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그림 1). 되는대로 뻗친 허연 눈썹 아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나고 한 발이나 되는 턱수염이 휘날리는 백발의 현자 같은 모습이다.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으로 알려진 이 그림이 실제로는 가짜임이 밝혀졌다. 1980년 이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으니 벌써 20년이 지난 일이다.
그런데도 이 그림이 무조건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다. 모델이 하도 근사하게 생긴 데다, 불세출의 천재 레오나르도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너무나 딱 맞아떨어져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러려니 생각하는 심리를 거꾸로 이용해 어떤 고약한 위작자가 못된 마음을 먹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라면?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다른 그림은 몰라도 토리노 도서관에 소장된 소묘 초상 하나만은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 맞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단단했던지 심지어 위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그게 사실로 드러난 다음에도 못들은 척했다. 최근까지도 르네상스 미술책 표지는 물론, 저명한 레오나르도 전문가가 쓴 전기조차 토리노의 초상을 떡 올려놓고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라고 제목 붙이기 일쑤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소묘를 감쪽같이 베끼기로 소문난 19세기 화가 주세페 로시의 솜씨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소묘도 여러 점 흉내내 미술사학자들을 긴가민가 헷갈리게 했던 작자다. 워낙 손재주가 좋은 데다 르네상스 소묘를 닥치는 대로 모으고 연구한 체계적인 수집가이기도 했다. 그런 로시가 남아 있는 레오나르도의 초상들을 종합해 그럴듯한 위작을 만들어낸 것이 이 그림이다.
그런데 로시는 한 가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레오나르도의 왼손잡이 손놀림을 연습하고, 그의 초상을 낱낱이 공부해서 감쪽같이 재현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술 더 뜬 게 탈이었다. 19세기적 상상력에 지나치게 부합해 그려내는 바람에 도리어 뒷덜미를 잡히게 된 것이다.
우선, 레오나르도가 제 얼굴을 직접 그렸다면 이렇게 늙은 모습으로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1452년에 태어나 1529년에 죽었으니 다른 초상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나이쯤에 맞추어 1500년 전후에 그렸다고 보면 쉰 살 가까이 돼서 그렸을 텐데, 이건 중년의 나이로 보기엔 너무 늙었다. 죽기 직전에 그렸다고 쳐도 예순일곱이다. 그런데 소묘에서는 꼭 백 살도 넘은 파우스트 박사처럼 보인다.
또 레오나르도는 오싹할 정도로 예리한 자연 관찰자였다. 그런데 토리노의 소묘에는 대상을 쏘아보는 진지한 눈빛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위인전 안쪽 표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톨스토이나 다윈 같은 19세기 위인들의 위대하면서 무난한 생김새에 더 가깝다.
이런 단순한 겉핥기식 비교 말고도 문제가 또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되었거나 그 후에 베낀 레오나르도의 초상은 고대 주화에서처럼 항상 얼굴이 정확히 90도 옆으로 돌아간 측면 시점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12점이 다 그렇다. 그런데 토리노의 초상은 정면에서 약간 왼쪽으로 비켜나 얼굴 오른쪽 부분이 강조되었다. 국회의원 선거 전단에서 자주 보던 앵글이다.
물론 레오나르도를 그린 초상 가운데 ‘비킨 정면 시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유화인데, 뜻밖의 문제가 여기서 불거졌다. 그림을 세워놓고 뢴트겐 사진을 찍어보았더니 초상화 아래 숨은 그림이 나타났다.
그런데 미술사학자들은 레오나르도의 초상 그림을 찍은 뢴트겐 사진을 살피다가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고친 흔적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또 하나의 그림이 그 아래 깔려 있던 것. 이런 경우는 한번 완성한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재료를 재활용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제작 시점이 문제였다. 레오나르도의 얼굴 아래에는 막달레나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로크 특유의 요염하고 격정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던 것이다. 17세기 화풍의 그림을 먼저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15세기 화가가 레오나르도를 그린 게 되니까 앞뒤가 크게 바뀌었다. 결국 17세기 이후에 누군가가 르네상스 화풍을 따서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초상 역시 위작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의 그림 말고도 비킨 정면 시점의 레오나르도 초상이 하나 더 있다(그림 2).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의 플라톤이 그 주인공이다. 라파엘로는 르네상스 화가다. 또 레오나르도와도 여러 차례 만났을 테니 어떻게 생겼는지 주름살에 터럭 하나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라파엘로가 그림 한복판에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제일 존경한 고대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세워두고, 거기에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두 사람의 초상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로마에 많이 돌아다니던 플라톤의 초상조각 가운데 머리가 허옇게 벗겨진 사례는 없으니 고대 조각을 베끼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가 들의 전기를 쓴 바사리에서 시작해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라파엘로를 다룬 어떤 문헌을 뒤져도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의 모델이 레오나르도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1953년 미술사학자 파울 펠트켈러가 “이 그림에서 플라톤의 얼굴이 레오나르도를 닮았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다”고 쓴 것이 기록으로 나타난 첫번째 주장이다. 그러니까 50년도 채 안 된 이야기다. 그러나 그 후 관광객을 겨냥한 여행 가이드북에 플라톤 얼굴이 레오나르도라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실리면서 엉터리 상식이 자연스레 굳어졌다. 그러나 르네상스 초상 전문가들은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플라톤이 누구의 개인적 용모를 그린 초상이 아니라, 그 당시 화가와 조각가들이 즐겨 베끼던 인물 유형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이로써 토리노의 레오나르도 초상은 측면 시점 대신 ‘비킨 정면 시점’으로 그린 유일한 작품이 되었다.
