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어두운 캐나다 토론토 외곽도로. 인적 드문 그곳 매서운 바람 속에 한 젊은이가 공중전화를 붙들고 주문한 피아노가 도착하지 않는다며 항의한다. 하지만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말과 잘못 걸렸다는 대답만 공허하게 들린다. 청년은 방으로 돌아와 키보드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이를 지켜보는 카메라는 미약하게 떨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를 놓칠세라 “준일! 늦었는데 그만 좀 해”라는 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온다. 다음 날 아침 절망한 젊은이는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선다.
길에서의 첫 장면은, 바람 탓일까, 핸드핼스로 촬영한 첫 장면이 크게 떨린다. 이는 등장하는 젊은이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도 불안하게 만든다. 따스한 방에 들어와서도 카메라의 미약한 흔들림은 멈추지 않고, 이윽고 옆방에서의 항의와 함께 젊은이는 물론 관객도 절망에 빠진다.
서울의 어느 클럽. 인기가수 세션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헌일은 연주하는 동안 표정 관리조차 제대로 못한다. 준일과 우연히 협주 기회를 가진 현재는 그를 쫓아가 함께 연주한 기쁨을 인사로 전한다. 그리고 지하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세 사람. 하지만 이들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이다.
그리고 일 년 후. 준일은 자신이 쓴 곡을 가수와 소속사 대표가 맘대로 손보려 하자 괴로워하고, 때맞춰 찾아온 여자 친구 수현은 준일에게 해외 인턴십에 합격해 네덜란드로 떠난다고 말한다. 속내를 보일 듯 말듯 준일은 자신을 잡아달라는 여자 친구에게 “오늘은 그냥 혼자 있어”라며 한마디만 건넨다. 준일은 다음 날 소속사 대표에게 자신만의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독립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홀로 노래를 부르는 준일의 마음은 수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화보 모델로 생활을 이어가지만 언제나 음악의 끈을 놓지 않는 현재. 그는 작은 카페에서 즐겁게 재즈를 연주하는 드러머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입구에서 준일에게 밴드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는다. 준일이 건네준 CD를 들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삼청동 길을 시원하게 달려온 현재는 준일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헌일도 준일에게서 밴드를 하자는 제안과 함께 CD를 건네받는다. 차에서 음악을 들어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 대신 선배 작업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여인만이 눈에 선명하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교회를 찾지만 그곳에서도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급히 도와달라는 선배의 전화를 받고 찾아간 곳에서 전에 우연히 마주쳤던 여인 은채를 다시 만난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은채는 방학이면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님 전시 준비를 돕는다. 이번 전시의 오디오 시설을 계약하기 위해 찾은 사무실에서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전시장에 오디오 설치를 도와주기 위해 온 그 남자 헌일을 만난다. 오디오 시설을 다 마치고, 아직 사운드를 입히지 않았던 은채의 작품에 헌일의 연주와 노래를 입혀본다. 자그마한 사랑의 설렘이 조금씩 일기 시작한다.
음악영화 ‘원스’의 흥행으로 잘 알려진 밴드 스웰시즌의 2009년 내한공연(세종문화회관)에 이름 없는 인디밴드가 무대에 서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날 공연 전 로비에서 버스킹(busking·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공연)을 벌이던 인디밴드를 본 글렌 한사드는 그들에게 즉석에서 공연을 제안했고, 그들이 무대에 올랐던 것이다.
키보드와 보컬 담당 정준일, 기타와 보컬 임헌일, 그리고 드럼의 이현재로 구성된 3인조 인디밴드 ‘메이트’는 2008년 결성됐다. 이들이 결성되고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르게 된 이야기를 남다정 감독은 음악을 찾아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과 함께 멤버를 그대로 출연시켜 영화로 만들어냈다.
이 영화에는 젊음이 담겨 있다. 강한 자의식으로 타협하려 들지 않는 요즘 젊은이. 그만두겠다는 준일의 말에 소속사 대표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다는 거, 그건 당연한 거야. 창작하는 사람이 어디까지 주장하고, 어디서 물러서야 하는지 개념들이 없어서 그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젊음은 도전이지 않은가. 결국 그는 독립을 선언한다. 남의 공연에서 세션을 하던 헌일도 자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힘든 독립을 선택한다. 그리고 젊음의 패기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만의 밴드를 결성한다.
