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육상 단거리에 샛별 ‘하나’가 떠올랐다. 10월26일 대전에서 막을 내린 제90회 전국체전 여자육상에서 4관왕을 차지한 김하나(24·안동시청)다. 20일 여자 일반 100m에서 우승을 차지한 김하나는 21일 200m에서도 23초69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23년 만에 한국 기록을 갈아치웠다.
종전 기록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박미선이 세운 23초80. 이어 22일 400m 계주에서도 정순옥 김태경 김초롱(이상 안동시청)과 함께 23년 만에 한국 기록(45초33)을 다시 쓴 뒤, 23일 1600m 계주 금메달로 ‘화려한 질주’의 마침표를 찍었다. 단 일주일 만에 한국 육상은 여자 단거리의 대표주자를 얻었다.
‘트랙의 김태희’ 광고모델 제의 봇물
김하나는 한국체육기자연맹 기자단 투표에서 전국체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여자선수가 MVP로 뽑힌 것은 2004년 양궁의 박성현(26·전북도청) 이후 5년 만의 일. 더욱이 육상 단거리 종목에서 MVP가 나온 것은 사상 최초다. 1980년 제61회 대회부터 MVP를 선정한 이후 육상에서 10차례 MVP가 배출됐지만, 모두 마라톤 등 장거리 선수나 세단뛰기 등 필드 종목 선수였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표현이 딱 맞다. 뛰어난 실력에 ‘트랙의 김태희’라고 불릴 정도의 수려한 외모까지.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육상 영웅감을 찾던 육상계는 김하나에게 매료됐다. 대한육상경기연맹, 경북체육회 등으로부터 받은 포상금만 2000만원이 넘고 광고출연 제의도 빗발쳤다. 몇몇 실업팀은 2009년을 끝으로 안동시청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김하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전쟁’에 돌입했다는 후문이다.
계약금만 억대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하나는 “웬만하면 나를 키워준 안동시청에 남고 싶다”며 ‘의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멀리뛰기 선수로 활약하던 김하나는 고질적인 아킬레스건 부상 때문에 실업팀에 입단하면서 단거리로 전향했다. 170cm, 56kg의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와 유연성이 장점. 하지만 안동시청 오성택 감독은 “김하나의 최대 장점은 무엇보다 어떤 훈련도 다 소화해내는 성실함”이라고 칭찬한다.
남자육상 200m 한국 기록(20초41) 보유자인 장재근 대한육상경기연맹 트랙부문 기술위원장은 “한국의 단거리 선수들은 200m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하나는 다르다”면서 “기록만 봐도 엄청난 훈련 양을 짐작할 수 있다”며 놀라워했다. 200m는 100m보다 훈련 거리가 길고 강도도 세다. 하지만 힘든 200m 훈련을 충실히 해두면 100m에서도 막판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를 비롯해 세계적인 스프린터들에게는 100m와 200m 겸업이 대세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쉬운 훈련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단거리 선수가 많지 않다 보니 100m에만 출전해도 충분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운동선수로서의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돈벌이 수단만 남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는 한국 육상이 정체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하나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꿈을 좇고 있다.
