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 부케를 든 베르트 모리조’, 에두아르 마네, 1872년, 55×40cm,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이 초상화의 주인공은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의 제자이자 동료 베르트 모리조(1841~1895)다. 마네의 그늘에 가렸지만 실상 모리조는 마네에 필적할 만한 화가였다. 그는 제1회 인상파 전시가 열린 1874년부터 모네, 시슬레, 르누아르 등과 함께 열심히 인상파전에 참여했다. ‘요람’ 등 모리조의 여러 작품이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것만 봐도 화가로서 그가 이룬 성과가 결코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모리조가 남자였다면, 오늘날 그는 미술사에서 훨씬 더 비중 있는 화가로 다뤄졌을 것이다.
부유한 집안의 딸이던 모리조는 어린 시절부터 화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19세기 후반 파리에는 여학생에게 본격적으로 미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없었다.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다 마네를 우연히 만났다. 마네는 그의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금세 알아봤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의 테크닉을 전수해줬다. 1872년 작 ‘바이올렛 부케를 든 베르트 모리조’는 마네가 모리조에게 검은색을 사용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제작한 일종의 교본 같은 그림이다.
마네가 이 그림에서 모리조에게 굳이 검은색 의상을 입힌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는 총명한 제자에게 검은색이 줄 수 있는 풍성하면서도 밀도 짙은 인상을 실험으로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검은색 옷을 입게 한 다음, 그를 햇살이 잘 드는 창가에 앉혔다. 검은색의 효과를 강조하고자 마네는 모리조의 눈동자까지도 검은색으로 그려 넣었다(모리조의 실제 눈동자 색은 녹색이었다). 그리고 그의 혈색 좋은 장밋빛 피부에 과감하게 음영을 넣고, 의상과 모자에 들어간 미묘한 명암을 통해 검은색이 빛을 받았을 때 어떤 효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줬다.
빛의 움직임을 포착해 그 순간의 인상을 캔버스에 옮기는 인상파 화가는 검은색을 잘 쓰지 않았다. 르누아르는 인상파가 결성된 이유에 대해 “검은색 물감이 다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농담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마네는 다른 인상파 화가와 달리(그는 자신을 인상파로 분류하는 것을 달가워하지도 않았지만) 검은색을 대담하게 화면에 사용했고 이런 취향 때문에 그의 그림은 현대적이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마네는 1865년 떠난 스페인 여행에서 스페인 미술의 전통, 특히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마네는 스페인 처녀의 머리카락처럼 짙은 검은색을 작품에 즐겨 사용하게 된다.
단순한 배경과 화면을 압도하는 검은색, 그리고 피부를 표현한 장밋빛 등 세 가지 색감만으로 강렬하고 생동감 있는 초상화를 완성한 마네의 솜씨는 후배 화가들을 다시 한 번 매료했다. 시인 폴 발레리는 “이 작품은 마네 예술의 정수다. 나는 마네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베르트 모리조의 초상’보다 윗자리를 차지할 만한 그림을 보지 못했다”고 격찬했다. 이 작품 외에 역시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마네의 대작 ‘발코니’ 역시 모리조를 모델로 한 것이다. 한때 두 사람이 동료 이상의 관계라는 소문도 돌았으나, 모리조는 1874년 마네 동생 외젠 마네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