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 대한 여야 간 타결이 있은 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이완구 원내대표가 끌어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과연 이번 세월호 특별검사 추천권 합의안은 새누리당에 득이 될까, 아니면 독이 될까.
9월 30일 새정치민주연합 박범계 원내대변인은 이날 여야가 극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협상에 합의하고 국회에 등원하자 “추후 논의에서 유가족 뜻을 최대한 반영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최대 쟁점이던 세월호 특별검사(특검) 추천권을 여야 합의로 4명의 특검 후보군을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에 추천하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여전히 남은 쟁점이 적잖은 탓이다.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와 특검이 실질적으로 활동하기까지 여야 간 치열한 수 싸움이 예상된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 연말까지 갈 수도
여야는 그동안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통해 특검 추천권을 제외하고 대략적인 틀을 만들어놓았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적잖다. 문제는 현재 새정치연합에 이를 담당하는 창구가 없다는 점이다. 세월호 특별법 태스크포스(TF) 야당 간사였던 전해철 의원은 8월 여야 1차 합의안에 항의하며 간사직을 사임했다. 그동안 전체 협상을 진두지휘했던 박영선 원내대표마저 10월 2일 사퇴하면서 새정치연합은 원내대표를 새로 선출하고 협상단을 새롭게 꾸려야 한다.
이에 따라 당장 10월 말까지 세월호 특별법을 정부조직법, 유병언법(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과 함께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적잖다. 그동안 여야가 보여온 모습을 볼 때 ‘반드시 10월 말까지 처리한다’는 의미이기보다 ‘10월 말까지 처리하도록 노력한다’가 될 공산이 크다.
특히 정부조직법과 유병언법이 연계되면서 두 법안의 논의 여부에 따라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더 미뤄질 개연성도 크다.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정부조직법의 경우 여야 쟁점이 적잖아 합의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결국 연말까지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세월호 진상조사의 양대 축은 진상조사위와 특검이다. 강제 수사권이 없는 진상조사위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특검을 임명해 ‘투트랙’ 진실 규명에 나선다는 복안이지만 곳곳이 지뢰밭이다.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면 먼저 진상조사위가 꾸려진다. 현재 여야가 합의한 부분은 ‘진상조사위를 구성한다’는 부분밖에 없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설치될 진상조사위는 여야 각 5명, 대법원장과 대한변호사협회(변협) 각 2명, 유가족 추천 3명 등 17명으로 구성된다. 당장 진상조사위 위원장을 누가 맡을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유가족 추천 몫으로 3명이 주어졌지만, 유가족이 일반인 유가족과 단원고 유가족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누가 위원 3명을 추천할지도 쟁점이다.
조사권 범위를 놓고 여야가 대치할 공산도 크다. 새정치연합은 조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동행명령권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 3000만 원을 부과하는 강제조항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새누리당은 위헌 여지가 있다며 신중한 반응이다.
진상조사위에 기관과 단체에 대한 실지조사권을 부여할지를 놓고도 여야 간 충돌이 예상된다. 실지조사권은 진상조사위가 특정 기관에 찾아가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새누리당은 진상조사위가 실지조사권을 남용해 청와대나 언론사 등을 찾아가 망신 주기용 공세를 펼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반면, 새정치연합은 강력한 조사권을 부여하려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는 처지다.
진상조사위의 청문회 개최는 잠정 합의가 이뤄졌지만 증인 채택을 놓고 여야 간 팽팽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새정치연합은 ‘국회증언감정법’을 적용해 청문회 출석을 강제하자고 주장하지만 새누리당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선 “증인 채택 문제로 갈등을 빚다 청문회를 제대로 열지도 못한 채 활동을 종료한 세월호 국정조사 특위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진상조사위 활동 기간에 대해선 여야가 1년 반에서 최대 2년까지로 합의했다. 진상조사위가 11월 초 구성된다 해도 2016년 4월 치르는 20대 총선 시기와 겹칠 개연성이 크다. 정치권 한 인사는 “자칫 선거바람에 휘말려 진상조사위 활동이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상조사위와 별개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검도 가동된다. 특검 가동 시기는 빨라야 내년 하반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상조사위가 어느 정도 활동해야 특검 수사에서 필요한 부분을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상조사위의 조사가 강제력이 떨어지는 만큼 ‘1차 진상조사(1년)→특검(90일)→2차 진상조사(6개월)→특검 연장(30일)’의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2회까지 연장 가능하다.
특검 후보 추천 변협 회장이 캐스팅보트
2007년 삼성 비자금의혹 관련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 통과 당시 국회 모습. 삼성 특검은 공안통 특별검사 임명으로 두고두고 말이 나왔다.
특검의 수사 대상과 범위를 놓고서도 여야 간 팽팽한 기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성역 없는 수사를 주장하며 특검 수사 대상에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까지 포함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새누리당은 ‘절대 불가’ 방침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특검 대상을 놓고 여야 간 정쟁을 벌이면 특검 수사가 방향성을 잃고 흐지부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특검이 실제 활동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여야 간 합의가 필요한 가운데 정작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끝까지 대립한 쟁점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추천위에 유족이 직접 참여하는 문제였던 만큼 특검 추천위의 선정부터 초미의 관심 사안이 되고 있다.
