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2일 밤, 미 정보기관 CIA는 가장 잡고 싶었던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가 그들 가운데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미국이 500만 달러 현상금을 걸어놓은 ‘일리아스 카슈미리’였다. 파키스탄 특수부대 출신인 그는 빈 라덴의 테러 계획을 실행하도록 만드는 ‘알카에다의 야전지휘관’으로 통했다.
사살 명령이 떨어지자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파일럿은 미사일에 목표를 로크온(lock on)시켰다. 무인기는 파키스탄에 떠 있지만, 파일럿은 지구 반대편 네바다 주 크리치 공군기지(Creech AFB)에서 원격 조종하며 작전을 수행한다. 파일럿이 컴퓨터와 연결된 조종간의 발사버튼을 누르자 무인기 리퍼에서 점화된 헬파이어 미사일이 연이어 발사됐다.
6월 4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빈 라덴이 사살된 후, 그의 후계자로 떠오르던 카슈미리가 무인기의 공습으로 부하 8명과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미 공군의 공격용 무인항공기는 MQ-1 프레데터(Predator)와 개량형인 MQ-9 리퍼가 주력이다. 프레데터는 적외선 감지장치와 카메라, 레이더를 장착한 정찰기로 개발한 것이지만 미사일을 탑재해 무인공격기로 운용한다. 무인기는 미 공군 11정찰대와 15정찰대가 운용하나, 모든 작전은 CIA가 담당한다.
‘테러 네트워크’ 무장시킨 것은 미국
CIA는 무인항공기 리퍼를 이용해 2011년 6월 2일 밤,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 일리아스 카슈미리(사진)를 사살했다.
CIA는 무자헤딘을 돕기 위해 비밀공작 팀을 파견했고, 1981년부터 84년까지 집중적으로 지원하며 매년 CIA 연간 비밀공작 예산의 80%인 7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그 무렵 무자헤딘은 CIA에서 최신형 휴대용 미사일 스팅어(Stinger)를 공급받아 소련군 무장 헬리콥터를 격추시키기 시작했다. 스팅어는 어깨에 올려놓고 발사하는 견착식 열 추적 미사일이다. 무자헤딘은 스팅어로 Mi-8, Mi-24 등 소련 전투용 헬기를 800대 격추시켰고, 이 때문에 종군기자들은 아프간을 ‘헬리콥터의 무덤’이라 불렀다.
CIA는 50억 달러 이상의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며 소련군이 더 많은 피를 흘리도록 만들었다. 소련은 10년간 긴 전쟁의 늪에 빠져 병력과 장비를 끝없이 소모했으며 국가 이미지에도 깊은 상처를 입었다. 결국 붉은 군대가 빠져나갈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1989년 2월 15일, 마지막 병력이 철수하며 소비에트 연방의 야심은 아프간의 모래밭에서 무산됐다.
무자헤딘을 무장시킨 건 CIA였으나 소련군이 축출되자 그들은 미국에 등을 돌렸다. 빈 라덴과 극단적 이슬람 선동가들이 모집해 훈련시킨 국제적인 조직은 알카에다로 변신했고, ‘또 다른 제국’인 미국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빈 라덴은 밀매된 중국산 AK 소총 등의 무기와 자금으로 무자헤딘을 지원하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엄청난 재산가였다. 1991년 중동에서 걸프전이 시작되자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간 그는 “미국인을 죽여야 한다”며 전 세계 무슬림을 선동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추방당한 빈 라덴은 수단에 정착한 뒤 벤처기업을 세우고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해 도로를 건설하는 한편, 알카에다의 핵심 인물들을 모아 훈련캠프를 설치했다.
빈 라덴은 아프간에서 포획한 전차를 몰아 소련군 포로들을 깔아죽일 만큼 폭력적이었고, 그를 지배한 사고의 핵심은 죽음이었다. 미국은 이슬람 문명을 파멸로 몰아간다고 확신해 미국인은 살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빈 라덴은 여인들에게 순교를 위해 자식들을 바치라고 촉구하는 것은 물론, 자살폭탄은 진정한 순교라며 끊임없이 자살폭탄 테러를 부추겼다.
국제적 네트워크로 연계된 알카에다는 해외에 테러 기획본부와 전사를 모으는 모집 본부, 재무 전담 본부를 뒀다. 알카에다의 목표는 오직 한 가지, 이슬람 세계의 영광을 위해 전 세계적 전쟁인 성전(Jihad)을 벌이는 것이다.