토리노의 소묘 하단에는 ‘Leonardus Vincitus ritratto di se stesso assai vecchio’ 라고 쓴 글이 희미하게 보인다. ‘레오나르도가 아주 늙어서 그린 자화상’이라는 뜻이다. 레오나르도 필체를 흉내는 냈지만, 오른손잡이가 쓴 글씨다. 사람들은 아마 스승의 유물을 전부 물려받은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가 써넣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토리노의 소묘를 뜯어보면 레오나르도의 초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생김새와도 다른 점이 많다. 여러 기록에서 전하는 대로 공들여 빗어내린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레오나르도의 트레이드 마크이니 시비 걸기 어렵다. 그러나 코와 콧수염은 전혀 딴판이다. 다른 초상들에서는 콧등의 중간 위쪽이 다소 굽었고 전체적으로 콧등선이 가늘고 예민하며 긴 형태다(그림 3). 그런데 토리노의 레오나르도는 코가 굵고 두툼한 왕코에다 코끝이 뭉툭하게 강조되어 콧날개를 압도한다.
또 이 그림에서는 콧수염도 얌체처럼 양쪽 가장자리에만 나고 가운데는 없다. 반면 다른 초상들을 보면 콧수염을 가지런히 손질해 윗입술과 잘 어울린다. 또 전체적으로 얼굴 피부가 얇아 풍부한 표정에 상냥한 분위기가 일반적인데, 토리노 소묘에서는 고집쟁이 할아버지처럼 피부도 무겁고 심술살이 붙었다. 입술 끝이 아래로 처진 것도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결정적으로 토리노 소묘에는 빗금선이 많이 보인다. 초상 소묘에서는 윤곽선을 먼저 그려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고 그 다음 빗금선으로 음영과 농담을 준다. 이른바 ‘내부 빗금선’인데, 평면을 누르거나 부풀려 실물감을 주고 표정의 풍경을 살려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마 가장자리, 눈 주위, 코 아래와 광대뼈 부근에 섬세한 빗금선들이 그런 효과를 낸다.
토리노 소묘는 왼편에 머리카락 윗부분에서 어깨까지 큰 빗금선들이 정렬해 있다. 외부 빗금선들이다. 이 빗금선들은 모두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한 각도로 달린다. 누가 보아도 왼손잡이의 솜씨다. 화가가 오른손잡이였다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뿌리듯이 빗금선을 그었을 테니 방향이 바뀌었을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소묘가 가짜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 1980년 독일 미술사학자 한스 오스트는 빗금선을 관찰하다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수천 점의 소묘에는 거의 빗금선이 들어 있는데, 그는 빗금선을 그릴 때 독특한 버릇이 있었다. 그는 선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꼭 윤곽선을 기점으로 삼았다(그림 4). 그래서 인물이나 소재를 그리면 배경에서 분리되어 한층 강조돼 보인다. 이런 방식은 회화의 궁극적 목표는 부조 효과라고 한 레오나르도 자신의 주장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토리노 소묘에서는 빗금선이 두상의 바깥 윤곽선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로시는 가짜 소묘를 만들면서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소묘 왼쪽 아래로 가면서 점점 빗금선이 무거워지다 선의 끄트머리가 자꾸 밑으로 처진다. 선의 흐름에 속도가 붙지 않고 무거워지는 것도 수상하다. 레오나르도의 수많은 소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빗금선 끄트머리가 낚시바늘처럼 동그랗게 말리는 현상도 안 보인다. 이건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를 흉내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그리는 바람에 팔목이 긴장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속도가 늘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앞서 펠트켈러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플라톤을 레오나르도라고 잘못 짚었던 까닭도 설명된다. 로시의 가짜 그림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당연히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그릇된 선입견이 머릿속에 박여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 그림이 무조건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다. 모델이 하도 근사하게 생긴 데다, 불세출의 천재 레오나르도를 상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너무나 딱 맞아떨어져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다. 그러려니 생각하는 심리를 거꾸로 이용해 어떤 고약한 위작자가 못된 마음을 먹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라면?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다른 그림은 몰라도 토리노 도서관에 소장된 소묘 초상 하나만은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 맞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단단했던지 심지어 위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그게 사실로 드러난 다음에도 못들은 척했다. 최근까지도 르네상스 미술책 표지는 물론, 저명한 레오나르도 전문가가 쓴 전기조차 토리노의 초상을 떡 올려놓고 ‘레오나르도의 자화상’이라고 제목 붙이기 일쑤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의 소묘를 감쪽같이 베끼기로 소문난 19세기 화가 주세페 로시의 솜씨다. 미켈란젤로가 남긴 소묘도 여러 점 흉내내 미술사학자들을 긴가민가 헷갈리게 했던 작자다. 워낙 손재주가 좋은 데다 르네상스 소묘를 닥치는 대로 모으고 연구한 체계적인 수집가이기도 했다. 그런 로시가 남아 있는 레오나르도의 초상들을 종합해 그럴듯한 위작을 만들어낸 것이 이 그림이다.
