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그랬다. 동네에 생선장수 리어카가 들어오면 엄마들이 우르르 나와 이야기꽃을 피웠다. 엄마 손 잡고 나온 아이들은 또래들과 어울리며 구멍가게로 몰려가 알사탕을 사먹었다. 지금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동네에선 생선장수가 사라졌다. 엄마들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인터넷이나 TV홈쇼핑으로 먹을거리, 입을 거리를 얼마든지 살 수 있다. 그걸로 성에 차지 않으면 혼자 차를 몰고 대형마트에 가면 된다.
대규모 아파트단지에 사는 이들은 집 밖에 나가도 친하게 지내는 ‘동네 언니’나 ‘동네 친구’가 없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좀처럼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엄마가 늘고 있다. 어쩌다 외출을 해도 볼일만 보고 들어온다. 이웃들과의 상호작용도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 엄마의 이런 생활습관이 어린 자녀에게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과 선우현 교수는 “집 밖의 환경을 경험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아이에겐 정서장애와 사회성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정서장애와 사회성장애 생길 수도
“첫돌 무렵까지는 부모하고만 상호작용을 해도 정서 발달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받아야 해요. 바깥에서 사람들도 접하고 경험을 쌓으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그런 기회가 박탈된 채 집에만 있는 아이들은 5, 6세 때 유치원에 들어가면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또래 집단과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등 위축된 모습을 보입니다. 반대로 너무 산만하거나 자기중심적이기도 하고요.”
초등학교 1학년인 민아(가명)는 학교에선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같은 반 친구들이 민아의 목소리가 어떤지 궁금해할 정도. 집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말문이 트여 조잘거린다. 부모는 민아가 첫돌 됐을 때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동네 친구도 없고, 친정도 멀어 민아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여섯 살 때 유치원에 간 민아는 친구들이 쳐다만 봐도 부끄러워하고 불안해했다. 친구를 사귀는 건 민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 후 낯선 환경이 거북하면 입을 꼭 다물어버리는 증상이 생겨났다. 선우현 교수는 “민아의 사례처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또래집단과 사귀지 못해 치료실을 찾는 아이가 많다”며 “가족 상담을 해보면 엄마 역시 소심하거나 무기력해,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대인관계를 활발히 맺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외출을 꺼리는 엄마들은 대개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타인과 관계 맺는 걸 어려워한다.
즉 엄마 자신도 △부모 등 가족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했거나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부부관계가 원활하지 않으며 △본인이 사회적으로 유능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증상은 고학력 여성에게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과 석사과정의 박수정 씨는 ‘어머니의 초기 대상관계 유형과 유아의 또래놀이 상호작용의 관계’ 논문을 준비하면서 193명의 엄마-자녀 관계를 연구한 결과 “엄마는 자신이 받은 양육 태도와 비슷하게 아이를 양육한다”고 설명했다.
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이보연 소장도 “자신감이 없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엄마도 자아존중감이 결여된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과거엔 엄마에게 그런 성향이 있어도 아이는 다양한 환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형제자매나 사촌은 물론 동네 놀이터에만 가도 함께 놀 친구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최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아파트단지로 이사한 주부 정재민(32) 씨는 “동네 엄마들과 사귀는 것도, 다섯 살 난 아이에게 같이 놀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도 쉽지가 않다”고 털어놓았다.
“저희 어렸을 땐 동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쉽게 친구가 됐죠. 하지만 요즘은 다들 먼 곳으로 차를 태워 보내요. 어린이 교육시설도 다양해졌고요. 같은 곳에 다니는 아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죠. 그러니 동네 엄마들과 사귈 기회가 드물어요. 아이 스스로 친구를 사귈 여건이 안 되니 엄마가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줘야 하고, 그러려면 그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과 어울리며 오가야 하는데….”
