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이 10월 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유가족이 참여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10월 1일 밤 서울 청운동 주민센터 앞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 천막에는 이런 글씨가 붙어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 소속 유가족과 시민들은 8월부터 이곳에 머물며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해왔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이날도 전과 다름없이 거리에서 밤을 맞았다. 서울 광화문광장과 국회의사당에 마련된 농성장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9월 30일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지만, 상당수 유가족은 이를 거부하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들의 농성이 시작된 건 7월 12일.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야·유가족 3자협의체 구성을 요구하며 국회를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 이날 국회 본청 앞에서 노숙시위를 시작한 유가족들은 같은 달 14일부터 광화문광장, 그리고 8월 22일부터는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도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0월 1일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우리가 줄곧 요구한 건 세월호 특별법 제정 논의에 가족들을 참여하게 해달라는 것, 그래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게 해달라는 것뿐이었다. 정치권이 시간만 끌다 끝내 이 바람을 거부한 것 같아 마음 아프다”고 밝혔다.
야당 안에서도 출구전략 모색
그러나 그사이 이들을 둘러싼 환경은 크게 달라진 상태다. 유가족의 농성 중단을 요구하는 보수단체의 시위가 잇따르고, 서울시는 세월호 유가족이 설치한 광화문광장 천막에 사용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국회사무처도 9월 말 국회 농성장의 유가족들에게 자진 철수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의원이 최근 “이제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들도 돌아간 영혼들의 영면을 위해 마음을 정리할 때가 됐다. 그 절제된 아름다운 모습에 국민이 지지를 보낼 것”이라고 밝히는 등 야당 안에서도 ‘세월호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이가 늘어나는 모양새다.
심지어 유가족 사회도 갈라졌다. 단원고 학생 유가족이 중심이 돼 구성한 가족대책위와 별도로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이 조직한 일반인대책위는 10월 1일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여야 합의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한성식 일반인대책위 부위원장은 “법안의 세부 사항은 앞으로 계속 협의하면 된다. 이번 합의안을 거부하면 국민이 유가족에게 등을 돌릴 수 있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명분도 잃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족대책위는 ‘합의안 수용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10월 1일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경기 안산시 세월호 사고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아 유가족들을 설득했지만 이들의 뜻을 바꾸지는 못했다.
가족대책위가 밝히는 이유는 합의안대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 경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불가능해진다는 점. 특별검사(특검) 추천 단계에 유가족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가족대책위는 여야 최종협상을 앞두고 그동안 요구했던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에서 한 발 물러섰다. 그 대신 야당이 제안한 ‘특검후보 추천 때 유족 참여’ 방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종 합의문 1항은 ‘양당 합의하에 4인의 특별검사후보군을 특별검사후보추천위원회에 제시한다’가 됐다. 3항은 ‘유족의 특별검사후보군 추천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한다’이다. 가족대책위는 이 규정이 사실상 유가족 배제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전명선 가족대책위원장은 이에 대해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재난관리 구조·구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청와대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특검이 이 문제를 수사해야 진실 규명이 가능하다. 지금 여야는 특검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를 배제한다는데 여당, 야당, 유가족 중 청와대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세력이 유가족인가, 여당인가”라고 반발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있는 세월호 국민대책회의 릴레이 단식 천막들(왼쪽)과 가족대책위 대표들이 9월 30일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을 거부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상설특검법에 있는 특별검사추천위원회 구성(26쪽 참조)을 보면 위원 7명 중 정부·여당 인사가 4명이다. 사실상 정부 여당에 유리한 구조인 셈이다. 그런데 유가족의 참여까지 배제하면 과연 제대로 된 특검을 임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그의 말이다.
“이번 합의의 첫째 문제는 여야가 4명의 특검 후보를 선정하는 데 최종 합의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거다. 이 경우 특검 후보 자체를 선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 오랜 샅바싸움을 하다 결국 각각 2명씩 후보를 정해 특검추천위원회에 올릴 공산이 크다. 이때 여당 입김이 강한 특검추천위원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겠는가. 최대한 균형을 맞춘다 해도 여당 추천 인사 1명, 야당 추천 인사 1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지 않겠나. 그러면 대통령이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자명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합의는 아무 내용이 없는, 유족을 놀리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가족대책위는 여야 합의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2+2’ 결정을 막으려면 유가족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최소한 합의문 3항(‘유족의 특별검사후보군 추천 참여 여부는 추후 논의한다’) 문구를 ‘추후 논의’가 아니라 ‘지금부터 바로 논의’하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여야가 이러한 뜻을 수용하지 않으면 끝까지 싸워나갈 방침이다. 전명선 가족대책위원장은 “10년이든 20년이든 못 싸우겠느냐”고 했다. 가족대책위 한 관계자는 “KBS가 8월 30일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구성할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58.3%)는 의견이 ‘동의하지 않는다’(38.6%)는 의견보다 19.7%p 높게 나타났다. 대리기사 폭행 사건이 발생한 후인 9월 21일 JT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줘야 한다’는 응답이 42.8%로 ‘줘선 안 된다’(42.9%)와 거의 똑같이 나왔다. 상당수 국민은 아직 유가족의 뜻에 공감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바란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여야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지만, 본격적인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정치권 앞에는 유가족의 동의라는 큰 관문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