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8

2007.06.05

떼로 흘레붙는 모습, 이 얼마 만이냐!

청계-중랑천 만나는 두물머리 ‘짝짓기 향연’ … 서울 도심 생태축 복원 서둘러야

  • 사진·김형우 기자 free217@donga.com, 글·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7-05-29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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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떼로 흘레붙는 모습, 이 얼마 만이냐!

    서울 중랑천에서 잉어가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다 뛰어오르고 있다(왼쪽). 잉어가 떼로 흘레붙는 모습은 큰 볼거리다.

    깜박 잠이 든 새벽, 다리 너머로 동이 튼다. 새벽공기가 차갑다. 안개 자욱한 중랑천의 침묵을 깬 것은 새들의 울음소리.

    찌익~ 찌익~.

    한 놈이 울음보를 터뜨리자 무리가 합창을 한다. 넓적부리 청둥오리 고방오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침을 연다.

    청계천과 중랑천이 접하는 두물머리. 이곳의 물이 3279m를 달리면 한강과 만난다. 물길 곳곳엔 모래톱이 터를 잡았다. 백주(白洲)는 새들의 안식처다.

    3279m의 물길은 서울의 첫 철새보호구역. 흰뺨검둥오리 넓적부리 쇠오리 백할미새가 혹한을 피해 북쪽에서 날아왔다.



    갈매기 한 마리가 물속으로 대가리를 처박는다. 녀석이 낚아올린 건 팔뚝만한 잉어. 고방오리가 녀석의 먹이에 욕심을 내보지만 적수가 되지 못했다.

    철새가 날아온 지난 겨울, 내가 사는 동네의 천변풍경(川邊風景)은 고즈넉하면서도 분주했다. 나는 그 길을 자전거로 저어갔다.

    풀, 나무가 제가끔 눈을 틔운 봄의 천변은 한 폭의 파스텔화다. 겨우내 움츠린 자연의 식솔이 한껏 기지개를 켠다. 명지바람은 신록을 간질이면서 물길 위를 가른다.

    늦은 봄, 물길 아래 주인은 잉어목 잉엇과의 잉어다. ‘선물치’ ‘멍짜’라고도 불리는 녀석들의 본래 이름은 이어(鯉魚). 노란빛을 띤 갈색으로 배는 은백색이다. 주둥이 옆엔 수염 두 쌍이 돋아 있다

    조선시대 그림에서 솟아오르는 잉어는 입신과 출세를 나타냈다. 지금 중랑천에선 녀석들이 파닥거리면서 물 위로 솟아오르는 걸 볼 수 있다.

    청계천 통수 뒤 잉어 따라 새들도 귀환

    떼로 흘레붙는 모습, 이 얼마 만이냐!

    지난 겨울 갈매기가 잉어를 낚아올리는 장면이 동물탐험 취재팀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잉어가 떼로 얕은 여울에 몰려든다. 볼거리다. 자전거를 타고 천변에 놀러 온 아이들이 물에 들어가 녀석들을 손으로 잡아올리곤 세상을 얻은 듯 웃는다. 지금 두물머리는 물 반 잉어 반이다. 가보시라!

    잉어 암컷은 5~6월에 알을 낳는다. 그래서 요즘 ‘러브’가 한창이다. 녀석들은 근사한 짝의 난자(알), 정자를 얻으려고 떼로 몸싸움도 벌인다. 녀석들의 난자 정자는 몸 밖에서 조우하는데, 암컷이 알무더기를 내놓자마자 수컷이 정자로 적신다.

    오래된 내 기억 속 중랑천은 역겨운 곳이었다. 서울 회기동에 살던 나는 이따금 이문동에 놀러 가 ‘다방구’라는 놀이를 했는데, 그때 중랑천 물빛은 짙은 검은색이었으며 냄새는 속이 뒤집힐 만큼 고약했다. 1980년대 말까지도 생활하수에 분뇨가 뒤섞인 중랑천 똥물은 코의 모낭벽을 후벼팠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하수종말처리장이 세워지면서 물고기가 하나 둘씩 거슬러 올라왔고, 200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철새떼가 몰려들었다. 잉어가 떼로 흘레붙는 장관을 보게 된 건 청계천이 통수(通水)된 뒤의 일. 한강-서울숲-응봉산-중랑천-청계천을 잇는 생태축이 어설프게나마 자리잡은 셈이다.

    잉어는 더러운 물(3급수)에서도 아가미를 빠끔거리는 물고기다. 4급수는 어류가 살지 못하는 죽은 물. 따라서 잉어의 중랑천 귀환은 서울의 생태계가 첫걸음을 겨우 뗐다는 뜻이다.

    중랑천 여울에 낚싯대를 드리운 어떤 강태공이 묵직한 놈을 뭍으로 떠올린다. 그의 표정이 의기양양하다. 서울의 잉어는 마음껏 잡아도 된다(중금속을 머금고 있으니 잡숫지는 마시라). 강바닥을 헤집고 다니는 통에 녀석들이 많아지면 물이 오염되기 때문이다.

    잉어가 물살을 거스르며 청계천을 오른다. 잉어를 따라 왜가리 쇠백로도 청계천 중류의 황학교까지 날아간다. 이곳에서도 비상하는 갈매기를 볼 수 있다. 먹이를 따라 서해안→한강→중랑천→청계천으로 건너온 녀석들이다.

    풀, 나무가 씨를 퍼뜨리듯 자연이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다. 청계천이 통수된 뒤 두물머리에서 일어난 변화가 그렇다. 서울시가 도심 생태축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는데 더욱 서두를 일이다.

    고사(故事)에는 겨울날 얼음낚시로 잡은 잉어를 회떠 부모님에게 올린 효자가 가끔 등장한다. 중랑천에서 잡은 잉어로 회, 포를 뜨고 싶다. 광화문 네거리를 높이 나는 갈매기가 보고 싶다.

    잉어



    ·학명 Cyprinus carpio

    ·분류 잉어목 잉엇과

    ·크기 보통 50cm이고, 최대 120cm

    ·색 몸통은 노란빛을 띤 갈색, 배는 은백색

    ·생식 5~6월

    ·서식처 큰 강의 중·하류나 호수, 댐, 늪, 저수지 등 물이 많은 곳

    ·분포 지역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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