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밍(lemming·학명 lemus)이라는 이름의 동물이 있다. 설치류 쥐과의 포유류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툰드라나 황야에 서식하는 이 쥐들은 수년마다 크게 증식하여 이동하므로 ‘나그네쥐’라고도 불린다. 레밍은 우두머리를 따라 집단으로 맹목적인 이동을 한다. 절벽이나 바다를 만나 떼죽음을 당해도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생소한 이 쥐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1980년 4월 소위 ‘서울의 봄’ 무렵이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은 한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레밍과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고 말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장군’에게 많은 사람들이 줄 서는 현상을 빗댄 표현이었다. 감정이 상하기에 충분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시 언론은 레밍을 ‘들쥐’라고 번역했다. 때문에 위컴 발언은 ‘한국인을 들쥐라고 비하했다’고 확대 해석되었다.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한 채 분노의 여론이 일제히 달아올랐음은 물론이다. 맹목적인 진짜 레밍들처럼….
휼렛패커드(HP)의 여장부 칼리 피오리나 회장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 시스코시스템스의 경영진이 최근 잇따라 한국을 방문했다. 세계 정보기술(IT)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거의 매년 이뤄지는 방문이므로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들은 왜 한국을 뻔질나게 찾을까’ 하는 점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이 세계 IT산업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초고속 인터넷 인구 700만 명, 휴대전화 가입자 2800만 명에 달하는 정보통신 인프라, 마우스부터 세계적 기술의 반도체 칩까지 모두 생산하는 ‘IT 백화점’으로서의 여건 등이 어느 나라보다 신사업의 ‘테스트 베드’(시험무대)로 안성맞춤이라는 것.
어쩌면 기분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빌 게이츠 등 IT 장사치들은 바로 한국시장의 ‘레밍 현상’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뭔가 하나 떴다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우르르 몰려가는 맹목적 쏠림 현상이 강한 한국시장의 속성을 간파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대충 거품이 빠졌지만, 포털사이트가 뜨자 하룻밤만 지나면 우후죽순 새로운 포털사이트가 마구 생겨났던 경험이 불과 얼마 전이다. 우르르 몰려갔기 때문에 공멸의 길로 간 워드프로세스, 사오정전화기, MP3플레이어의 경우도 있다. 오죽했으면 한국통으로 유명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제프리 존스 회장이 그의 책 ‘나는 한국이 두렵다’에서 “흔히 한국병으로 불리는 급한 성격이 한국의 정보화를 앞당기는 밑거름”이라고 지적했을까.
IT시장에만 ‘레밍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모처럼 만에 서울 종로 2가나 3가 등을 나가본 사람이라면 가판대에서 떡볶이나 어묵, 닭꼬치 등 서민들의 먹거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햄버거와 샌드위치, 핫도그, 김밥 등이 차지하고 있는 것에 당황할지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시는 최근 ‘보도상 영업시설물 관리 등에 대한 조례’를 제정해 음식을 조리해 파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가판대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그 실제 이유는 2002년 월드컵. 88서울올림픽 당시 ‘보신탕’ 단속의 재현이다.
이 역시 행정 편의주의에 젖은 관료들의 ‘레밍 현상’이 아닐까. 외국인은 떡볶이와 어묵을 흉물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속단하고, 모든 것을 거기에 짜맞춰 강요하는 ‘들쥐 속성’…. “떡볶이 먹기란 첫 키스와도 같다” “복잡한 거리, 차 소리가 요란할수록 떡볶이 먹는 분위기가 있다”는 에스테로더 한국 지사장 크리스토퍼 우드의 ‘떡볶이 예찬론’을 한번도 듣지 못했는지….
길거리에서 최첨단 휴대폰과 시뻘건 떡볶이를 파는 가판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밖에 없을 듯하다.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하이테크’와 가슴 훈훈한 ‘하이터치’(high-touch)의 공존이다. 이런 기막힌 공존, ‘한국, 그 자체’를 왜 없애려 안달인가. 왜 모든 것을 획일로 몰아가는가. 월드컵 방문객들이 고향에 돌아가 눈이 핑핑 돌아가는 ‘IT 백화점’ 속의 떡볶이는 기억할지언정, 모양만 같지 맛은 영 아닌 햄버거를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기자의 판단이다.
