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업체에서 대리로 일하는 송은석씨(31)는 대부분의 대리 직급 샐러리맨이 그렇듯 항상 일에 치여 산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일에 몰두하다 보니 변변한 데이트 한번 못하고 서른을 넘겨버렸다. ‘친구들은 다 결혼했는데 너는 왜 못하냐, 이제는 결혼도 능력이다’는 집안의 압력이 슬슬 신경 쓰이던 차, 어느 날 어머니가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어제 쭛쭛결혼정보회사에 가입 신청했다. 가입하려면 당사자가 직접 가야 한다더라.”
송씨는 좀 놀랐지만 별로 싫지는 않았다.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라도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좋겠네요.” 가입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찾은 송씨는 은근히 들떠 있는 눈치였다.
송씨는 결혼 적령기라는 부담 때문에 결혼정보회사를 찾은 경우다. 그러나 IT업체에서 일하는 김준성씨(28)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인데도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 “친한 친구 한 사람이 여기서 여자친구를 만나 한창 교제중입니다. 회사에서는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만 만나게 되잖아요. 좀더 폭넓은 만남을 갖고 싶어 왔습니다. ‘컴퓨터 매칭’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인연이 있다면 그런 방식으로라도 만나게 되지 않겠어요?”
결혼정보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 결혼정보회사는 크고 작은 곳을 합쳐 1000여 군데에 이른다. 결혼정보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5대 결혼정보회사로 꼽히는 듀오, 선우, 닥스클럽, 피어리, 에코러스를 이용한 사람은 2000년 한 해에 3만981명. 99년에 비해 55% 증가한 수치다. 5대 회사 중 시장점유율 52%로 가장 규모가 큰 듀오는 3만7000여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전국 10개 지사와 두 개의 해외지사(LA, 뉴질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또 30%대의 높은 성혼율을 자랑하는 업계 2위 회사 선우는 현재까지 3500명이 넘는 남녀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올해 결혼정보회사들이 올린 매출 총액은 500억 원에 육박한다. 97년에 비해 30% 이상의 고속 성장이다. 개중에는 벤처 인증을 받거나 코스닥 등록을 추진중인 업체도 있다.
회사 수가 늘어나는 만큼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선우 이웅진 대표의 말에 따르면 “매년 100개의 회사가 생기고 100개의 회사가 문을 닫는 상황”이다. 회사들은 최대 회원 규모, 가장 높은 성혼율, 명문가 클럽 등을 앞세우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펼치는 기발한 이벤트, 예를 들면 헌혈미팅, 4000명 단체미팅, 추석귀향미팅 등은 더 이상 눈에 띄는 뉴스거리가 아니다.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한 결혼정보회사는 사법연수원생을 무더기로 회원에 가입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자영업자 최광훈씨(30)는 “매스컴을 통해 듣고 가입했다”고 말했다. “한 번 만남을 가졌는데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지요. 자꾸 소개받다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요. 사람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이곳의 장점인 듯합니다.”
이처럼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사람들은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라기보다 좀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혼기를 넘긴 탓에 주위 사람에게 소개를 부탁하기 쑥스러운 사람, 눈이 높아 웬만한 상대로는 성에 차지 않는 사람 등이 주요 고객이다. 부모들이 자녀의 가입을 의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대졸 여성의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여대생 회원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결혼정보회사에서 가장 중시하는 점은 물론 ‘조건’이다. 가입할 때부터 조건을 따진다. 기본 조건은 학력과 직업이다. 남자는 전문대, 여자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져야 하며 남자는 반드시 안정된 직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드러나는 조건일 뿐이다. 실제 가입 조건은 이보다 더 까다롭다. 키가 작거나 뚱뚱한 사람, 상대를 보는 눈이 지나치게 높은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탈모증 환자 등은 가입하기 힘들다. 자신은 전문대 졸업의 학력이면서 “나는 반드시 의사나 판검사를 만나고 싶다”고 고집하면 대부분의 회사는 가입 자체를 거부한다. 나중에 상대를 못 찾아 준다고 원망을 듣느니 아예 가입을 안 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회원 신청자 세 명 중 한 명꼴로 가입이 허락될 정도로 가입 자체가 어려운 회사도 있다.
가입시 일시불로 내야 하는 회비는 60만∼70만원 선. 비싼 금액일 수도 있지만 평생의 짝을 찾는데 이 정도 투자는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의 재산 50억 원 이상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 △명문대 졸업한 전문직 종사자나 유학생 등으로 가입 조건을 한정한 VIP 회원이 되려면 가입비만 200만 원 남짓 내야 한다.
