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가는 톨스토이’, 일리야 레핀, 1887년, 페이퍼보드에 유채, 27.8×40.3cm, 러시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만약 레핀에게 자신이 그린 예술가들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과연 그는 누구의 초상화를 택할까. 모르긴 해도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초상화를 꼽을 것 같다. 레핀에게 톨스토이는 단순한 동료 예술가가 아니라 정신적 스승이었다. 그는 이 대작가와 30여 년에 걸쳐 교분을 나누며 수많은 초상화를 남겼다. 그중에는 톨스토이가 초상화의 전형적인 포즈로 앉아 있는 작품도 있지만, 자신의 농장에 맨발로 서 있거나 농사일에 몰두하는 모습, 나무 그늘에 누워 책을 읽는 모습 등 한결 자연스러운 작품이 더 많다. 레핀은 지위와 재산, 작가로서의 부담을 다 떠나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톨스토이의 맑은 영혼을 그리려 했다. 그래서 그의 초상화 속 톨스토이는 산신령처럼 길게 기른 흰 수염을 날리며 허름한 옷을 입고 맨발로 걸어가는 현자의 모습이다.
레핀이 완성한 수많은 톨스토이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파격적인 작품은 1887년 그린 ‘밭을 가는 톨스토이’라는 작은 그림이다. 초상화 속 작가는 마치 농부처럼 말 두 필이 끄는 쟁기로 밭을 갈고 있다. 이 초상화가 그려질 당시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의 작품을 발표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는 백작 가문에서 태어나 넓은 영지를 물려받았기에 육체노동을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농민의 삶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던 그는 지주라는 안락한 지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데 대해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이 때문에 농노제가 폐지되기 전 자신의 농노들을 해방시켰지만, 이런 파격적 행보는 귀족 사회의 비난만 불러일으켰다.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야마저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귀족이자 대지주라는 세속적인 안락함이 도리어 그에게는 정신적 갈등과 고통의 원인이 된 것이다.
레핀의 작품 속 톨스토이 모습, 즉 흰 모자를 쓴 채 두 손으로 쟁기를 단단히 잡고 밭을 가는 모습에서 노동으로 이 같은 자괴감과 고뇌를 잠시나마 잊으려 하는 그의 안간힘이 엿보인다. 톨스토이는 레핀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잠깐 포즈를 취한 것이 아니라 진짜 밭을 갈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레핀은 농사일에 몰두하는 시간만큼은 톨스토이가 자신을 괴롭히는 고뇌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던 모양이다. 평소 날카롭다 못해 베일 듯 예리한 레핀의 시각이 이 초상화에서는 잠시 누그러져 있다. 그는 부드러운 흙의 감촉에서 안식을 찾는 위대하고 예민한 영혼을 온화한 시선으로 캔버스에 옮겨놓았다.
작가 로맹 롤랑은 톨스토이를 ‘예술과 인간 모두에서 완성에 도달한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이 초상화 속 톨스토이의 모습, 그리고 레핀의 시선이야말로 완성에 도달한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뛰어난 이 두 명의 예술가는 서로를 영혼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그 결과물은 어떠한 설명도 필요 없을 만큼 탁월하고 또 완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