오 감독은 “내년 시즌에는 200m에서 20초 초반대 기록에 도전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김하나가 늘 성실한 훈련 태도를 유지하는 데는 멀리뛰기와 단거리 선수 출신인 어머니 이미자 씨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김하나는 어머니가 “운동신경이 전혀 없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얌전한 아이였다. 그의 ‘질주 본능’이 발휘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출전한 교내 체육대회에서다. 멀리뛰기에서
1등을 한 김하나는 정식 육상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파주시 대회와 경기도 대회까지 석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중도에 운동을 포기한 이씨는 “그 순간 내가 못다 이룬 꿈을 딸이 이뤄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모의 반대에도 운동을 시작한 대부분의 선수와 달리, 김하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육상부의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때 반장을 도맡을 만큼 공부도 잘했기에 선생님은 “하나에겐 공부를 시켰으면 좋겠다”고 설득했지만 이씨는 요지부동이었다. 문산여중 1학년. 정식 육상부 생활이 시작됐다. 고된 훈련과 외로운 숙소생활. 하지만 김하나는 “엄마한테는 운동이 힘들다는 투정을 한 번도 못 부렸다”고 털어놓았다. “더 힘들게 운동해야 한다”는 채찍질이 돌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트랙을 떠나 집에 돌아와도 매서운 ‘코치’가 버티고 있었다. 김하나의 성실함은 어머니에 의해 단련된 유산이다. 딸이 한국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이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울컥해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말했다. 한국 육상과 어머니 이씨의 숙원이 동시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코치보다 더 무서웠던 어머니
이제 김하나는 1994년 이영숙이 세운 100m 한국 기록(11초49)을 향해 뛴다. 본인 최고기록(11초59)과는 0.1초 차. 김하나는 “올겨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스피드를 더 보완해 내년 상반기에는 100m 한국 기록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김하나가 100m 한국 기록마저 넘어선다면 남자육상 100m, 200m, 400m 계주에서 모두 세계 기록을 지니고 있는 볼트처럼 한국 여자육상 단거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김하나는 볼트와 마찬가지로 400m 계주 순번도 3번이다. 400m 계주의 1·3번 주자는 곡선주로 100m를, 2·4번 주자는 직선주로를 뛴다. 볼트처럼 김하나도 곡선주로에 자신이 있다. 오 감독은 “보통 멀리뛰기 선수 출신들이 곡선주로에 강해 200m를 잘 뛴다”고 말했다. 200m 트랙은 곡선주로 100m, 직선주로 100m로 이뤄진다. 곡선주로에서의 기록 단축은 원심력과의 싸움이 관건이다.
김하나는 “고등학생 때 멀리뛰기를 하면서 쌓아둔 리듬감, 구름판 도약 훈련을 하면서 키운 근력이 곡선주로에서 원심력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약 스타 반열에 올라선 김하나. 이제 미디어와 팬, 육상 관계자들의 지대한 관심도 또 하나의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연 김하나는 기록에 대한 부담을 뚫고 붙박이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큰 욕심을 내기보다 경기마다 내 기록을 깬다는 자세로 뛰겠다”는 그의 당찬 목소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종전 기록은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박미선이 세운 23초80. 이어 22일 400m 계주에서도 정순옥 김태경 김초롱(이상 안동시청)과 함께 23년 만에 한국 기록(45초33)을 다시 쓴 뒤, 23일 1600m 계주 금메달로 ‘화려한 질주’의 마침표를 찍었다. 단 일주일 만에 한국 육상은 여자 단거리의 대표주자를 얻었다.
‘트랙의 김태희’ 광고모델 제의 봇물
김하나는 한국체육기자연맹 기자단 투표에서 전국체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되는 영예도 누렸다. 여자선수가 MVP로 뽑힌 것은 2004년 양궁의 박성현(26·전북도청) 이후 5년 만의 일. 더욱이 육상 단거리 종목에서 MVP가 나온 것은 사상 최초다. 1980년 제61회 대회부터 MVP를 선정한 이후 육상에서 10차례 MVP가 배출됐지만, 모두 마라톤 등 장거리 선수나 세단뛰기 등 필드 종목 선수였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는 표현이 딱 맞다. 뛰어난 실력에 ‘트랙의 김태희’라고 불릴 정도의 수려한 외모까지.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육상 영웅감을 찾던 육상계는 김하나에게 매료됐다. 대한육상경기연맹, 경북체육회 등으로부터 받은 포상금만 2000만원이 넘고 광고출연 제의도 빗발쳤다. 몇몇 실업팀은 2009년을 끝으로 안동시청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김하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전쟁’에 돌입했다는 후문이다.
계약금만 억대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하나는 “웬만하면 나를 키워준 안동시청에 남고 싶다”며 ‘의리’를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고등학생 때까지 멀리뛰기 선수로 활약하던 김하나는 고질적인 아킬레스건 부상 때문에 실업팀에 입단하면서 단거리로 전향했다. 170cm, 56kg의 체격에서 나오는 파워와 유연성이 장점. 하지만 안동시청 오성택 감독은 “김하나의 최대 장점은 무엇보다 어떤 훈련도 다 소화해내는 성실함”이라고 칭찬한다.