가입신청서를 작성할 때 회원은 자신의 신상명세는 물론원하는 상대의 직업, 키, 출신 학교, 상대를 볼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점 등을 적어낸다. 부모의 학력과 직업, 재산 정도도 상세히 밝혀야 한다. 회원에 대해 결혼정보회사가 보유하는 데이터의 가짓수는 150항목에 이른다.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결혼정보회사들은 키 175cm 이상이면 10점, 본인 소유 재산 5000만 원 이상이면 15점 하는 식의 심사 기준을 가지고 있다. 커플매니저들은 컴퓨터에 입력된 기록을 통해 서로 조건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근무자, 키 175cm 이상, 양친 서울 거주’라고 입력하면 그에 맞는 조건을 갖춘 회원 명단이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다.
양쪽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상대를 찾으면 커플매니저는 각자에게 상대방의 프로필을 알리고 만남을 주선한다. 회사에 따라 이 단계에서 바람직한 맞선 테크닉을 가르치는 ‘맞선 클리닉’이 가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 커플매니저는 나타나지 않는다. 중매쟁이가 반드시 동행하는 맞선과의 차이점이다.
만남이 이루어진 다음날 커플매니저는 다시 두 사람의 소감을 묻는다. “마음에 든다” “교제해 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컴퓨터 인적란에 ‘교제중’이라고 입력한다. 그동안 소개는 보류된다. 보통 회원의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가입하면 4번에서 12번 정도의 만남이 보장된다. 보통 네 번째나 다섯 번째 만남에서 짝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해진 횟수를 모두 채웠는데도 짝을 못 찾은 사람 중에는 재가입해 다시 기회를 노리는 사람도 있다.
한 회사의 이벤트 모임에서 만난 박형배씨(27)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A회사에 정회원으로 가입해 8번의 만남을 가졌으나 끝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는 이번에는 전략을 좀 달리해 다른 결혼정보회사에 새로 가입했다. 이 회사에서는 이벤트 미팅에만 참석하는 조건이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주선해 주는 사람은 물론 조건은 적당하지요.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 실패했느냐고요? 만난 사람들과 가치관이 잘 맞지 않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제는 단체미팅에만 나오는데, 여기서는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다 보니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앵무새가 된 느낌이거든요.”
성혼율이 30%라고 해도 열 명 중 일곱 명은 짝을 찾는 데 실패하는 셈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짝을 못 만난 사람들은 가장 큰 문제로 ‘컴퓨터 매칭’을 든다. 조건 자체는 무난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지만 정작 조건보다 더 중요한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 한 회사에서 아홉 번 만남을 가진 대학생 문혜원씨(27) 역시 그런 경우였다.
“아홉 명이 모두 기대에 못 미쳤어요. 조건이 마음에 안 든 게 아니라 대부분 저와 공통분모가 없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아무래도 서류상으로만 맞춰서 그런지, 성격이 저와 너무 달랐어요. 외형적인 조건은 괜찮았지만요.” 문씨는 “아직은 사람을 만나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많이 지친 눈치였다.
왕자병이나 공주병 환자들도 결혼정보회사에서 짝을 만나기 힘들다. 이들은 커플매니저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경우로 자기 눈에 차지 않으면 “나를 뭘로 보고!”라며 화를 내는 공통점이 있다. 한 판사의 어머니가 내건 조건은 왕자병의 극단적인 사례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나이 26세, E대 영문과 졸업, 양친 모두 생존해 계시고 아버지는 사회 저명인사여야 함, 지참금은 10억 원.’ 이 회원은 위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E대 생물학과 출신을 소개해 주자 거절했다고 한다.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이들 중에는 재혼을 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재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결혼 건수 중 10%를 넘는다. 한 재혼 전문 커플매니저는 “재혼은 대체로 초혼보다 신중하며 조건을 훨씬 많이 따지는 편”이라고 전했다.