그런데 로시는 한 가지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레오나르도의 왼손잡이 손놀림을 연습하고, 그의 초상을 낱낱이 공부해서 감쪽같이 재현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술 더 뜬 게 탈이었다. 19세기적 상상력에 지나치게 부합해 그려내는 바람에 도리어 뒷덜미를 잡히게 된 것이다.
우선, 레오나르도가 제 얼굴을 직접 그렸다면 이렇게 늙은 모습으로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1452년에 태어나 1529년에 죽었으니 다른 초상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나이쯤에 맞추어 1500년 전후에 그렸다고 보면 쉰 살 가까이 돼서 그렸을 텐데, 이건 중년의 나이로 보기엔 너무 늙었다. 죽기 직전에 그렸다고 쳐도 예순일곱이다. 그런데 소묘에서는 꼭 백 살도 넘은 파우스트 박사처럼 보인다.
또 레오나르도는 오싹할 정도로 예리한 자연 관찰자였다. 그런데 토리노의 소묘에는 대상을 쏘아보는 진지한 눈빛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위인전 안쪽 표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톨스토이나 다윈 같은 19세기 위인들의 위대하면서 무난한 생김새에 더 가깝다.
이런 단순한 겉핥기식 비교 말고도 문제가 또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되었거나 그 후에 베낀 레오나르도의 초상은 고대 주화에서처럼 항상 얼굴이 정확히 90도 옆으로 돌아간 측면 시점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12점이 다 그렇다. 그런데 토리노의 초상은 정면에서 약간 왼쪽으로 비켜나 얼굴 오른쪽 부분이 강조되었다. 국회의원 선거 전단에서 자주 보던 앵글이다.
물론 레오나르도를 그린 초상 가운데 ‘비킨 정면 시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유화인데, 뜻밖의 문제가 여기서 불거졌다. 그림을 세워놓고 뢴트겐 사진을 찍어보았더니 초상화 아래 숨은 그림이 나타났다.
그런데 미술사학자들은 레오나르도의 초상 그림을 찍은 뢴트겐 사진을 살피다가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고친 흔적 정도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또 하나의 그림이 그 아래 깔려 있던 것. 이런 경우는 한번 완성한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재료를 재활용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제작 시점이 문제였다. 레오나르도의 얼굴 아래에는 막달레나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바로크 특유의 요염하고 격정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던 것이다. 17세기 화풍의 그림을 먼저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15세기 화가가 레오나르도를 그린 게 되니까 앞뒤가 크게 바뀌었다. 결국 17세기 이후에 누군가가 르네상스 화풍을 따서 그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초상 역시 위작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의 그림 말고도 비킨 정면 시점의 레오나르도 초상이 하나 더 있다(그림 2). 라파엘로가 바티칸 교황 집무실 벽에 그린 ‘아테네 학당’의 플라톤이 그 주인공이다. 라파엘로는 르네상스 화가다. 또 레오나르도와도 여러 차례 만났을 테니 어떻게 생겼는지 주름살에 터럭 하나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라파엘로가 그림 한복판에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제일 존경한 고대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세워두고, 거기에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두 사람의 초상을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로마에 많이 돌아다니던 플라톤의 초상조각 가운데 머리가 허옇게 벗겨진 사례는 없으니 고대 조각을 베끼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가 들의 전기를 쓴 바사리에서 시작해 19세기에 이르기까지 라파엘로를 다룬 어떤 문헌을 뒤져도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의 모델이 레오나르도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1953년 미술사학자 파울 펠트켈러가 “이 그림에서 플라톤의 얼굴이 레오나르도를 닮았다고 보는 견해들이 있다”고 쓴 것이 기록으로 나타난 첫번째 주장이다. 그러니까 50년도 채 안 된 이야기다. 그러나 그 후 관광객을 겨냥한 여행 가이드북에 플라톤 얼굴이 레오나르도라는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 실리면서 엉터리 상식이 자연스레 굳어졌다. 그러나 르네상스 초상 전문가들은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플라톤이 누구의 개인적 용모를 그린 초상이 아니라, 그 당시 화가와 조각가들이 즐겨 베끼던 인물 유형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이로써 토리노의 레오나르도 초상은 측면 시점 대신 ‘비킨 정면 시점’으로 그린 유일한 작품이 되었다.