이 영화에는 새롭게 떠오르는 젊음과 문화의 성지가 등장한다. 이 시대 청년 문화와 인디음악의 성지는 아직 홍대 인근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새로운 문화 아이콘 삼청동, 미디어 성지로 발돋움하는 상암동이 등장한다. 현재의 오토바이가 시원스레 달리는 곳은 삼청동 길. 머잖아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설 옛 기무사 앞길을 달리고, 헌일과 은채는 삼청동 길을 걸으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준일의 생활공간이자 수현의 이별 장소는 상암동 디지털단지다. 깔끔하고 잘 정리된 인스턴트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어찌 보면 살벌한 곳이다. 음악에 대한 정체성, 떠나는 연인을 잡지 못하는 고통이 가득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한 창작 공간이기도 하다. 상암동 디지털단지의 모습을 그렇게 드라이하게 스크린에 담아놓았다.
이 영화에는 실제 존재하는 밴드의 스토리와 허구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섞여 있다. 무엇이 실제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구별할 필요는 없다. 허구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실제 같은 허구의 사랑이 영화 속에 펼쳐진다.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지 따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감독은 밴드 ‘메이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실제 인물을 직접 출연시켜 영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했지만, 아마추어인 이들의 연기는 몰입을 방해한다. 또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중간중간 장치한 감독의 작위적 묘사가 오히려 흐름을 끊는 면도 있다. 식당에서 “이모님인 줄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를 만들면서 무척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헛웃음만 지을 뿐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시간 흐름이 마구 뒤섞인 것도 눈에 거슬린다. 연주를 마친 헌일의 동선을 보면 카페-선배 작업실-교회-전시장 및 삼청동-국도가 차례로 등장한다. 하지만 저녁과 낮, 그리고 저녁으로 느닷없이 시간이 마구 건너뛴다. 음악적으로 이해하면 될 거라는 감독의 언급이 있지만 좀 더 치밀하게 묘사하는 친절함이 아쉽다.
이 영화에 담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젊음과 음악이고 이를 통한 성장이다. 영화를 위해 ‘메이트’의 손으로 마련한 아홉 곡의 새 음악을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젊음의 비장함, 술, 폭력, 약물 등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고통이 배제돼 더욱 좋다.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젊은이의 고뇌, 희망, 열정, 그리고 사랑이 담겼기에 이 영화는 재미있다. 젊음, 한 번 지나가버리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기에 그들이 부럽고, 아름답다.
길에서의 첫 장면은, 바람 탓일까, 핸드핼스로 촬영한 첫 장면이 크게 떨린다. 이는 등장하는 젊은이도, 이를 지켜보는 관객도 불안하게 만든다. 따스한 방에 들어와서도 카메라의 미약한 흔들림은 멈추지 않고, 이윽고 옆방에서의 항의와 함께 젊은이는 물론 관객도 절망에 빠진다.
서울의 어느 클럽. 인기가수 세션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헌일은 연주하는 동안 표정 관리조차 제대로 못한다. 준일과 우연히 협주 기회를 가진 현재는 그를 쫓아가 함께 연주한 기쁨을 인사로 전한다. 그리고 지하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세 사람. 하지만 이들은 아무 관계도 없는 사이다.
그리고 일 년 후. 준일은 자신이 쓴 곡을 가수와 소속사 대표가 맘대로 손보려 하자 괴로워하고, 때맞춰 찾아온 여자 친구 수현은 준일에게 해외 인턴십에 합격해 네덜란드로 떠난다고 말한다. 속내를 보일 듯 말듯 준일은 자신을 잡아달라는 여자 친구에게 “오늘은 그냥 혼자 있어”라며 한마디만 건넨다. 준일은 다음 날 소속사 대표에게 자신만의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독립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홀로 노래를 부르는 준일의 마음은 수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화보 모델로 생활을 이어가지만 언제나 음악의 끈을 놓지 않는 현재. 그는 작은 카페에서 즐겁게 재즈를 연주하는 드러머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 입구에서 준일에게 밴드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는다. 준일이 건네준 CD를 들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삼청동 길을 시원하게 달려온 현재는 준일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는 헌일도 준일에게서 밴드를 하자는 제안과 함께 CD를 건네받는다. 차에서 음악을 들어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 대신 선배 작업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여인만이 눈에 선명하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교회를 찾지만 그곳에서도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급히 도와달라는 선배의 전화를 받고 찾아간 곳에서 전에 우연히 마주쳤던 여인 은채를 다시 만난다.