백마 탄 왕자를 소개해 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결혼정보회사 외에도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많은데 굳이 적잖은 회비를 내면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LG경제연구원의 지만수 책임연구원은 결혼정보산업의 성장 이유로 결혼정보회사가 과거의 중매쟁이들보다 광범위하고 정교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즉 요즘의 젊은이들은 ‘집안 좋고 참하다’는 식의 소개만 믿고 맞선을 보러 나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별다른 창업 자금이 들지 않는다는 점 역시 결혼정보산업의 성장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 지만수 연구원의 진단이다. 그는 “서구처럼 독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거나 조건 위주의 결혼 관행이 파괴되지 않는 한, 결혼정보산업의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리학자 황상민 교수(연세대) 역시 결혼정보산업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사회와 가정이 당연히 제공해 준 일을 서비스산업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지요. 젊은이들은 어디선가 나타날 천생배필을 찾기보다 백화점에서 가장 구색이 맞는 상품을 선택하듯 결혼 상대를 찾으려 합니다. 제 앞가림을 못해서가 아니라 이 방식이 가장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황교수는 “중매결혼의 장점을 취하면서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과거 미국인들에게 우리의 중매문화를 설명하면 상당히 신기하면서도 편리한 제도라고 부러워했다”면서 결혼정보산업의 성장을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의 외모, 여자는 남자의 경제력을 가장 중시하고 △여자는 나이 비슷한 남자를 찾고 남자는 나이 어린 여자를 찾으며 △본인의 능력이 중시되는 남자에 비해 여자는 외모나 집안환경 등을 더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처럼 결혼정보회사는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잣대다. 하지만 결혼정보회사는 순기능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신분구조를 더 심화시키는 기능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거나 좋은 직장이 없는 경우, 키가 작거나 아이가 딸린 여성 등 ‘번듯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예 결혼정보회사에 가입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결혼이 사랑이기 이전에 제도인 우리의 현실이 이러한 산업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영남 출신과 호남 출신의 결합이나 대졸 여자와 고졸 남자의 결혼 등은 여전히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결혼 당사자들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가장 맞는 조건의 상대를 찾고 결혼정보회사는 정보 제공의 대가로 돈을 받으니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지요. 결혼정보회사를 비판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 사회가 여러 조건을 보지 않고도 결혼할 수 있을 만큼 열린 사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학까지 다녀온 사립학교 이사장의 딸 정은이 가난한 축구코치 반달웅과 맺어진다는 줄거리의 MBC 미니시리즈 ‘반달곰 내 사랑’은 방영 내내 한자릿수의 낮은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국진과 송윤아라는 스타를 기용했음에도 이 순애보가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놓을 만한 조건은 없지만 인간성만은 진실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보 같은’ 여자는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없는 것일까.
송씨는 좀 놀랐지만 별로 싫지는 않았다. “솔직히 큰 기대는 안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라도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좋겠네요.” 가입신청서를 작성하기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찾은 송씨는 은근히 들떠 있는 눈치였다.
송씨는 결혼 적령기라는 부담 때문에 결혼정보회사를 찾은 경우다. 그러나 IT업체에서 일하는 김준성씨(28)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인데도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했다. “친한 친구 한 사람이 여기서 여자친구를 만나 한창 교제중입니다. 회사에서는 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만 만나게 되잖아요. 좀더 폭넓은 만남을 갖고 싶어 왔습니다. ‘컴퓨터 매칭’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요. 인연이 있다면 그런 방식으로라도 만나게 되지 않겠어요?”
결혼정보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 결혼정보회사는 크고 작은 곳을 합쳐 1000여 군데에 이른다. 결혼정보업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5대 결혼정보회사로 꼽히는 듀오, 선우, 닥스클럽, 피어리, 에코러스를 이용한 사람은 2000년 한 해에 3만981명. 99년에 비해 55% 증가한 수치다. 5대 회사 중 시장점유율 52%로 가장 규모가 큰 듀오는 3만7000여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전국 10개 지사와 두 개의 해외지사(LA, 뉴질랜드)를 거느리고 있다. 또 30%대의 높은 성혼율을 자랑하는 업계 2위 회사 선우는 현재까지 3500명이 넘는 남녀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올해 결혼정보회사들이 올린 매출 총액은 500억 원에 육박한다. 97년에 비해 30% 이상의 고속 성장이다. 개중에는 벤처 인증을 받거나 코스닥 등록을 추진중인 업체도 있다.
회사 수가 늘어나는 만큼 경쟁도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선우 이웅진 대표의 말에 따르면 “매년 100개의 회사가 생기고 100개의 회사가 문을 닫는 상황”이다. 회사들은 최대 회원 규모, 가장 높은 성혼율, 명문가 클럽 등을 앞세우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펼치는 기발한 이벤트, 예를 들면 헌혈미팅, 4000명 단체미팅, 추석귀향미팅 등은 더 이상 눈에 띄는 뉴스거리가 아니다. 뒤늦게 시장에 진입한 한 결혼정보회사는 사법연수원생을 무더기로 회원에 가입시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자영업자 최광훈씨(30)는 “매스컴을 통해 듣고 가입했다”고 말했다. “한 번 만남을 가졌는데 첫술에 배부를 수야 없지요. 자꾸 소개받다 보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요. 사람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이곳의 장점인 듯합니다.”
