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새롭게 바뀐 상식이나 높아진 기준을 업계에서는 ‘뉴노멀(New Normal)’이라 부릅니다. 본 시리즈에서는 도전적인 기업가를 찾아 우리 시대 뉴노멀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창업 열기가 높아지면서 ‘투자심사역’이란 직종이 관심을 끌고 있다. 투자심사역이란 창업투자회사(창투사)에서 말 그대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이다. 이름 때문에 은행의 대출심사역을 떠올리기 쉽지만, 초기 기업의 가치 평가는 일반적인 자산 평가와는 큰 차이가 있다. 투자심사역의 안목에 따라 창업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로 인식된다.
윤건수(53·사진) DSC인베스트먼트(DSC) 대표는 벤처 거품 붕괴 후 갈 지(之) 자 행보를 보였던 창투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주역으로 꼽힌다. 전자공학 분야 연구원 출신으로 1999년 한국기술투자를 통해 투자업에 데뷔한 그는 2012년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고자 회사를 세워 독립했다.
투자심사역을 모두 회사 파트너로 대우
회사 설립 1년 만에 정부 주도의 성장사다리펀드 1차 스타트업펀드의 위탁운용사로 선정됐고, 2013년 ‘대한민국 벤처·창업 박람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창투사는 수상보다 실적이 먼저다. 옐로모바일(Yello Mobile), 플리토(Flitto), 와이브레인(YBrain), 코인플러그(Coinplug)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화제를 모은 스타트업 모두 DSC가 초기에 선택한 곳들이다. 윤 대표는 이 같은 실적에 대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최근엔 스타트업 창업 열기가 높아져 창투사 문을 두드리는 우수 인재와 초기 기업들이 크게 늘었다.
윤 대표가 창투사 업계에 가져온 ‘뉴노멀’은 투자심사역의 위상을 크게 격상한 것이다. 이제까지 창투사 투자심사역은 금융권 화이트칼라와 비슷했다. 후보 기업의 가치를 판단해 투자를 결정하고 회사와 협력하면 그만이었다. 직업 만족도가 떨어지고 이직도 잦았다. 윤 대표는 오랜 벤처투자 경험을 통해 바로 이 부분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DSC의 투자심사역 모두를 회사 지분을 가진 회사 파트너로 대우했다. 그들이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는 데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투자한 것이다. 윤 대표는 “만일 우리 인재가 다른 회사로 옮기면 이제까지 진행돼온 사업의 방향과 깊이, 노하우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라며 “투자심사역이 장기간 회사에 머물 수 있게 만드는 게 CEO(최고경영자)의 임무”라고 말한다. 자연스레 업무 평가는 투자 실적과 회수 성과 등 단기 숫자가 아닌, 투자한 회사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토대로 한다. 투자심사역은 투자회사의 성장을 위해 지속적인 관리와 지원에 나선다.
윤 대표가 직접 회사를 차린 이유는 단기투자에 집중된 우리나라 벤처캐피털 생태계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국내 창투사는 정부나 기관투자자로부터 받은 자금을 안전하게 관리하며 운영 보수만 받았다. 그러다 보니 안정적인 대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창투사의 1번 요구가 “대기업에 납품하세요”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다.
윤 대표는 그러나 언젠가부터 대기업과 관계된 회사들의 이익이나 성장이 급감하면서 한계에 이르렀다고 봤다. 이 같은 방식으로는 페이팔, 페이스북처럼 미래 가치가 큰 기업을 결코 발굴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아주 당연하게도 초기 기업 투자에 눈을 돌렸다. 뛰어난 경영자가 있고 미래지향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곳을 발굴하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미래 가치라고 여겼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주도해온 분야에 대한 투자는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IT(정보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여요. 후발 투자자에겐 기회가 아예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번역 플랫폼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플리토의 창업자를 만난 2012년의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30분간 사업 설명을 들었다. 그 직후 윤 대표는 투자심사역들과 긴급회의를 갖고 곧바로 5억 원의 투자를 결정했다. 창업 공간으로 DSC 사무실을 나눠주기도 했다. 지금에야 익숙한 모습이지만 스타트업 열풍이 불기 전에는 파격이자 뉴노멀이었다.