유럽 동남부 발칸 지역인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등 알카에다 활동 중심지에는 정보본부와 모금조직, 훈련캠프가 있다. 모금조직은 전 세계 부유한 무슬림과 석유재벌에게서 막대한 기부금을 받아낸다. 이들은 기부금으로 모든 자금을 충당하며, 미국 첨단기술 회사들의 주식에도 투자한다. 미 재무성은 투자금액을 최소 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한다. 유럽에는 무수한 알카에다 지지 세력이 있는데 프랑스 정보기관은 2005년 보고서에서 3만5000명 이상의 세력이 자국에 있다고 추정했다.
CIA는 빈 라덴의 존재를 아프간에서 알았으나 추적을 시작한 건 수단에서였다. 당시 CIA 수단 지부장이던 카퍼 블랙은 그의 행적을 뒤쫓았지만 제거하지 않았다. 빈 라덴은 1996년 아프간으로 근거지를 옮겼고, 1998년 2월 무슬림에게 “미국인을 죽이라는 신의 명령을 수행하라”고 요구했다. 그의 공개적 지시에 따라 미국인을 목표로 알카에다의 첫 번째 테러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했다.
“빈 라덴 백번 죽일 수 있었는데…”
1997년부터 핵탄두 제작 기술을 북한에 보낸 파키스탄 핵물리학자 칸 박사.
CIA 국장 조지 테닛과 클린턴 행정부의 안보담당팀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가 그곳에 있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두 주일이나 시간을 끌었다. 마침내 8월 20일 공격을 승인하자, 아라비아 해역에 떠 있던 미 해군 전함이 미사일을 연속 발사했다. 크루즈 미사일은 입력된 지도와 실제 지형지물을 대조해가며 날아가 목표물을 거의 정확하게 공격한다. 이때도 미사일은 목표지점을 타격했으나 빈 라덴이 그곳을 떠난 다음이라 죄 없는 현지 주민 20여 명만 목숨을 잃었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12월, CIA 파키스탄 지부장 게리 슈런은 아프간 요원이 보낸
1급 정보를 받았다. ‘빈 라덴이 칸다하르로 가는 12월 20일, 지역 유지의 집에서 숙박할 예정이다.’
정보를 확인한 슈런은 버지니아 주 랭리의 CIA 본부로 긴급전문을 보냈다. ‘오늘 밤에 쳐야 한다.’
해군사관학교 출신인 슈런은 아프간 지역 전문가이며 고급간부였다. 그러나 8월의 폭격 실패로 몸을 사리던 테닛 국장은 ‘기다리라’는 지시를 내렸고 공격은 무산됐다.
이 사건을 두고, 국가안보와 비밀공작에 관한 최고의 저널리스트이자 ‘뉴욕타임스’ 기자인 팀 와이너는 자신의 저서 ‘잿더미의 유산(Legacy of Ashes)’에서 이렇게 썼다. “테닛은 빈 라덴의 제거를 원했으나 혹시나 하는 의심이 더 컸다. 용기보다 조심이 앞섰던 것이다. 미국은 빈 라덴을 아프간에서 죽일 능력이 있었지만, 늘 결정적인 순간에 주춤거리고 말았다.”
아프간의 CIA 비밀팀은 이듬해 1999년에도 그의 행적을 추적하며 모든 동태를 슈런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테닛 국장은 공격적인 일은 벌이지 않으려 했고, 클린턴 대통령 역시 정치적 결정 앞에서 뒷걸음치느라 끝내 빈 라덴을 제거하지 않았다. 아프간에서 CIA 준군사조직인 블루 배저(Blue Badger)로 활동했던 요원들은 나중에 이렇게 증언했다. “우린 빈 라덴을 백번도 죽일 수 있었고, 10센트짜리 총알 몇 개로도 충분했다.”
빈 라덴이 2001년 민간인을 상대로 9·11 테러를 벌인 이후,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미국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적은 누구든 제거하기로 결정했고, 부시는 치명적인 무력 사용을 허가하며 적을 기꺼이 죽이기로 방침을 바꿨다.
