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골퍼는 홀아웃하고 나오면서(특히 더블보기 이상으로 창피할 때) 제 나름 핑계를 댄다. “홀이 뭐 이따위야. 누가 설계했어?” 간혹 감탄도 한다(어쩌다 파를 잡으면). “누가 설계했지? 기막히네.”
정말 골프코스 설계는 누가 할까. 골프를 잘해야 설계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선수 출신이 설계까지 한 사례는 역사가 깊다. ‘코스 설계’가 전문 직업 영역으로 들어온 건 1860년 브리티시오픈이 시작되고 영국 여기저기서 코스가 생기자 골프 선수가 설계를 부업으로 하면서부터다. 오늘날 ‘골프의 아버지’라 부르는 올드 톰 모리스가 1894년 골프코스 설계 대가로 일당 1파운드에 여행 경비 약간을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1899년 런던의 골퍼 100명이 100파운드씩 모은 뒤 브리티시오픈에서 2승을 거둔 당대 스타플레이어 윌리 파크 주니어에게 3000파운드를 주고 런던 서편 히스 벌판에 서닝데일을 만들게 했다. 당시 그가 이익을 얼마나 남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문가에게 코스 설계를 위임하는 방식은 이때 처음 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부터 영국에선 선수 아닌 토공과 건축 지식을 가진 전문 설계가가 등장한다. 해리 콜트, 찰스 앨리슨, 톰 심슨, 프레드 호트리 등이 그들이다. 이전까지 골프코스 설계는 해안가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링크스를 단순 개조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들은 숲속에 인공적인 길을 내는 이른바 ‘루트 플랜(Route Plan)’을 시도했다.
오늘날 전 세계 골프장의 절반인 1만6000여 곳이 미국에 있다. 골프코스 설계는 20세기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미국 코스의 터전을 닦은 이는 미국 아마추어선수권 1회 우승자이자 미국골프협회(USGA) 창설자인 C. B. 맥도널드다. 미국에선 1930년대까지 골프장이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면서 일찍부터 설계 전문가 집단이 형성됐다.
대표적인 이가 의사 출신 앨리스터 매킨지 박사였다. 그는 로열 멜버른, 킹스턴 히스 등 오늘날 호주의 대표 코스를 설계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사이프러스 포인트, 오거스터 내셔널을 설계했다. 오늘날 미국 100대 코스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이 시기에 나왔고 도널드 로스, 앨버트 틸링 허스트 같은 유명 설계가들이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미국엔 베이비붐이 일었고 골프 인구도 급증했다. 이 무렵 등장한 코스 설계의 걸출한 스타가 로버트 트렌트 존스와 피트 다이다. 각종 투어가 생겨나고 TV로 중계되면서 다양한 ‘기술’과 ‘개성’이 코스에 접목됐다. 오늘날의 TV 중계에 맞춰진 토너먼트형 코스, 즉 TPC(Tournament Players Club)가 이때 완성됐다.
1970년대 이후로는 ‘톱 프로’들이 다시 코스 설계 영역에 뛰어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등이 자기 이름을 걸고 전문 설계가와 합작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자기 이름을 빌려주면서 코스 조형과 레이아웃에 선수로서 의견을 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게리 플레이어와 호주의 그레그 노먼, 피터 톰슨, 닉 팔도, 어니 엘스 등이 자국에서 코스 설계를 상당수 맡으며 대표적인 설계가로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남아공 등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하고 주목받는 국가에선 ‘톱 플레이어’ 이름값에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한 설계가는 잭 니클라우스다. 전 세계 24개국에서 365개 코스를 설계했고, 그중 289개는 자신이 설계에 참여했는데 그 증거로 서명까지 해준 ‘시그니처 코스’다. 우리나라에도 9곳이나 있다.
조만간 멕시코에 타이거 우즈가 설계한 코스도 개장한다고 한다. 그러니 그 코스에서 더블을 한 뒤 “누가 만들었어?”라고 타박했다간 좀 창피해질 수 있겠다.
