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 C-17이 기수를 들어 상승 비행을 하는 중 한 승무원이 활짝 열린 바닥 문 끝에 버티고 앉으려 하고 있다. 영화 ‘에어포스 원’을 찍는 줄 알았다.
조종실의 안전띠는 5점 연결이다. 양쪽 어깨와 허리, 그리고 사타구니 사이의 끈을 버클로 연결해 몸을 고정시킨다. 그때 컵 홀더에 꽂혀 있는 반쯤 마신 생수병이 눈에 띄었다. 조종실 창밖에선 F-15가 격렬한 공중기동을 하고 있었다. 그 직전에는 한국 공군의 블랙이글이 8대의 T-50으로 화려한 곡예비행을 보여줬다. 기동성이 좋은 F-15나 T-50의 조종실에는 모든 물체가 고정돼 있다. C-17은 기체가 워낙 커서 저런 기동을 하지 못하기에 물병을 아무 데나 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 하나 바로잡기도 힘들어
잠시 후 C-17이 주활주로의 끝에 섰다. 브레이크를 꽉 밟은 상태에서 부조종사가 풀 파워를 가하자 기체가 진저리를 치며 ‘왕~’ 하는 소리를 냈다. 브레이크를 풀자 활주로 정중앙에 찍힌 하얀 점선이 순식간에 실선으로 변하면서 등이 의자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몸에 가해지는 압력이 더욱 커져, 조종사가 일부러 높은 각도로 이륙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창을 내다보니 산이 전부 옆으로 보였다.
내리누르는 압력을 이기기 위해 용을 써가며 간신히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창밖으로는 이미 잠실 롯데월드와 석촌호수가 내려다보였다. C-17은 부활주로보다는 롯데월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활주로에서 이륙했는데, 롯데월드가 이렇게 가깝게 보이다니…. 123층의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부활주로를 이용한 C-17의 이착륙은 아예 불가능할 것 같았다. 대형 항공기를 타고 이착륙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이 현실을 무시한 채,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순간 C-17이 밑으로 떨어지는 비행을 시작했다. 중력을 상실해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낭패감이 덮칠 때 조종실 전방 유리창 쪽으로 반쯤 찬 생수병 3개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큰일 났다’ 싶었는데, 조종사들은 ‘익숙하다’는 듯 팔을 뻗어 신속히 생수병을 잡아 내렸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다. 그런데 내 몸도 붕 떠오르는 ‘마이너스 G’ 상태인지라 카메라를 들어올렸다간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놓친 카메라는 곧바로 흉기가 된다. 헬멧을 쓰지 않은 조종사의 머리를 때려 실신시키거나 앞 유리창을 부숴버린다면 안전한 귀환은 보장되지 않으므로 촬영을 포기하기로 했다. 조종칸에서는 C-17의 고도가 급속히 떨어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자동으로 ‘앨터튜드(altitude·고도), 앨터튜드!’라는 경고음이 반복해서 나왔다. 그런데도 조종사들은 한참을 더 낙하한 후에야 수평비행에 들어갔다.
▲길이가 53m가 넘는 C-17이 전투기처럼 큰 각도로 이륙하고 있다. 조종사들은 큰 압력을 극복하면서 조종을 한다. <br> ▼서울공항을 이륙한 C-17 조종실에서 본 잠실 석촌호수와 롯데월드. 이 자리에 123층의 제2롯데월드가 들어선다면 대형 항공기의 서울공항 입·출입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엔진이 고장 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였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단풍이 곱게 물든 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하늘에서, 좌우로 몸을 트는 비행이 시작됐다. 차 핸들을 급하게 틀어도 몸이 확확 쏠리기 일쑤인데, 자동차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항공기가 요동을 치니 내 몸 하나 바로잡는 데에만 신경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 틈에도 기자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겹게 창밖을 내다보니 산이 너무 가까이 있다는 위기감이 엄습해왔다. 길고 긴 C-17의 날개가 당장이라도 산 어딘가에 걸려버릴 것만 같았다. 조종칸에서는 기체가 산에 근접했음을 알리려는 듯 ‘터레인(terrain·지상), 터레인!’이라는 경고음이 반복해서 나왔다.