토리노의 소묘 하단에는 ‘Leonardus Vincitus ritratto di se stesso assai vecchio’ 라고 쓴 글이 희미하게 보인다. ‘레오나르도가 아주 늙어서 그린 자화상’이라는 뜻이다. 레오나르도 필체를 흉내는 냈지만, 오른손잡이가 쓴 글씨다. 사람들은 아마 스승의 유물을 전부 물려받은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가 써넣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토리노의 소묘를 뜯어보면 레오나르도의 초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생김새와도 다른 점이 많다. 여러 기록에서 전하는 대로 공들여 빗어내린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레오나르도의 트레이드 마크이니 시비 걸기 어렵다. 그러나 코와 콧수염은 전혀 딴판이다. 다른 초상들에서는 콧등의 중간 위쪽이 다소 굽었고 전체적으로 콧등선이 가늘고 예민하며 긴 형태다(그림 3). 그런데 토리노의 레오나르도는 코가 굵고 두툼한 왕코에다 코끝이 뭉툭하게 강조되어 콧날개를 압도한다.
또 이 그림에서는 콧수염도 얌체처럼 양쪽 가장자리에만 나고 가운데는 없다. 반면 다른 초상들을 보면 콧수염을 가지런히 손질해 윗입술과 잘 어울린다. 또 전체적으로 얼굴 피부가 얇아 풍부한 표정에 상냥한 분위기가 일반적인데, 토리노 소묘에서는 고집쟁이 할아버지처럼 피부도 무겁고 심술살이 붙었다. 입술 끝이 아래로 처진 것도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결정적으로 토리노 소묘에는 빗금선이 많이 보인다. 초상 소묘에서는 윤곽선을 먼저 그려 인물의 특징을 잡아내고 그 다음 빗금선으로 음영과 농담을 준다. 이른바 ‘내부 빗금선’인데, 평면을 누르거나 부풀려 실물감을 주고 표정의 풍경을 살려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마 가장자리, 눈 주위, 코 아래와 광대뼈 부근에 섬세한 빗금선들이 그런 효과를 낸다.
토리노 소묘는 왼편에 머리카락 윗부분에서 어깨까지 큰 빗금선들이 정렬해 있다. 외부 빗금선들이다. 이 빗금선들은 모두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비스듬한 각도로 달린다. 누가 보아도 왼손잡이의 솜씨다. 화가가 오른손잡이였다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뿌리듯이 빗금선을 그었을 테니 방향이 바뀌었을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소묘가 가짜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 1980년 독일 미술사학자 한스 오스트는 빗금선을 관찰하다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수천 점의 소묘에는 거의 빗금선이 들어 있는데, 그는 빗금선을 그릴 때 독특한 버릇이 있었다. 그는 선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꼭 윤곽선을 기점으로 삼았다(그림 4). 그래서 인물이나 소재를 그리면 배경에서 분리되어 한층 강조돼 보인다. 이런 방식은 회화의 궁극적 목표는 부조 효과라고 한 레오나르도 자신의 주장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토리노 소묘에서는 빗금선이 두상의 바깥 윤곽선을 거침없이 넘나든다.
로시는 가짜 소묘를 만들면서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소묘 왼쪽 아래로 가면서 점점 빗금선이 무거워지다 선의 끄트머리가 자꾸 밑으로 처진다. 선의 흐름에 속도가 붙지 않고 무거워지는 것도 수상하다. 레오나르도의 수많은 소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빗금선 끄트머리가 낚시바늘처럼 동그랗게 말리는 현상도 안 보인다. 이건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를 흉내냈기 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그리는 바람에 팔목이 긴장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속도가 늘어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앞서 펠트켈러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플라톤을 레오나르도라고 잘못 짚었던 까닭도 설명된다. 로시의 가짜 그림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당연히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는 그릇된 선입견이 머릿속에 박여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