정말 골프코스 설계는 누가 할까. 골프를 잘해야 설계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선수 출신이 설계까지 한 사례는 역사가 깊다. ‘코스 설계’가 전문 직업 영역으로 들어온 건 1860년 브리티시오픈이 시작되고 영국 여기저기서 코스가 생기자 골프 선수가 설계를 부업으로 하면서부터다. 오늘날 ‘골프의 아버지’라 부르는 올드 톰 모리스가 1894년 골프코스 설계 대가로 일당 1파운드에 여행 경비 약간을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
1899년 런던의 골퍼 100명이 100파운드씩 모은 뒤 브리티시오픈에서 2승을 거둔 당대 스타플레이어 윌리 파크 주니어에게 3000파운드를 주고 런던 서편 히스 벌판에 서닝데일을 만들게 했다. 당시 그가 이익을 얼마나 남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문가에게 코스 설계를 위임하는 방식은 이때 처음 등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부터 영국에선 선수 아닌 토공과 건축 지식을 가진 전문 설계가가 등장한다. 해리 콜트, 찰스 앨리슨, 톰 심슨, 프레드 호트리 등이 그들이다. 이전까지 골프코스 설계는 해안가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링크스를 단순 개조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들은 숲속에 인공적인 길을 내는 이른바 ‘루트 플랜(Route Plan)’을 시도했다.
오늘날 전 세계 골프장의 절반인 1만6000여 곳이 미국에 있다. 골프코스 설계는 20세기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기 미국 코스의 터전을 닦은 이는 미국 아마추어선수권 1회 우승자이자 미국골프협회(USGA) 창설자인 C. B. 맥도널드다. 미국에선 1930년대까지 골프장이 엄청나게 많이 등장하면서 일찍부터 설계 전문가 집단이 형성됐다.
대표적인 이가 의사 출신 앨리스터 매킨지 박사였다. 그는 로열 멜버른, 킹스턴 히스 등 오늘날 호주의 대표 코스를 설계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사이프러스 포인트, 오거스터 내셔널을 설계했다. 오늘날 미국 100대 코스 가운데 상당수가 바로 이 시기에 나왔고 도널드 로스, 앨버트 틸링 허스트 같은 유명 설계가들이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미국엔 베이비붐이 일었고 골프 인구도 급증했다. 이 무렵 등장한 코스 설계의 걸출한 스타가 로버트 트렌트 존스와 피트 다이다. 각종 투어가 생겨나고 TV로 중계되면서 다양한 ‘기술’과 ‘개성’이 코스에 접목됐다. 오늘날의 TV 중계에 맞춰진 토너먼트형 코스, 즉 TPC(Tournament Players Club)가 이때 완성됐다.
1970년대 이후로는 ‘톱 프로’들이 다시 코스 설계 영역에 뛰어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아널드 파머, 잭 니클라우스 등이 자기 이름을 걸고 전문 설계가와 합작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자기 이름을 빌려주면서 코스 조형과 레이아웃에 선수로서 의견을 냈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게리 플레이어와 호주의 그레그 노먼, 피터 톰슨, 닉 팔도, 어니 엘스 등이 자국에서 코스 설계를 상당수 맡으며 대표적인 설계가로 자리 잡고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와 남아공 등 이제 막 골프를 시작하고 주목받는 국가에선 ‘톱 플레이어’ 이름값에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한 설계가는 잭 니클라우스다. 전 세계 24개국에서 365개 코스를 설계했고, 그중 289개는 자신이 설계에 참여했는데 그 증거로 서명까지 해준 ‘시그니처 코스’다. 우리나라에도 9곳이나 있다.
조만간 멕시코에 타이거 우즈가 설계한 코스도 개장한다고 한다. 그러니 그 코스에서 더블을 한 뒤 “누가 만들었어?”라고 타박했다간 좀 창피해질 수 있겠다.
톱 플레이어이자 골프코스 설계가인 잭 니클라우스(위).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인천 송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