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여객기 A-380. ② 미국 노스롭그루만사의 무인 정찰헬기 파이어 스카우트. ③ 미국이 내놓은 무인 정찰기 글로벌 호크. ④ 이스라엘이 개발한 무인 정찰기 I-VIEW. ⑤ 미국의 KC-767A 공중 급유기. ⑥ EADS의 A-400M 공중 급유기. ⑦ 유럽에서 공동 개발한 아리안 우주발사체.
한국은 1996년 처음으로 서울에어쇼를 열어 10년도 안 된 에어쇼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서울에어쇼를 10년 안에 세계 10대 에어쇼로 발전시킨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어, 이를 달성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파리로 출발했다.
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비롯한 항공업체, 그리고 공군 요원들은 임무를 분담해 곳곳을 뒤졌다. 공군 요원은 먼저 파리에어쇼 운영본부를 방문해 파리에어쇼 운영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대회 수익금은 얼마나 되나?” “약 4500만 유로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60억원 정도다.
“에어쇼 대회 수익금 약 560억원”
여기에다 각종 계약을 통해 생기는 수익과 각국 참가자들이 쓰는 경비를 포함하면 엄청난 규모다. 계약 실적은 얼마나 되는지 물었지만 비밀이라면서 단호히 답변을 거부한다. 파리에어쇼의 최대 과제에 대한 질문에는 의외의 답변을 한다. “10년 후에도 계속 현재의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파리에어쇼에도 그림자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새롭게 선보일 아이템이 거의 없기 때문. 실제로 이번 에어쇼에도 에어버스사가 내놓은 A-380이 신제품으로 선보였을 뿐 새로운 것이 거의 없었다. 냉전 시절 파리에어쇼는 자유진영은 물론이고 공산주의 국가도 참가하는 유일한 자리였다. 당연히 각축이 치열했고 새롭게 선보이는 항공기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이 독점하는 시장에 유럽연합(EU) 국가들만 겨우 도전하는 양상이다.
그렇다면 서울에어쇼의 지향점은 자명해진다. 부품과 소재 분야, 그리고 지·해상(地·海上) 무기 체계 분야까지 아우르는 특색 있고 전문화된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T-50 모형을 전시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부스에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업체와 협회, 그리고 공군 요원들은 VIP 대접을 받았다. 쇄도하는 방문과 면담 요청을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렇게 위상이 높아진 이유는 우리가 만든 T-50 골든 이글 고등훈련기 때문. 여러 나라에서 온 엔진·레이더·전자장비 업체들이 자신들의 기술과 실적을 내세우며 협력업체로 참여하고자 했다. 거기다 대형사업인 KHP(한국형 헬기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보잉·아구스타·유로콥터 등 각국의 헬기 업체들도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손에 땀이 배는 곡예 비행 솜씨
현대자동차 계열의 랜딩기어 시스템 업체인 ‘위아(WIA)’의 성공 사례도 많은 주목을 끌었다. 위아는 T-50에 납품한 실적을 바탕으로 에어버스가 내놓은 세계 최대 여객기 A-380의 랜딩기 시스템에 참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 담당 부장은 행사 둘째 날 계약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귀국했다. “이제는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KAI는 파리에어쇼에 소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유는 10월에 열리는 서울에어쇼와 12월에 열리는 두바이에어쇼에 전력투구할 예정이기 때문이란다. 특히 아랍에미리트는 가장 유력한 T-50 구매 국가이기 때문에 두바이에어쇼에 올인(all-in)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KAI와 T-50에 대한 이곳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현지의 신문과 잡지는 T-50에 대해 기대와 질투를 동시에 표현했다. 현재까지 운영되거나 개발된 훈련기 중에는 T-50이 최초로 초음속 성능을 가졌기 때문이다.
파리에어쇼를 참관한 한국대표단(왼쪽에서 두 번째가 안정훈 준장).