생소한 이 쥐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지난 1980년 4월 소위 ‘서울의 봄’ 무렵이다.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은 한 미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레밍과 같아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면 그에게 우르르 몰려든다”고 말했다.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장군’에게 많은 사람들이 줄 서는 현상을 빗댄 표현이었다. 감정이 상하기에 충분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시 언론은 레밍을 ‘들쥐’라고 번역했다. 때문에 위컴 발언은 ‘한국인을 들쥐라고 비하했다’고 확대 해석되었다.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한 채 분노의 여론이 일제히 달아올랐음은 물론이다. 맹목적인 진짜 레밍들처럼….
휼렛패커드(HP)의 여장부 칼리 피오리나 회장과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 시스코시스템스의 경영진이 최근 잇따라 한국을 방문했다. 세계 정보기술(IT)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거의 매년 이뤄지는 방문이므로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들은 왜 한국을 뻔질나게 찾을까’ 하는 점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이 세계 IT산업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초고속 인터넷 인구 700만 명, 휴대전화 가입자 2800만 명에 달하는 정보통신 인프라, 마우스부터 세계적 기술의 반도체 칩까지 모두 생산하는 ‘IT 백화점’으로서의 여건 등이 어느 나라보다 신사업의 ‘테스트 베드’(시험무대)로 안성맞춤이라는 것.
어쩌면 기분 좋은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빌 게이츠 등 IT 장사치들은 바로 한국시장의 ‘레밍 현상’을 주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뭔가 하나 떴다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우르르 몰려가는 맹목적 쏠림 현상이 강한 한국시장의 속성을 간파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대충 거품이 빠졌지만, 포털사이트가 뜨자 하룻밤만 지나면 우후죽순 새로운 포털사이트가 마구 생겨났던 경험이 불과 얼마 전이다. 우르르 몰려갔기 때문에 공멸의 길로 간 워드프로세스, 사오정전화기, MP3플레이어의 경우도 있다. 오죽했으면 한국통으로 유명한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제프리 존스 회장이 그의 책 ‘나는 한국이 두렵다’에서 “흔히 한국병으로 불리는 급한 성격이 한국의 정보화를 앞당기는 밑거름”이라고 지적했을까.
IT시장에만 ‘레밍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모처럼 만에 서울 종로 2가나 3가 등을 나가본 사람이라면 가판대에서 떡볶이나 어묵, 닭꼬치 등 서민들의 먹거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햄버거와 샌드위치, 핫도그, 김밥 등이 차지하고 있는 것에 당황할지 모른다.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시는 최근 ‘보도상 영업시설물 관리 등에 대한 조례’를 제정해 음식을 조리해 파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가판대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그 실제 이유는 2002년 월드컵. 88서울올림픽 당시 ‘보신탕’ 단속의 재현이다.
이 역시 행정 편의주의에 젖은 관료들의 ‘레밍 현상’이 아닐까. 외국인은 떡볶이와 어묵을 흉물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속단하고, 모든 것을 거기에 짜맞춰 강요하는 ‘들쥐 속성’…. “떡볶이 먹기란 첫 키스와도 같다” “복잡한 거리, 차 소리가 요란할수록 떡볶이 먹는 분위기가 있다”는 에스테로더 한국 지사장 크리스토퍼 우드의 ‘떡볶이 예찬론’을 한번도 듣지 못했는지….
길거리에서 최첨단 휴대폰과 시뻘건 떡볶이를 파는 가판대가 나란히 놓여 있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밖에 없을 듯하다.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하이테크’와 가슴 훈훈한 ‘하이터치’(high-touch)의 공존이다. 이런 기막힌 공존, ‘한국, 그 자체’를 왜 없애려 안달인가. 왜 모든 것을 획일로 몰아가는가. 월드컵 방문객들이 고향에 돌아가 눈이 핑핑 돌아가는 ‘IT 백화점’ 속의 떡볶이는 기억할지언정, 모양만 같지 맛은 영 아닌 햄버거를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기자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