정씨는 얼마 전 놀이터에서 여섯 살 아이를 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 뒤 연락처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좀더 친해지면 아이를 데리고 서로의 집을 방문할 예정이다. 정씨처럼 활달하고 사람들을 잘 사귀는 성격이라면 몰라도 내성적인 사람은 낯선 이와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같은 동네 사는 친구 구해요”
고립된 엄마, 그로 인해 더 고립되는 아이. 이런 증상은 다문화가정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선우현 교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 중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또래집단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서만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영어유치원이나 DVD 교재 등을 통해 외국인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져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하진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 중 상당수가 타인과 관계 맺는 기술이 서툴다는 점.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상담해보면 심하게 위축돼 있거나, 아니면 아주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요. 사회성 지수도 정상아보다 한두 살 떨어집니다. 그 이면엔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엄마가 있어요. 엄마가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환경에 놓이다 보니 외출하거나 사람 만나는 걸 꺼리게 됐고, 그 결과 아이 역시 사회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거죠.”
이렇게 사회성이 결여된 엄마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보연 소장은 “남편의 도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건 물론 틈날 때마다 아내,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마련해야 한다. 아내가 사람 만나는 걸 꺼린다면 동물원이나 식물원 등 자연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곳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도 방법이다.
엄마들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아주대 의대 정신과 조선미 교수는 “낯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려우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편하게 함께할 수 있는 친인척이나 친구들부터 만나라”고 조언했다. 또 “엄마가 육아에 매몰돼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은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좋지 않다”며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수강하거나 취미활동, 운동 등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하루 종일 아이만 키우며 집에 있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온라인 카페 등에는 ‘심하게 외출을 안 하다 보니 고립되는 것 같다’ ‘같은 동네 사는 또래친구를 구한다’는 내용의 글이 많이 올라온다. 온라인 활동뿐 아니라 오프라인 정기모임 등에 참석하는 것도 좋다.
사회적 지원 시스템도 필요하다. 독일에서는 초보 엄마들에게 양육 도우미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이때 아이들이 함께하면 좋은 놀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공간 등 육아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특히 한 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 등 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가정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준다. 선우현 교수는 “우리 사회에도 대도시화, 핵가족화, 가족해체 등으로 물리적, 정서적으로 고립된 엄마가 늘고 있다”며 “과거엔 가족과 친인척, 이웃이 도우미 노릇을 했지만 이젠 사회가 그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아파트단지에 사는 이들은 집 밖에 나가도 친하게 지내는 ‘동네 언니’나 ‘동네 친구’가 없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좀처럼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엄마가 늘고 있다. 어쩌다 외출을 해도 볼일만 보고 들어온다. 이웃들과의 상호작용도 거의 없어졌다. 그런데 엄마의 이런 생활습관이 어린 자녀에게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과 선우현 교수는 “집 밖의 환경을 경험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는 아이에겐 정서장애와 사회성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정서장애와 사회성장애 생길 수도
“첫돌 무렵까지는 부모하고만 상호작용을 해도 정서 발달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받아야 해요. 바깥에서 사람들도 접하고 경험을 쌓으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그런 기회가 박탈된 채 집에만 있는 아이들은 5, 6세 때 유치원에 들어가면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또래 집단과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등 위축된 모습을 보입니다. 반대로 너무 산만하거나 자기중심적이기도 하고요.”
초등학교 1학년인 민아(가명)는 학교에선 전혀 말을 하지 않는다. 같은 반 친구들이 민아의 목소리가 어떤지 궁금해할 정도. 집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말문이 트여 조잘거린다. 부모는 민아가 첫돌 됐을 때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동네 친구도 없고, 친정도 멀어 민아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여섯 살 때 유치원에 간 민아는 친구들이 쳐다만 봐도 부끄러워하고 불안해했다. 친구를 사귀는 건 민아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 후 낯선 환경이 거북하면 입을 꼭 다물어버리는 증상이 생겨났다. 선우현 교수는 “민아의 사례처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또래집단과 사귀지 못해 치료실을 찾는 아이가 많다”며 “가족 상담을 해보면 엄마 역시 소심하거나 무기력해,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대인관계를 활발히 맺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외출을 꺼리는 엄마들은 대개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타인과 관계 맺는 걸 어려워한다.
