 36유로를 챙기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64유로를 주겠다고 했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A는 대부분 자기가 더 많은 돈을 챙긴다. 가장 공정한 사람이라 해도 50 대 50으로 나눈다. 그런데 부자들은 자기가 덜 갖고, 상대방에게 더 많은 돈을 줬다. 부자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관대했다. 최소한 자기가 더 많이 챙기겠다고 악을 쓰지는 않았다.

    독재자 게임도 시행했다. 최후통첩 게임은 A가 금액을 제시하면 B가 그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독재자 게임은 A가 금액을 정하면 그냥 그대로 확정된다. B의 반응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A는 최후통첩 게임보다 독재자 게임에서 자기 몫을 더 챙긴다. 최후통첩 게임에서 A가 60유로를 챙긴다면, 독재자 게임에서 A는 80유로를 챙긴다. 독재자 게임에서 사람들은 더 이기적이 된다. 부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결과가 다르게 나왔다. 부자들인 A는 평균적으로 30유로를 챙기고 가난한 B에게 70유로를 줬다. 100유로에서 자기가 더 많이 갖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에게 더 많은 돈을 준 것이다. 부자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관대했다. 덜 이기적이었고 상대방을 더 고려했다.

    물론 이 실험 결과만으로 부자가 보통 사람보다 더 관대하고 덜 이기적이며 가난한 사람을 더 고려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최후통첩 게임이나 독재자 게임은 실험 설계에 한 가지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실험 참가자들이 어떤 결정을 하는지 지켜보고 있고, 실험 참가자들은 연구진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에게 관대한 사람,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보고 있을 때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좀 더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최후통첩 게임이나 독재자 게임을 진행하면서 누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알 수 없게 한 실험도 있다. 여러 팀을 대상으로 동시에 결정하게 하고 평균 금액을 지불하는 식이다. 따라서 어떤 A가 상대방 B에게 얼마를 주기로 했는지 특정할 수 없다. 누가 얼마를 주기로 했는지 알 수 없게 하면 A가 챙겨가는 금액은 크게 늘어난다. 이때 B는 거의 돈을 챙겨가지 못한다. 사람들이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건 자기 진심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지켜보고 있어서다. 이것이 최후통첩 게임에서 말하는 평판 효과다. 사람은 평판을 의식해 다른 이들에게 관대한 모습을 보인다.

    평판을 의식하는 부자들

    따라서 부자를 대상으로 한 최후통첩 게임, 독재자 게임에서도 그들은 자기 진심이 아니라 연구자, 그리고 실험 상대방을 의식해 일부러 관대한 모습을 보인 것일 수 있다. 보통 사람은 평판을 의식하더라도 일단 돈이 더 중요하기에 자기 이익을 우선 챙기는 이기적인 결정을 하곤 한다. 하지만 부자는 다르다. 은행에 100만 유로 넘는 예치금이 있는 부자에게는 실험에 사용된 100유로가 그리 큰돈이 아니다. 그래서 100유로를 그냥 포기하고 인자하면서도 관대한 자기 모습을 연구진에게 보여주려 했을 수 있다. 그냥 가식적으로 상대방에게 더 많은 돈을 줬을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실험 결과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실험이 부자는 더 관대하고 덜 이기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그들의 본심 또한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다른 이들이 지켜보고 있을 때 보통 사람보다 더 관대하게 행동한다는 것, 보통 사람보다 다른 이에게 돈을 더 주려는 경향이 있다는 건 분명히 보여준다. 부자가 보통 사람보다 더 이기적인지, 비열한지 그 본심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이가 지켜볼 때 최소한 보통 사람보다 더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 이 연구에서 그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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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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