윤 대표는 자신이 창투사에 근무하면서 투자한 회사의 경영을 직접 맡았던 독특한 경험도 갖고 있다. 한국기술투자에 있을 때 바이아웃(buy-out)을 한 것이다. 바이아웃은 창투사가 펀드를 조성해 기업을 인수한 뒤 경영하는 것을 뜻한다. 허름한 집을 사서 누구나 갖고 싶은 집을 만들어 되파는 것으로, 미국에선 흔한 일이다. 그는 “바이아웃을 해서 회사 안으로 들어가니 그동안 내가 주변만 빙빙 돌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스와 종업원의 본심을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경제, 이제는 스타트업이다”
투자자는 대개 회사의 실체와 미래에 관심을 두기보다 수익률에 목을 맨다. 언제라도 지분을 팔고 떠날 수 있다. 그러나 현장 경영자는 투자자 관점과 정반대에 서 있었다. 그 처지를 겪은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윤 대표는 기업 소유구조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투자심사역들을 회사 주주로 만들면서 DSC는 국내 창투사 가운데 최초로 전 직원이 주주인 회사가 됐다. 그의 관점에서는 투자심사역이 창투사의 핵심이다. 그들에게 자율권을 최대한 줘야 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그의 회사 소속 투자심사역들은 교육받거나 출장 가거나 공부할 때 눈치를 보지 않는다. 윤 대표는 투자심사역은 야구선수가 아침에 워밍업으로 달리기를 하듯, 책을 많이 읽고 세미나도 많이 참석하는 등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쪽에 집중 투자한다.
“어떤 창투사의 투자심사역이 유망 기업을 발굴해 투자심사위원회에 올렸는데 기대와 달리 부결됐습니다. 투자심사역이 다수결로 투표해 결정하는 구조 때문이었죠. 전 직원이 주주로 참여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회의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내 회사의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윤 대표의 새로운 시도는 또 있다. 보통은 기업 대주주가 은퇴하면 지분이 자녀 등 가족에게 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회사의 특성과 전문성이 사라질 수 있다. 윤 대표는 자신을 포함한 대주주가 회사를 나갈 때 지분을 회사에 내놓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 주식은 회사나 다른 직원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승계한다. 윤 대표는 “주식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가야지 내 아들 손자에게 가면 안 된다”면서 “투자 회사는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 중심의 경영 체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모저모 한국 환경에서 독특한 선택을 한 듯 비친다.
창업 열기가 높아지면서 ‘투자심사역’이란 직종이 관심을 끌고 있다. 투자심사역이란 창업투자회사(창투사)에서 말 그대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이다. 이름 때문에 은행의 대출심사역을 떠올리기 쉽지만, 초기 기업의 가치 평가는 일반적인 자산 평가와는 큰 차이가 있다. 투자심사역의 안목에 따라 창업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 생태계의 핵심 파트너로 인식된다.
윤건수(53·사진) DSC인베스트먼트(DSC) 대표는 벤처 거품 붕괴 후 갈 지(之) 자 행보를 보였던 창투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주역으로 꼽힌다. 전자공학 분야 연구원 출신으로 1999년 한국기술투자를 통해 투자업에 데뷔한 그는 2012년 자신의 철학을 실천하고자 회사를 세워 독립했다.
투자심사역을 모두 회사 파트너로 대우
회사 설립 1년 만에 정부 주도의 성장사다리펀드 1차 스타트업펀드의 위탁운용사로 선정됐고, 2013년 ‘대한민국 벤처·창업 박람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창투사는 수상보다 실적이 먼저다. 옐로모바일(Yello Mobile), 플리토(Flitto), 와이브레인(YBrain), 코인플러그(Coinplug)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화제를 모은 스타트업 모두 DSC가 초기에 선택한 곳들이다. 윤 대표는 이 같은 실적에 대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최근엔 스타트업 창업 열기가 높아져 창투사 문을 두드리는 우수 인재와 초기 기업들이 크게 늘었다.
