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약수터에서 물통을 늘어놓은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각종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앞뒤가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도의 핵심은 “서울시내 약수터 중 절반에 가까운 곳이 수질 부적합 판정을 받았으나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고 소독 등 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 수질검사 기관인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 직원의 말을 인용해 기사화한 “음용수 수질로는 부적합한데 먹을 수는 있다”는 보도 내용은 누가 보더라도 이상했다.
하지만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의 2002년 12월24일 발표에는 정작 부적합 판정이 난 약수를 먹어도 된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실제 이날 연구원이 낸 자료에는 2002년 11월18일부터 12월25일까지 서울시내 약수터 379곳에 대해 하반기 수질검사를 벌인 결과 174개소(45.9%)의 약수터가 수질기준에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만 밝혀져 있을 뿐이다.
연구원 음용수 팀의 김교붕씨는 “도대체 어떤 직원이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부적합 판정이 난 물은 먹을 수 있는 물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약수에 대한 사용금지나 폐쇄는 기초자치단체가 결정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연구원측은 또 “일부 언론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174개 약수터 중 21곳만이 이용이 중지됐다고 보도했는데 이마저도 근거가 전혀 없다”며 “아마 식중독 원인균인 여시니아균이 검출돼 수질오염 상황이 가장 심각한 약수터만을 선별해서 기자들이 자의적으로 보도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부적합 판정을 받은 서울시내 10개 산 약수터에는 약수의 이용을 두고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강북구 4개 약수터의 경우 이용금지 표지판을 붙여놓았는데도 주민들과 등산객은 여전히 약수터를 이용하고 있는 것. 하지만 이는 상황이 나은 경우다. 일부 구의 경우는 수질검사 결과가 발표된 지 10일이 지났는데도 이용금지 안내판조차 찾아볼 수 없다.
강북구청 공원녹지과의 한 관계자는 “이용금지 표지판을 붙여놓았는데도 주민들이 방송과 신문의 보도 내용을 믿고 오염된 약수를 그대로 먹고 있다. 약수의 이용을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약수터를 폐쇄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1년에 네 번 수질검사를 실시해 그 결과가 모두 부적합 판정이 나야 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약수터가 폐쇄되기까지 1년 동안은 주민들은 부적합 판정을 받은 오염된 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연구원 관계자는 “부적합 판정 이후 수질이 다시 맑아졌을지 모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사실 이번 수질검사에서 약수터를 오염시킨 주범으로 지목된 대상은 주민들이 약수터에 데리고 오는 애완동물의 배설물이었다. 하지만 수질검사 발표 이후에도 이들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약수터를 찾는 애완동물은 줄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부적합 판정이 난 약수터를 이용한 주민이 전염병에라도 걸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보건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