이처럼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사람들은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라기보다 좀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혼기를 넘긴 탓에 주위 사람에게 소개를 부탁하기 쑥스러운 사람, 눈이 높아 웬만한 상대로는 성에 차지 않는 사람 등이 주요 고객이다. 부모들이 자녀의 가입을 의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대졸 여성의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여대생 회원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결혼정보회사에서 가장 중시하는 점은 물론 ‘조건’이다. 가입할 때부터 조건을 따진다. 기본 조건은 학력과 직업이다. 남자는 전문대, 여자는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져야 하며 남자는 반드시 안정된 직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겉에 드러나는 조건일 뿐이다. 실제 가입 조건은 이보다 더 까다롭다. 키가 작거나 뚱뚱한 사람, 상대를 보는 눈이 지나치게 높은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 탈모증 환자 등은 가입하기 힘들다. 자신은 전문대 졸업의 학력이면서 “나는 반드시 의사나 판검사를 만나고 싶다”고 고집하면 대부분의 회사는 가입 자체를 거부한다. 나중에 상대를 못 찾아 준다고 원망을 듣느니 아예 가입을 안 받는 게 낫기 때문이다. 회원 신청자 세 명 중 한 명꼴로 가입이 허락될 정도로 가입 자체가 어려운 회사도 있다.
가입시 일시불로 내야 하는 회비는 60만∼70만원 선. 비싼 금액일 수도 있지만 평생의 짝을 찾는데 이 정도 투자는 그다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의 재산 50억 원 이상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 △명문대 졸업한 전문직 종사자나 유학생 등으로 가입 조건을 한정한 VIP 회원이 되려면 가입비만 200만 원 남짓 내야 한다.
가입신청서를 작성할 때 회원은 자신의 신상명세는 물론원하는 상대의 직업, 키, 출신 학교, 상대를 볼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점 등을 적어낸다. 부모의 학력과 직업, 재산 정도도 상세히 밝혀야 한다. 회원에 대해 결혼정보회사가 보유하는 데이터의 가짓수는 150항목에 이른다.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결혼정보회사들은 키 175cm 이상이면 10점, 본인 소유 재산 5000만 원 이상이면 15점 하는 식의 심사 기준을 가지고 있다. 커플매니저들은 컴퓨터에 입력된 기록을 통해 서로 조건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낸다. 예를 들어 ‘명문대 출신의 대기업 근무자, 키 175cm 이상, 양친 서울 거주’라고 입력하면 그에 맞는 조건을 갖춘 회원 명단이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다.
양쪽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상대를 찾으면 커플매니저는 각자에게 상대방의 프로필을 알리고 만남을 주선한다. 회사에 따라 이 단계에서 바람직한 맞선 테크닉을 가르치는 ‘맞선 클리닉’이 가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두 사람이 만나는 자리에 커플매니저는 나타나지 않는다. 중매쟁이가 반드시 동행하는 맞선과의 차이점이다.
만남이 이루어진 다음날 커플매니저는 다시 두 사람의 소감을 묻는다. “마음에 든다” “교제해 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컴퓨터 인적란에 ‘교제중’이라고 입력한다. 그동안 소개는 보류된다. 보통 회원의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가입하면 4번에서 12번 정도의 만남이 보장된다. 보통 네 번째나 다섯 번째 만남에서 짝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해진 횟수를 모두 채웠는데도 짝을 못 찾은 사람 중에는 재가입해 다시 기회를 노리는 사람도 있다.
한 회사의 이벤트 모임에서 만난 박형배씨(27)도 그런 경우였다. 그는 A회사에 정회원으로 가입해 8번의 만남을 가졌으나 끝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했다. 그는 이번에는 전략을 좀 달리해 다른 결혼정보회사에 새로 가입했다. 이 회사에서는 이벤트 미팅에만 참석하는 조건이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주선해 주는 사람은 물론 조건은 적당하지요. 그리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왜 실패했느냐고요? 만난 사람들과 가치관이 잘 맞지 않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제는 단체미팅에만 나오는데, 여기서는 너무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만나다 보니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요.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앵무새가 된 느낌이거든요.”
