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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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빛과 그림자 … 112명의 발자취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03-01-09 13: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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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의 빛과 그림자 … 112명의 발자취
    ‘위대한 아시아’에 등장하는 112명을 훑어가다 보면 한 번도 입에 올려보지 않은 낯선 이름이 많아 당황스럽다. 솔직히 몽골 민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던 작가 차드라발링 로도이담바의 대하소설 ‘맑은 타미르 강’을 알지 못하며, 인도 경제를 일군 타타그룹의 자한기르 라탄지 다다바이 타타(불과 1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의 이름 또한 생소하다. 최근 중국 권력의 세대교체가 전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된 덕분에 중국의 정치가며 사상가들의 이름이 조금 귀에 익숙해진 정도일 뿐 200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오싱젠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던가.

    인도사 전문가인 이옥순씨가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너무 오랜 동안 “말없이 누운 채 서양의 시선에 몸을 맡기는 수동적 동양”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아시아’는 ‘진정한 아시아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무엇보다 아시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책이다. 지역, 민족, 종교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아시아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 인물 중심의 접근법이다. 이 책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인물 112명의 생애와 업적, 영향 등을 200자 원고지 30매로 요약한 짧은 평전이다. 백과사전식 나열에 불과할 수도 있으나 112명을 차례로 호명하면서 몸은 아시아에 두고 시선은 서양에 머물러 있던 우리의 분열증이 조금씩 완화되기를 기대한다.

    이 책을 기획한 윤상인(일문학), 이동철(중국철학), 이희수(중동·이슬람 문화), 임상범(중국현대사)은 ‘위대한 아시아’를 대표할 112명을 시대별, 지역별, 분야별로 안배해 선출했다. 시기는 1945~60년(냉전시대), 1960~80년(다극화시대), 80년대 이후부터 현재(사회주의 몰락과 혼돈의 시대)까지 크게 3기로 나누고, 지역은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서아시아로 구분했다. 분야별로는 정치, 사상, 문학, 사회, 학술로 나누어 선정했다.

    분야별로 보면 정치에서는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베트남의 호치민, 싱가포르의 리콴유, 이란의 모함마드 하타미, 이집트의 가말 압둔 나세르,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인도의 네루,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와 이시하라 신타로, 중국의 마오쩌뚱, 장쩌민, 후진타오,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팔레스타인의 야세르 아라파트가 등장한다. 사상 및 철학·학술 분야에서는 베트남의 틱낫한이나 이란의 호메이니,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 등의 이름을 접할 수 있다. 문화·예술·사회·경제 분야에서는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미야케 이세이나 대중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중국 출신의 가수 덩리쥔의 등장이 이채롭다.



    이 책은 인물 선정에서 논란거리를 제공한다. 112명 중에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일본의 히로히토, 캄보디아의 폴 포트,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사마 빈 라덴도 포함돼 있다. 그들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라 해도 어쨌든 아시아인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에 소개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또 유일한 비아시아인으로 20세기 아시아의 냉전구조 형성에 큰 역할을 한 맥아더가 등장한다. 그러나 언급할 가치가 충분함에도 아시아 연구의 양적·질적 한계로 인해 정보가 부족하거나 필진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 다루지 못한 인물들도 있다. 중국 혁명문학가 딩링이 대표적이다.

    본격 인물평으로 들어가기 전에 6명의 지역 전문가들이 모여 기획의도와 선정 과정을 밝힌 대담을 꼭 읽고 넘어갈 것을 권한다. 이들은 서구사회 중심으로 만들어진 아시아의 지리적·공간적 구분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적·역사적 관점에서 사용되는 동양이라는 말과, 지리적·정치적 개념이 강한 아시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다. 단, 영국을 중심에 두고 동쪽을 오리엔트, 가까운 동쪽을 근동, 멀리 있는 한국 등 동북아를 극동, 그 가운데 지점을 중동이라 칭한 식민지 팽창주의 시대의 용어는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슬람 문화권을 중동이 아닌 서아시아로 부르고, 동북아와 동남아를 동아시아의 범주에 함께 넣어 생각할 때 비로소 아시아 주체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아시아/ 윤상인 외 지음/ 황금가지 펴냄/ 856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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