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크로스(LCROSS)가 촬영한 달 표면.
‘사이언스’는 앞서 9월25일자에도 물이 소량이지만 달 전역에 고르게 분포한다는 미국 연구진의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물이 달의 극지에만 존재한다는 종전 학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달 전역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새로운 내용을 담았다.
10월9일 밤(한국시간)에는 달 충돌 위성 엘크로스(LCROSS)가 물의 흔적을 찾기 위해 달 남극과 충돌하는 역사적 실험이 진행되기도 했다. ‘고요의 바다’로 불리던 달이 최근 과학자들에게 이처럼 집중 조명을 받는 이유는 뭘까.
태양과 혜성이 물 만들어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달에 있는 물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된다. 1972년 미국의 아폴로 17호가 마지막으로 달에 다녀왔을 때만 해도 대다수 학자는 “달에 물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달 표면에는 아주 센 햇볕이 내리쬐는 데다 물을 흡수할 대기층도 없어 물이 존재하기란 이론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오랫동안 달 표면은 푸석푸석한 흙과 크고 작은 암석으로 이뤄져 있을 것이란 통설이 지배했다.
약 20년 뒤 이 같은 통설을 뒤집을 징후가 포착됐다. 1994년 미국의 달 탐사선 클레멘타인호가 달 극지 상공을 날아가다 우연히 물 성분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햇볕이 약한 달 남북극 지하에 상당량의 물이 얼음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관찰이었다. 1998년 발사된 루나프로스펙터호는 달에 1100만~3억3000만t의 얼음이 있다는 추정치까지 내놨다.
학자들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햇빛 때문에 물이 증발했지만 남북극 근처에는 영구 동토지역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물론 남북극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 물이 존재할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해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 연구팀은 극지뿐 아니라 중위도 지역에도 소량이지만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달을 관측한 3대의 인공위성이 보내온 결과를 정밀 분석한 끝에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가장 먼저 물을 발견한 것은 인도 최초의 달 탐사 위성 찬드라얀 1호로, 달이 반사하는 빛의 파장을 통해 달 표면 물질을 분석했다. ‘사이언스’가 이번에 공개한 사진은 지난해 11월부터 달 주위를 돌며 광물자원탐사장비(M³)가 촬영한 사진 여러 장을 이어 붙인 것이다. 사진 속 달 표면은 알록달록한 색깔로 표시돼 있다. 달의 적도 부분의 초록색은 달 표면의 밝기를, 붉은색은 광물의 일종인 휘석의 분포를 나타낸다.
파란색은 물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NASA 측은 설명했다. 미국의 혜성 탐사 무인우주선 ‘딥 임팩트’도 지난 6월 달을 지나며 이와 비슷한 데이터를 보내왔다. 또 미국의 토성 탐사선 ‘카시니’가 1999년 달을 통과하며 보낸 자료를 재검토했더니 마찬가지 결론이 나왔다. 과학자들은 달 표면 전역에 물이 존재한다는 놀라운 결과를 접한 뒤 처음에는 측정기계 고장을 의심했다.
하지만 위성 3개가 동시에 고장을 일으킬 가능성은 0%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달에 물이 존재하는 것은 명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달에 존재하는 물은 지구에서 흔히 보는 형태와 전혀 다르다. 미국 브라운대의 칼 피터스 박사는 “달에 존재하는 물은 호수나 바다, 웅덩이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달 표면에 있는 흙과 상호작용하는 물 분자와 수산기(OH)가 존재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달을 형상화한 사진을 실은 10월23일자 ‘사이언스’지 표지(오른쪽)와 엘크로스가 10월9일 오후 8시 반(한국 시간) 달 표면에 충돌하는 모습을 그린 상상도.
태양에서 날아오는 입자(태양풍)에 섞여 있는 양성자(H+)가 달 표면 흙에 부딪히며 흙 속에 있던 수산화이온(OH-)과 결합하면서 물이 생겼다는 것. 또 다른 학자들은, 달 표면의 물은 대부분 얼음덩어리로 이뤄진 혜성이 달 표면에 부딪히면서 남긴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한다.
지구처럼 대기가 없는 달에는 지금도 우주에서 날아온 혜성이나 운석이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다. 한국천문연구원 최영준 박사는 “이번 연구로 가설에만 머물던 ‘물 외부 공급설’이 더 설득력을 얻게 된 셈”이라면서도 “그렇다고 달의 생태계가 변하거나 생명이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경계했다. 한편 10월9일 실시된 달 충돌 실험은 달의 물 존재 여부를 좀더 분명히 가늠할 결과를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NASA가 달 남극의 케비우스 크레이터(분화구 또는 구멍)를 충돌 지점으로 삼은 건 그동안의 관측 결과 이곳을 포함한 달 극지에 수소가 많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NASA는 엘크로스가 9일 오후 케비우스 크레이터에 충돌해 높이 1.6km의 먼지 기둥이 일어나는 모습을 성공적으로 포착했다. 비록 전 세계 아마추어 천체 관측가들을 만족시킬 만한 멋진 먼지구름을 연출하지 못했지만 과학자들은 상당량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730m2 흙 긁어모아야 물 한 모금
최근 과학자들이 달에서 물의 존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경제적 가치 때문이다. 달에 막대한 양의 자원과 에너지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국의 달 탐사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은 2020년까지 달에 최소 6~8대의 무인 탐사선을 보내는 미국 주도의 국제 달 탐사네트워크(ILN)에 참여한다는 계획을 최근 수립했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은 물론 일본과 중국은 이미 달에 사람이 사는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문제는 달 기지에서 사용할 막대한 양의 물을 조달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물은 우주 개발에 나설 경우 달에 상주할 우주인의 생필품이다. 물을 분해해 얻은 산소, 수소는 우주선의 연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구에서 달까지 물을 운송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 일부 학자는 달에 있는 영구 동토층 규모의 물을 지구에서 가져가려면 60조 달러(7경2000조원)가 소요되리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그렇다고 척박한 달에 우물을 판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달에서 영구 동토층을 찾거나 물의 존재를 찾으려고 과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물이 없을 것으로 추정되던 중위도 지역에도 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가까운 미래에 달 기지에서 활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늘어났다.
달에 있는 물을 실제 식수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서도 730m²(약 220평) 면적의 달 표면 흙을 긁어모으면 겨우 물 한 모금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사막의 모래가 함유한 물보다 훨씬 적은 양이다. 과학자들은 달 표면 흙을 대량으로 처리하는 획기적인 방법이 나오거나 대규모 얼음층을 발견하지 못하는 한, 달에 인류가 정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