즉 엄마 자신도 △부모 등 가족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했거나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부부관계가 원활하지 않으며 △본인이 사회적으로 유능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증상은 고학력 여성에게도 적지 않게 나타난다. 명지대 아동심리치료학과 석사과정의 박수정 씨는 ‘어머니의 초기 대상관계 유형과 유아의 또래놀이 상호작용의 관계’ 논문을 준비하면서 193명의 엄마-자녀 관계를 연구한 결과 “엄마는 자신이 받은 양육 태도와 비슷하게 아이를 양육한다”고 설명했다.
이보연 아동가족상담센터 이보연 소장도 “자신감이 없는 아이들을 살펴보면 엄마도 자아존중감이 결여된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과거엔 엄마에게 그런 성향이 있어도 아이는 다양한 환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형제자매나 사촌은 물론 동네 놀이터에만 가도 함께 놀 친구가 많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최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아파트단지로 이사한 주부 정재민(32) 씨는 “동네 엄마들과 사귀는 것도, 다섯 살 난 아이에게 같이 놀 친구를 만들어주는 것도 쉽지가 않다”고 털어놓았다.
“저희 어렸을 땐 동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물론 부모들도 쉽게 친구가 됐죠. 하지만 요즘은 다들 먼 곳으로 차를 태워 보내요. 어린이 교육시설도 다양해졌고요. 같은 곳에 다니는 아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죠. 그러니 동네 엄마들과 사귈 기회가 드물어요. 아이 스스로 친구를 사귈 여건이 안 되니 엄마가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줘야 하고, 그러려면 그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과 어울리며 오가야 하는데….”
정씨는 얼마 전 놀이터에서 여섯 살 아이를 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 뒤 연락처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좀더 친해지면 아이를 데리고 서로의 집을 방문할 예정이다. 정씨처럼 활달하고 사람들을 잘 사귀는 성격이라면 몰라도 내성적인 사람은 낯선 이와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같은 동네 사는 친구 구해요”
고립된 엄마, 그로 인해 더 고립되는 아이. 이런 증상은 다문화가정에서도 빈번하게 나타난다. 선우현 교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 중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고 또래집단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다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서만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영어유치원이나 DVD 교재 등을 통해 외국인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져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하진 않는다고 한다. 문제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 중 상당수가 타인과 관계 맺는 기술이 서툴다는 점.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상담해보면 심하게 위축돼 있거나, 아니면 아주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요. 사회성 지수도 정상아보다 한두 살 떨어집니다. 그 이면엔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엄마가 있어요. 엄마가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환경에 놓이다 보니 외출하거나 사람 만나는 걸 꺼리게 됐고, 그 결과 아이 역시 사회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거죠.”
이렇게 사회성이 결여된 엄마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보연 소장은 “남편의 도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건 물론 틈날 때마다 아내,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마련해야 한다. 아내가 사람 만나는 걸 꺼린다면 동물원이나 식물원 등 자연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곳으로 나들이를 가는 것도 방법이다.
엄마들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 아주대 의대 정신과 조선미 교수는 “낯설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려우면,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편하게 함께할 수 있는 친인척이나 친구들부터 만나라”고 조언했다. 또 “엄마가 육아에 매몰돼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것은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좋지 않다”며 “문화센터 프로그램을 수강하거나 취미활동, 운동 등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육아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하루 종일 아이만 키우며 집에 있다 보면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온라인 카페 등에는 ‘심하게 외출을 안 하다 보니 고립되는 것 같다’ ‘같은 동네 사는 또래친구를 구한다’는 내용의 글이 많이 올라온다. 온라인 활동뿐 아니라 오프라인 정기모임 등에 참석하는 것도 좋다.
사회적 지원 시스템도 필요하다. 독일에서는 초보 엄마들에게 양육 도우미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이때 아이들이 함께하면 좋은 놀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공간 등 육아에 필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특히 한 부모 가정이나 저소득층 가정 등 사회의 도움이 절실한 가정에게는 더 많은 혜택을 준다. 선우현 교수는 “우리 사회에도 대도시화, 핵가족화, 가족해체 등으로 물리적, 정서적으로 고립된 엄마가 늘고 있다”며 “과거엔 가족과 친인척, 이웃이 도우미 노릇을 했지만 이젠 사회가 그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