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7일 2시간 30분 동안 정동영 장관(왼쪽)과 대담함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빠르면 7월 중에도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과 면담이 끝난 뒤 김 위원장은 6·15회담을 이끌어낸 임동원 전 국정원장(오른쪽) 등과 함께 점심을 했다.
94년 6월15일부터 18일까지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카터 전 대통령은 1차 북핵 위기를 풀어가는 미-북 회담을 여는 실마리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꼭 11년 뒤인 올해 6월14일부터 17일 사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서 “한반도 비핵화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북한은 빠르면 7월 중에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말을 이끌어낸 정동영 장관은 제2의 카터가 될 것인가.
1차 북핵 위기 때도 미국에서는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보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해 6월18일 판문점을 거쳐 서울에 온 카터는 기자회견에서 “내 제안에 김일성 주석은 합리적으로 반응했다. 김 주석이 합리적이라는 것은 미래의 실천을 보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는 지성적이고 활발하며 복잡한 이슈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솔직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미국과 북한은 그해 10월 타결된 제네바합의를 향한 양자회담에 돌입했다.
6월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민족통일대회 개막식.
지난 6월17일 저녁 9시30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동영 장관은 “김 위원장은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 체제 안전만 보장되면 핵을 가질 필요가 없다.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비롯해 모든 것을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미국과 더 협의해봐야겠다. …부시 대통령 각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카터의 중재로 해법을 찾았던 1차 북핵 위기는 2002년 무참히 깨지고, 2차 북핵 위기로 발전했다. 정 장관의 보고를 들으면서도 많은 국민이 환호하지 못하는 까닭은 또다시 북한에 속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염려에도 김 위원장은 “미국과 더 이야기해봐야겠다”고 밝혔으니 조만간 6자회담이 열릴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것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고 한 김 위원장의 진의(眞意)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대해 먼저 핵을 포기하면 다자 안전보장 조치를 해주고 경제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북한은 먼저 북한 체제를 인정해줘야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6월10일 열린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먼저 북핵 문제를 해결한 뒤 북한에 대해 다자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을 해주기로 합의했다.
아무튼 정 장관과 김 위원장 만남이 성사됨으로써 2차 북핵 위기는 대치를 계속해오던 1라운드를 끝내고 본격적인 입씨름을 벌이는 2라운드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이러한 북한에 대해 어떤 작전을 펼칠 것인가.
한미정상회담 사흘 뒤인 6월13일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함남 요덕에 있는 정치범수용소를 탈출해 한국에 온 뒤, ‘평양의 수족관’이란 제목의 수기를 쓴 탈북자 강철환(37·조선일보 기자) 씨를 만났다.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 이어 강 씨를 만난 것은 북한에 핵 문제와 더불어 인권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핵과 인권 문제로 압박을 가하는 미국, 이에 대해 북한은 ‘선체제 보장 후 핵 포기’를 외치며 맞설 가능성이 높다.
13일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탈출한 뒤 ‘평양의 어항’이라는 수기를 쓴 강철환 씨를 만나는 부시 미국 대통령.
6월14일 평양에서 열기로 한 6·15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정 장관을 비롯한 정부 대표단이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하려고 했을 때 평양의 순안비행장에도 뇌성벽력과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그로 인해 인천공항을 출발하려던 비행기의 출발이 늦어졌다. 공교롭게도 우리 대표단이 방문하려고 할 때 평양과 워싱턴의 하늘은 무섭게 울부짖은 것이다.
한국의 꿈은 남북문제를 미국이 아닌 우리 주도로 해결하는 것이다. 교묘한 화술을 펼치며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과 북한을 잡아끌어 우리가 원하는 통일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2005년 6월의 한반도 기상은 여전히 ‘흐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