성혼율이 30%라고 해도 열 명 중 일곱 명은 짝을 찾는 데 실패하는 셈이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짝을 못 만난 사람들은 가장 큰 문제로 ‘컴퓨터 매칭’을 든다. 조건 자체는 무난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지만 정작 조건보다 더 중요한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 한 회사에서 아홉 번 만남을 가진 대학생 문혜원씨(27) 역시 그런 경우였다.
“아홉 명이 모두 기대에 못 미쳤어요. 조건이 마음에 안 든 게 아니라 대부분 저와 공통분모가 없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아무래도 서류상으로만 맞춰서 그런지, 성격이 저와 너무 달랐어요. 외형적인 조건은 괜찮았지만요.” 문씨는 “아직은 사람을 만나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많이 지친 눈치였다.
왕자병이나 공주병 환자들도 결혼정보회사에서 짝을 만나기 힘들다. 이들은 커플매니저들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경우로 자기 눈에 차지 않으면 “나를 뭘로 보고!”라며 화를 내는 공통점이 있다. 한 판사의 어머니가 내건 조건은 왕자병의 극단적인 사례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나이 26세, E대 영문과 졸업, 양친 모두 생존해 계시고 아버지는 사회 저명인사여야 함, 지참금은 10억 원.’ 이 회원은 위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E대 생물학과 출신을 소개해 주자 거절했다고 한다.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이들 중에는 재혼을 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재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결혼 건수 중 10%를 넘는다. 한 재혼 전문 커플매니저는 “재혼은 대체로 초혼보다 신중하며 조건을 훨씬 많이 따지는 편”이라고 전했다.
백마 탄 왕자를 소개해 주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결혼정보회사 외에도 이성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많은데 굳이 적잖은 회비를 내면서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LG경제연구원의 지만수 책임연구원은 결혼정보산업의 성장 이유로 결혼정보회사가 과거의 중매쟁이들보다 광범위하고 정교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즉 요즘의 젊은이들은 ‘집안 좋고 참하다’는 식의 소개만 믿고 맞선을 보러 나갈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 별다른 창업 자금이 들지 않는다는 점 역시 결혼정보산업의 성장에 큰 몫을 하고 있다는 것이 지만수 연구원의 진단이다. 그는 “서구처럼 독신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거나 조건 위주의 결혼 관행이 파괴되지 않는 한, 결혼정보산업의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리학자 황상민 교수(연세대) 역시 결혼정보산업의 성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과거에는 사회와 가정이 당연히 제공해 준 일을 서비스산업이 대체하고 있는 것이지요. 젊은이들은 어디선가 나타날 천생배필을 찾기보다 백화점에서 가장 구색이 맞는 상품을 선택하듯 결혼 상대를 찾으려 합니다. 제 앞가림을 못해서가 아니라 이 방식이 가장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황교수는 “중매결혼의 장점을 취하면서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과거 미국인들에게 우리의 중매문화를 설명하면 상당히 신기하면서도 편리한 제도라고 부러워했다”면서 결혼정보산업의 성장을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결혼정보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의 외모, 여자는 남자의 경제력을 가장 중시하고 △여자는 나이 비슷한 남자를 찾고 남자는 나이 어린 여자를 찾으며 △본인의 능력이 중시되는 남자에 비해 여자는 외모나 집안환경 등을 더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보는 경향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처럼 결혼정보회사는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잣대다. 하지만 결혼정보회사는 순기능 못지않게 우리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신분구조를 더 심화시키는 기능도 한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거나 좋은 직장이 없는 경우, 키가 작거나 아이가 딸린 여성 등 ‘번듯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예 결혼정보회사에 가입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결혼이 사랑이기 이전에 제도인 우리의 현실이 이러한 산업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영남 출신과 호남 출신의 결합이나 대졸 여자와 고졸 남자의 결혼 등은 여전히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결혼 당사자들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가장 맞는 조건의 상대를 찾고 결혼정보회사는 정보 제공의 대가로 돈을 받으니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지요. 결혼정보회사를 비판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 사회가 여러 조건을 보지 않고도 결혼할 수 있을 만큼 열린 사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학까지 다녀온 사립학교 이사장의 딸 정은이 가난한 축구코치 반달웅과 맺어진다는 줄거리의 MBC 미니시리즈 ‘반달곰 내 사랑’은 방영 내내 한자릿수의 낮은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국진과 송윤아라는 스타를 기용했음에도 이 순애보가 시청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먹혀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놓을 만한 조건은 없지만 인간성만은 진실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보 같은’ 여자는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