남자육상 200m 한국 기록(20초41) 보유자인 장재근 대한육상경기연맹 트랙부문 기술위원장은 “한국의 단거리 선수들은 200m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 김하나는 다르다”면서 “기록만 봐도 엄청난 훈련 양을 짐작할 수 있다”며 놀라워했다. 200m는 100m보다 훈련 거리가 길고 강도도 세다. 하지만 힘든 200m 훈련을 충실히 해두면 100m에서도 막판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우사인 볼트(23·자메이카)를 비롯해 세계적인 스프린터들에게는 100m와 200m 겸업이 대세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쉬운 훈련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단거리 선수가 많지 않다 보니 100m에만 출전해도 충분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 그래서 운동선수로서의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돈벌이 수단만 남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는 한국 육상이 정체된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하나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꿈을 좇고 있다.
오 감독은 “내년 시즌에는 200m에서 20초 초반대 기록에 도전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김하나가 늘 성실한 훈련 태도를 유지하는 데는 멀리뛰기와 단거리 선수 출신인 어머니 이미자 씨의 영향이 컸다. 어린 시절 김하나는 어머니가 “운동신경이 전혀 없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로 얌전한 아이였다. 그의 ‘질주 본능’이 발휘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우연히 출전한 교내 체육대회에서다. 멀리뛰기에서
1등을 한 김하나는 정식 육상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파주시 대회와 경기도 대회까지 석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중도에 운동을 포기한 이씨는 “그 순간 내가 못다 이룬 꿈을 딸이 이뤄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모의 반대에도 운동을 시작한 대부분의 선수와 달리, 김하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육상부의 문을 두드렸다.
초등학교 때 반장을 도맡을 만큼 공부도 잘했기에 선생님은 “하나에겐 공부를 시켰으면 좋겠다”고 설득했지만 이씨는 요지부동이었다. 문산여중 1학년. 정식 육상부 생활이 시작됐다. 고된 훈련과 외로운 숙소생활. 하지만 김하나는 “엄마한테는 운동이 힘들다는 투정을 한 번도 못 부렸다”고 털어놓았다. “더 힘들게 운동해야 한다”는 채찍질이 돌아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트랙을 떠나 집에 돌아와도 매서운 ‘코치’가 버티고 있었다. 김하나의 성실함은 어머니에 의해 단련된 유산이다. 딸이 한국 기록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은 이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도 모르게 울컥해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말했다. 한국 육상과 어머니 이씨의 숙원이 동시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코치보다 더 무서웠던 어머니
이제 김하나는 1994년 이영숙이 세운 100m 한국 기록(11초49)을 향해 뛴다. 본인 최고기록(11초59)과는 0.1초 차. 김하나는 “올겨울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스피드를 더 보완해 내년 상반기에는 100m 한국 기록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김하나가 100m 한국 기록마저 넘어선다면 남자육상 100m, 200m, 400m 계주에서 모두 세계 기록을 지니고 있는 볼트처럼 한국 여자육상 단거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김하나는 볼트와 마찬가지로 400m 계주 순번도 3번이다. 400m 계주의 1·3번 주자는 곡선주로 100m를, 2·4번 주자는 직선주로를 뛴다. 볼트처럼 김하나도 곡선주로에 자신이 있다. 오 감독은 “보통 멀리뛰기 선수 출신들이 곡선주로에 강해 200m를 잘 뛴다”고 말했다. 200m 트랙은 곡선주로 100m, 직선주로 100m로 이뤄진다. 곡선주로에서의 기록 단축은 원심력과의 싸움이 관건이다.
김하나는 “고등학생 때 멀리뛰기를 하면서 쌓아둔 리듬감, 구름판 도약 훈련을 하면서 키운 근력이 곡선주로에서 원심력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약 스타 반열에 올라선 김하나. 이제 미디어와 팬, 육상 관계자들의 지대한 관심도 또 하나의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연 김하나는 기록에 대한 부담을 뚫고 붙박이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큰 욕심을 내기보다 경기마다 내 기록을 깬다는 자세로 뛰겠다”는 그의 당찬 목소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