상설 특검법상 특검 추천위의 구성은 총 7명으로 여당 몫 2명, 야당 몫 2명, 법무부 차관과 법원행정처 차장, 변협 회장으로 구성된다. 여야가 새롭게 협상을 벌여 유족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는 새로운 안이 채택되지 않는 한 이 위원들이 최종 확정한 후보 2명 중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된다.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만 추천위원 중 4명을 확보하는 쪽이 실질적으로 특검을 선택한다고 볼 수 있는 것. 위원 중 다수를 확보하는 쪽이 대통령에게 올릴 후보군 2명을 모두 자신들과 코드가 맞는 인물로 선택해 올리면 대통령은 싫든 좋든 그중 1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추천위 구성을 정치적 성향으로 분석해보면 언뜻 보기에 위원 7명 가운데 여당 인사가 4명(법무부 차관, 법원행정처 차장, 여당 몫 2명)인 까닭에 새누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할 것 같지만, 여야 합의의 단서 조항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여당 몫으로 된 2명을 추천하는데 ‘야당과 세월호 유가족의 사전 동의를 받는다’는 단서 조항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여당 몫인 2명 위원의 선정을 두고 여야와 유족이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 결국 무색무취한 중립 인사가 선정될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만약 여당 몫인 2명의 추천위원에 중립적인 인사가 선정되면 캐스팅보트를 쥘 사람은 엉뚱하게도 변협 회장이 된다. 여당 몫 2명을 제외하면 야당 몫 2명과 정부 측 인사 2명이 동수를 이루기 때문에 마지막 결정권이 변협 회장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위철환(56·사법연수원 18기) 변협 회장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야당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로, 7월 변협 차원에서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공식성명서를 냈다 전직 변협 회장단과 보수단체로부터 “법리에 어긋난 행동이자 정치 개입”이라며 집중포화를 맞은 바 있다.
만약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자는 의견이 위 회장 개인의 정치적 소신이라면 특검 후보 선정에서 유족과 야권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 된다. 대통령에게 최종 추천할 특검 후보 2명을 모두 야권 성향의 인사로 채울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다.
문제는 과연 위 회장의 정치적 성향이 유가족의 주장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변협 집행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가 하는 점이다. 위 회장을 잘 아는 법조계 한 인사는 “변협 내부에 꾸려진 ‘세월호 참사 피해자지원 및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멤버들이 워낙 야성이 강하다. 유가족의 주장을 강하게 반영한다. 위 회장은 집행부의 공식적인 의견을 받아들여 성명서를 낸 것일 뿐이다. 위 회장이 추천위에 들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위 회장 본인밖에 모른다”고 귀띔했다.
2013년 6월 11일 개최된 특별감찰관 제도 도입 방안에 관한 공청회. 올해 7월 관련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지만 감찰관 후보 추천이 진통을 겪으면서 파행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세월호 특별검사도 결국 이와 비슷해질 것이란 여론이 많다.
또한 위 회장의 임기가 내년 2월 25일 끝나는 데다 위 회장이 내년 1월 있을 변협 회장 선거에 재출마하지 않기로 이미 의사 표명을 했다는 점도 복병이다.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안에는 추천위를 언제까지 만들어야 한다는 경과 규정이 없다. 다시 말해 내년 2월 25일 이후 추천위가 꾸려질 경우 그때 변협 회장은 위 회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선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온 10월 초 현재 차기 변협 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3명의 법조인 가운데 딱히 야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없다.
서울고등검찰청장 출신인 박영수(62·사법연수원 10기) 변호사와 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소순무(63·10기)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순수 개업 변호사 출신인 하창우(60·15기)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등 3명이 출사표를 던졌는데, 특수통 검사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거친 박 변호사는 여권에서 특검 후보로 가장 먼저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물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변협 한 관계자는 “위 회장은 공식적으로 불출마 선언을 한 적이 없다. 상임위원회 이사회 자리에서 재선하지 않겠다고 밝힌 게 다다. 당선 가능성을 차치하고 재출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검찰 출신 법조계 원로는 “추천위가 꾸려져야 여야 정치권을 대변하는 특검 후보들이 거명될 텐데, 정작 추천위원 선정도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를 감찰한다고 만든 특별감찰관의 경우도 여당이 추천한 인사는 제안을 거절해버렸고 야당이 추천한 인사는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야당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여당이 보이콧했다. 이번 특검 후보 추천위원의 경우는 그 부담이 감찰관 후보보다 더 심하다. 잘해봐야 본전인데 누가 추천위원을 하려 하겠나”고 반문했다.
추천위가 우여곡절 끝에 꾸려진다 해도 여야 모두 자신의 이해를 반영할 특검 후보를 추려내는 작업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인력 풀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과거 특검의 경우 공안통 검사 출신을 임명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경험이 있는 데다 지난 10년간 옷을 벗은 50, 60대 특수통 검사 출신 법조계 인사 대부분이 새누리당(옛 한나라당)과 코드가 맞지 않아 옷을 벗었거나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길 거부하는 이가 대부분이다.
야권 성향이 강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솔직히 유가족 뜻을 최대한 반영하려는 야당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들의 이해관계를 충실히 반영해줄 이름난 특수통 검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처음부터 맹인 코끼리 다리 만지기식의 논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