본능적 공포 이겨내는 승무원
이런 비행을 한 후 기자는 몇 명의 동승자가 기다리고 있는 화물칸으로 내려왔다. 화물칸은 높은 곳에 작은 창문 2개가 있고 형광등만 켜져 있었다. 이 흐릿한 조명 속에서 동승자들은 어떤 비행을 했는지 몰라 충격이 더 컸을 것이다. 기분을 물어보니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 바닥에 놓인 짐들이 뒤쪽으로 쓸려가 매우 놀랐다. 생수병이 천장으로 올라가 터지는가 하면, 기체가 덜덜거려 사고가 나는 줄 알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덩치 큰 수송기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휴대용 대공(對空) 미사일이다. 병사들이 어깨에 메고 다닐 수 있는 이 미사일은, 제대로 유도하면 3km 이하의 고도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5km 밖에서도 격추할 수 있다. 저고도 비행체의 대표가 헬기인데, 미군 헬기는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쏜 이 미사일에 걸려 자주 격추되고 있다.
이착륙 시 모든 비행기는 저공비행을 해, 적군은 이 미사일을 갖고 공항 근처에서 숨어 기다린다. 수송기는 이러한 위험을 피해야 하므로 저공·저속에서 이 미사일의 조준을 피하는 ‘회피기동’을 연습한다. 2004년 12월8일 노무현 대통령을 태운 우리 공군의 C-130 수송기도 회피 기동을 하며 자이툰 부대가 주둔한 이라크의 아르빌 공항에 내렸다. 그때 난생 처음으로 강한 충격을 경험한 수행원들은 “죽는 줄 알았다”는 소감을 털어놓기도 했다.
화물칸 좌석의 안전띠는 허리만 묶어준다. 안전띠를 채우고 잠시 앉아 있으니 ‘램프(ramp)’라고 불리는 화물칸 뒤쪽의 바닥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전차도 빠져나갈 수 있는 넓고 넓은 문이 열린 것이다. 10km쯤 되는 고도를 고속으로 날아가는 항공기의 문이 열리면 기압 차이 때문에 한순간에 사람과 화물이 밖으로 빨려 나간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두 다리에 힘을 꽉 줬다. 그러나 C-17은 저공에서 저속비행하며 문을 열었기에 밖으로 빨려나가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안도감은 생명줄을 허리에 묶은 한 승무원이 바닥 문 끝으로 걸어가 우뚝 서는 바람에 다시 긴장감으로 변했다. 특전대원이나 화물을 공중투하하는 경우를 상정한 묘기인 듯했다. 그 순간 C-17이 기체를 들어 상승 비행에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뒤로 굴러 떨어지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안전띠를 움켜쥐었다. 그런데 바닥 문 끝에 서 있던 승무원은 바닥에 앉은 채로 버티는 게 아닌가. 영화 ‘에어포스 원’을 찍는 것도 아닌데 어쩌려고….
먼 거리였지만 그의 군복 자락이 세차게 팔랑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강한 바람을 맞으며 태연히 앉아 있는 그를 보면서 거듭된 훈련은 본능적인 공포도 이겨내게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C-17은 바닥 문을 열고 상승 비행을 해야 화물을 투하할 수 있으니 승무원은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서울에서 지진 같은 큰 재해가 일어나 육로 수송이 불가능해지면, 수송기와 헬기로 구호물품을 공중 투하한다. 이때 이용하는 발진기지가 서울공항인데,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이 공항을 활용하는 데 큰 제약을 받게 된다. 제2롯데월드가 완공되면 항공기와의 충돌 가능성 때문에 서울공항을 폐쇄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씁쓸한 마음으로 서울공항에 돌아와 땅을 디디니 땅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C-17은 74t의 화물을 싣고 이륙할 수 있다. 긴수염고래 같은 ‘체구’를 지니고도 참치처럼 물 위로 뛰어오르는 기동을 한 C-17이 달라 보였다. 역시 군용기는 군용기였다. 여객기는 절대로 이런 비행을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