행사 기간에는 매일 2시간 30분간에 걸쳐 20여종의 항공기와 헬기가 시범비행을 했다. 이들은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고난도 기동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의 자존심 라팔과 미라지, 러시아의 수호이, 미국의 F-16과 F-18, 유럽 4개국이 공동 개발한 유러파이터 등은 미사일만 발사하지 않았다 뿐이지 공중전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격렬한 개인기를 선보였다.
아마 일반 조종사가 그런 식의 비행을 했다면 당장 위규(違規) 비행이나 불(不)군기 비행으로 처벌받기 십상일 것이다. 조용히 날아가다 갑작스럽게 애프터버너(afterburner·재연소 장치)를 터뜨려 고막이 찢길 듯한 폭음을 내며 하늘을 누비는 모습은 에어쇼의 진수 자체였다.
이에 질세라 여객기와 수송기도 저고도로 비행하다 좁은 공역에서 급하게 기동하는 걸 보여주었다. 그 큰 덩치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손에 땀이 밸 정도였다. A-380은 럭셔리한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인지 알바트로스(신천옹)를 연상케 하는 우아한 모습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비행했다.
정부 의지 먹고 크는 항공산업
헬기는 뒤로 날아가는 묘기를 보이다 뒤집기와 급회전하는 묘기도 보여주었다. 조종사들은 자신의 명예를 걸고 심하다 싶은 묘기도 주저 없이 보여주었다. 에어쇼 시간에는 모든 관객의 눈이 하늘을 향하고 있어 에어쇼 장을 오가는 차량의 운전자들은 곤란을 겪어야 했다.
이번 에어쇼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지상 최대의 여객기인 A-380이었다. 보잉의 787 드림 라이너는 4~5년 후에야 선보일 예정이어서 당분간 A-380에 맞설 기종은 없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데뷔탕(Debutant·데뷔) 행사에 참석하여 A-380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미국은 이에 자극받아 보잉 747-400 화물기와 777-200LR(LONG RANGE) 월드 라이너(World Liner), 그리고 새 급유기인 KC-767A를 내놓았다. 보잉은 이탈리아 공군을 위해 제작한 KC-767A는 우리 공군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EADS 그룹의 에어버스 밀리터리사는 A-400을 개조한 A-400M 급유기를 내놓았는데, 이 급유기는 붐 방식과 드래그 방식이 모두 가능해 유럽제 항공기는 물론이고 미국제 군용기를 운용하는 국가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시장 규모가 큰 붐 방식 급유기 시장을 지배해오던 미국의 시대는 끝나가는 것이다.
이번 에어쇼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무인기(UAV) 분야였다. 미국이 개발한 글로벌 호크가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유로호크와 이스라엘이 추격하는 양상이었다. 우리나라는 중고도 무인 정찰기를 자체 개발하기로 했고, 고고도 무인 정찰기는 해외 도입 소요를 제기해놓은 상태다.
글로벌 호크 부스를 찾아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답변이 시큰둥했다. 알고 보니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의 통제 품목이어서 어차피 한국에는 판매할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은 살 수 있지만, 한국은 살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의 이글아이-1은 개발 완료 단계이고, 고고도용 이글아이-2는 4년 정도 있어야 개발이 끝난다고 한다. 유로콥터사는 무인헬기 HEL-UAV를 내놓았다.
대회 중간인 6월15일, 맑기만 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소나기가 내렸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전시장을 누비던 관람객들에게 잠시 숨을 돌리며 차분히 각자의 현실을 생각해보라고 비가 내린 것 같았다.
항공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이지만 국가에서 관심을 갖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만 성장할 수 있는 분야다. 지금 미국과 EU는 서로를 불공정 무역 국가라며 WTO에 제소해놓고 있다. 국가에서 과다한 지원을 해주고 있다고 해서 제재를 요구한 것이다. 그만큼 항공산업은 정부의 의지와 몫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도 IT(정보기술) 산업에 지원하는 수준만큼 항공산업을 지원한다면 머지않아 항공 강국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