윤 대표가 창투사 업계에 가져온 ‘뉴노멀’은 투자심사역의 위상을 크게 격상한 것이다. 이제까지 창투사 투자심사역은 금융권 화이트칼라와 비슷했다. 후보 기업의 가치를 판단해 투자를 결정하고 회사와 협력하면 그만이었다. 직업 만족도가 떨어지고 이직도 잦았다. 윤 대표는 오랜 벤처투자 경험을 통해 바로 이 부분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DSC의 투자심사역 모두를 회사 지분을 가진 회사 파트너로 대우했다. 그들이 새로운 기업을 발굴하는 데 필요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투자한 것이다. 윤 대표는 “만일 우리 인재가 다른 회사로 옮기면 이제까지 진행돼온 사업의 방향과 깊이, 노하우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라며 “투자심사역이 장기간 회사에 머물 수 있게 만드는 게 CEO(최고경영자)의 임무”라고 말한다. 자연스레 업무 평가는 투자 실적과 회수 성과 등 단기 숫자가 아닌, 투자한 회사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토대로 한다. 투자심사역은 투자회사의 성장을 위해 지속적인 관리와 지원에 나선다.
윤 대표가 직접 회사를 차린 이유는 단기투자에 집중된 우리나라 벤처캐피털 생태계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국내 창투사는 정부나 기관투자자로부터 받은 자금을 안전하게 관리하며 운영 보수만 받았다. 그러다 보니 안정적인 대기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창투사의 1번 요구가 “대기업에 납품하세요”라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다.
윤 대표는 그러나 언젠가부터 대기업과 관계된 회사들의 이익이나 성장이 급감하면서 한계에 이르렀다고 봤다. 이 같은 방식으로는 페이팔, 페이스북처럼 미래 가치가 큰 기업을 결코 발굴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아주 당연하게도 초기 기업 투자에 눈을 돌렸다. 뛰어난 경영자가 있고 미래지향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곳을 발굴하는 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미래 가치라고 여겼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주도해온 분야에 대한 투자는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IT(정보기술) 분야의 스타트업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여요. 후발 투자자에겐 기회가 아예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의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번역 플랫폼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플리토의 창업자를 만난 2012년의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30분간 사업 설명을 들었다. 그 직후 윤 대표는 투자심사역들과 긴급회의를 갖고 곧바로 5억 원의 투자를 결정했다. 창업 공간으로 DSC 사무실을 나눠주기도 했다. 지금에야 익숙한 모습이지만 스타트업 열풍이 불기 전에는 파격이자 뉴노멀이었다.
윤 대표는 자신이 창투사에 근무하면서 투자한 회사의 경영을 직접 맡았던 독특한 경험도 갖고 있다. 한국기술투자에 있을 때 바이아웃(buy-out)을 한 것이다. 바이아웃은 창투사가 펀드를 조성해 기업을 인수한 뒤 경영하는 것을 뜻한다. 허름한 집을 사서 누구나 갖고 싶은 집을 만들어 되파는 것으로, 미국에선 흔한 일이다. 그는 “바이아웃을 해서 회사 안으로 들어가니 그동안 내가 주변만 빙빙 돌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스와 종업원의 본심을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경제, 이제는 스타트업이다”
국내 창업투자회사 가운데 최초로 전 직원이 주주인 DSC인베스트먼트 직원들. 윤건수 대표는 투자 여부를 결정할 때 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
윤 대표는 기업 소유구조와 관련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투자심사역들을 회사 주주로 만들면서 DSC는 국내 창투사 가운데 최초로 전 직원이 주주인 회사가 됐다. 그의 관점에서는 투자심사역이 창투사의 핵심이다. 그들에게 자율권을 최대한 줘야 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그의 회사 소속 투자심사역들은 교육받거나 출장 가거나 공부할 때 눈치를 보지 않는다. 윤 대표는 투자심사역은 야구선수가 아침에 워밍업으로 달리기를 하듯, 책을 많이 읽고 세미나도 많이 참석하는 등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쪽에 집중 투자한다.
“어떤 창투사의 투자심사역이 유망 기업을 발굴해 투자심사위원회에 올렸는데 기대와 달리 부결됐습니다. 투자심사역이 다수결로 투표해 결정하는 구조 때문이었죠. 전 직원이 주주로 참여하기 전과 후를 비교하면 회의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내 회사의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윤 대표의 새로운 시도는 또 있다. 보통은 기업 대주주가 은퇴하면 지분이 자녀 등 가족에게 간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회사의 특성과 전문성이 사라질 수 있다. 윤 대표는 자신을 포함한 대주주가 회사를 나갈 때 지분을 회사에 내놓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 주식은 회사나 다른 직원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승계한다. 윤 대표는 “주식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가야지 내 아들 손자에게 가면 안 된다”면서 “투자 회사는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족 중심의 경영 체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모저모 한국 환경에서 독특한 선택을 한 듯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