부시 대통령은 CIA 대테러센터 소장 카퍼 블랙을 호출해 ‘빈 라덴의 목을 가져오라’고 요구했을 만큼 그가 죽기를 원했다. 행정부가 바뀌었는데도 국장으로 연임된 테닛은 부시에게 빈 라덴을 제거할 권한을 확대해줄 것을 요구했고, 이틀 후 부시는 기밀명령서에 서명해 CIA로 보냈다. ‘비밀 팀을 구성해 필요하다면 외교적 관례 또는 국제법을 무시하고, 체포하거나 죽이기 위한 작전을 실시해도 좋다.’
테닛은 CIA에서 퇴임한 후 2007년에 쓴 회고록에서 “우리는 CIA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많은 권한을 요청했고, 획득했다”고 당시를 기록했다.
CIA가 작성하고 국장 승인을 거쳐 최고위층에게만 보내는 1급 기밀문서가 ‘NIE’로 통하는 국가정보평가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다. 2002년 6월, CIA는 부시에게 인편으로 NIE를 전달했다. 그 내용은 파키스탄 핵물리학자 칸 박사가 1997년부터 핵탄두 설계기술과 모든 자료, 그리고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고속 원심분리기의 원형까지 북한에 보냈다는 것이다.
기동부대 가동 폭격 주도
원심분리기는 ‘페더럴 익스프레스’ 같은 택배회사를 통해 보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며, 이런 일은 파키스탄 군부와 정보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파키스탄이 핵무기 제조기술을 북한에 판매한 것은 충격적이었으나 부시 행정부는 아무런 제재도 하지 않았다. 부시는 압력을 행사하지 않는 대가로 빈 라덴을 추적하는 일에 파키스탄이 협력해주길 기대했던 것이다.
2002년 무렵, CIA는 빈 라덴이 파키스탄 북부 힌두쿠시 산맥의 은신처에 숨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길도 없는 험악한 지형이라 접근이 힘든 지역이었다. CIA는 파키스탄 국경지대에 주둔하던 비밀부대를 동원했다. CIA 블루 배저 요원과 특수부대원으로 조직된 기동부대가 국경을 넘어 수색작전을 전개했으나 파키스탄 정부의 항의는 없었다. 미군이 허가도 없이 파키스탄에서 작전을 벌였음에도 무샤라프 대통령은 모른 척하고 눈감아주었다. 미국은 빈 라덴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특히 부시는 빈 라덴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허가해줄 정도로 그의 추적에 집착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시모어 허시는 이렇게 평가했다. “한마디로 거래였다. 무샤라프에게 칸 박사의 처리를 강요하지 않는 대신, 미군이 파키스탄 내륙까지 들어가게 해준 것이다.”
부시는 빈 라덴의 목을 간절히 원했지만, 이런 노력에도 두 번의 임기를 마치도록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어놓았던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 주범인 파줄 압둘라 모하메드는 6월 7일 소말리아에서 사살됐다. CIA의 집요한 추적을 따돌리며 13년을 도주했으나, 차를 몰고 가다 정지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정부군 경비초소 병사가 쏜 총알 몇 발에 끝장이 났다. 현상금은 경비초소 병사가 받을지 알 수 없지만, FBI 지명수배 명단에서 주요 수배자 한 명이 줄어든 건 분명하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최전선에 선 CIA는 기동부대를 가동해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고 무인공격기로 알카에다 간부를 제거하며 근거지를 폭격해왔다. 예멘 아덴 항구에서 폭탄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 간부 ‘카에드 살림 모하레티’를 미사일로 날려 보낸 것도 CIA다. 그는 2000년 가을, 아덴 항에서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 콜(USS Cole)을 폭탄테러 한 주범이다.
테러리즘은 현실이 됐고 테러의 안전지대는 없다는 것이 ‘9·11’을 통해 증명됐다. 정보기관이 정보력에서 실패하면 무고한 민간인과 병사가 목숨을 잃게 된다. 미군 정예부대 82공수와 101공수사단을 지휘했고, 9월부터 CIA를 이끌게 될 미 육군 대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정보가 없다면 군사작전은 재앙 속에 파묻히고 만다.”
CIA는 국제적 테러 네트워크에 대처하는 미국 방호의 주력이다. 냉전(Cold War)이 종식된 이후 미국의 새로운 전쟁은 알카에다에 의해 시작됐다. 그들을 저지하고 궤멸시킬 때까지 이어질 전쟁은 CIA의 정보력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