영국에서 공부하는 은채는 방학이면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님 전시 준비를 돕는다. 이번 전시의 오디오 시설을 계약하기 위해 찾은 사무실에서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전시장에 오디오 설치를 도와주기 위해 온 그 남자 헌일을 만난다. 오디오 시설을 다 마치고, 아직 사운드를 입히지 않았던 은채의 작품에 헌일의 연주와 노래를 입혀본다. 자그마한 사랑의 설렘이 조금씩 일기 시작한다.
음악영화 ‘원스’의 흥행으로 잘 알려진 밴드 스웰시즌의 2009년 내한공연(세종문화회관)에 이름 없는 인디밴드가 무대에 서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날 공연 전 로비에서 버스킹(busking·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관객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공연)을 벌이던 인디밴드를 본 글렌 한사드는 그들에게 즉석에서 공연을 제안했고, 그들이 무대에 올랐던 것이다.
키보드와 보컬 담당 정준일, 기타와 보컬 임헌일, 그리고 드럼의 이현재로 구성된 3인조 인디밴드 ‘메이트’는 2008년 결성됐다. 이들이 결성되고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르게 된 이야기를 남다정 감독은 음악을 찾아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과 함께 멤버를 그대로 출연시켜 영화로 만들어냈다.
이 영화에는 젊음이 담겨 있다. 강한 자의식으로 타협하려 들지 않는 요즘 젊은이. 그만두겠다는 준일의 말에 소속사 대표는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다는 거, 그건 당연한 거야. 창작하는 사람이 어디까지 주장하고, 어디서 물러서야 하는지 개념들이 없어서 그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젊음은 도전이지 않은가. 결국 그는 독립을 선언한다. 남의 공연에서 세션을 하던 헌일도 자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힘든 독립을 선택한다. 그리고 젊음의 패기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만의 밴드를 결성한다.
이 영화에는 새롭게 떠오르는 젊음과 문화의 성지가 등장한다. 이 시대 청년 문화와 인디음악의 성지는 아직 홍대 인근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새로운 문화 아이콘 삼청동, 미디어 성지로 발돋움하는 상암동이 등장한다. 현재의 오토바이가 시원스레 달리는 곳은 삼청동 길. 머잖아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설 옛 기무사 앞길을 달리고, 헌일과 은채는 삼청동 길을 걸으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준일의 생활공간이자 수현의 이별 장소는 상암동 디지털단지다. 깔끔하고 잘 정리된 인스턴트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어찌 보면 살벌한 곳이다. 음악에 대한 정체성, 떠나는 연인을 잡지 못하는 고통이 가득하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한 창작 공간이기도 하다. 상암동 디지털단지의 모습을 그렇게 드라이하게 스크린에 담아놓았다.
이 영화에는 실제 존재하는 밴드의 스토리와 허구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섞여 있다. 무엇이 실제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구별할 필요는 없다. 허구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고, 실제 같은 허구의 사랑이 영화 속에 펼쳐진다.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지 따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감독은 밴드 ‘메이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실제 인물을 직접 출연시켜 영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 했지만, 아마추어인 이들의 연기는 몰입을 방해한다. 또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중간중간 장치한 감독의 작위적 묘사가 오히려 흐름을 끊는 면도 있다. 식당에서 “이모님인 줄 몰랐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를 만들면서 무척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은 헛웃음만 지을 뿐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시간 흐름이 마구 뒤섞인 것도 눈에 거슬린다. 연주를 마친 헌일의 동선을 보면 카페-선배 작업실-교회-전시장 및 삼청동-국도가 차례로 등장한다. 하지만 저녁과 낮, 그리고 저녁으로 느닷없이 시간이 마구 건너뛴다. 음악적으로 이해하면 될 거라는 감독의 언급이 있지만 좀 더 치밀하게 묘사하는 친절함이 아쉽다.
이 영화에 담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젊음과 음악이고 이를 통한 성장이다. 영화를 위해 ‘메이트’의 손으로 마련한 아홉 곡의 새 음악을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젊음의 비장함, 술, 폭력, 약물 등 자극적이고 통속적인 고통이 배제돼 더욱 좋다.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젊은이의 고뇌, 희망, 열정, 그리고 사랑이 담겼기에 이 영화는 재미있다. 젊음, 한 번 지나가버리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기에 그들이 부럽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