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B> 혼자 짓기는 온전히 자신과 만나는 과정이다.
조지에게는 이혼한 아내와 함께 사는 사춘기 아들 샘이 있다. 이 아들은 부모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반항아. 약물중독에 성매매까지 구렁텅이에서 헤어날 줄 모른다. 마침 여름방학이 되자, 조지는 강제로 아들을 데리고 집을 짓기 시작한다.
부자가 맨 처음 한 일은 낡은 집을 허무는 것. 이 집은 조지의 아버지가 지은 것으로, 성장기의 조지에게 아버지는 자존감을 박탈하는 억압의 상징이었다. 조지는 말한다. “아버지는 늘 아들인 나와 게임을 했고, 그 게임은 나를 당신보다 작게 만드는 거였다”고.
낡은 집을 허물며 아버지와 아들은 엉망이 된 자기네 삶도 허문다. 그리고 새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얹으며 차츰 삶을 바꿔나간다. 이들 부자가 집 짓는 곳은 새로운 에너지가 모이는 현장이라고 할까. 이혼했던 아내도 샘 친구도 가세하고, 나중에는 휴가를 내고 찾아온 옛 직장 동료들도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조지는 이혼한 아내와 처음으로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고, 아들 샘과는 믿음을 되찾는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이 오고 갔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온 건 ‘치유’였다. 집짓기가 한 인간을, 특히 남자를 얼마나 사람답게 할 수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불안하고 절망적이며 위태롭기만 한 눈빛이던 샘은, 집이 완공되면서 점차 건강한 눈빛과 밝은 웃음을 되찾는다. 집짓기 과정을 통해 불안감을 걷어내고, 흔들리던 자신을 바로 세웠던 나의 경험이 주마등처럼 겹친다.
한 인간, 한 남자를 치유하는 과정
그전까지 한 번도 집을 지어본 적이 없는 남자라도 시골에 살다 보면 이러저러한 집을 짓게 된다. 자그마한 짐승우리부터 간단한 창고까지. 나 역시 경험도 없고, 손재주도 부족하지만 삶에 필요하니까 톱질도 망치질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생겨 우리 식구가 살 집도 지어볼 엄두를 낸다.
물론 남자라고 꼭 집을 지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낡고 허름한 시골 빈집을 고쳐 살아도 된다. 아니면 형편껏 건축업자에게 돈 주고 맡길 수도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손수 지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걸 느낀다. 몸이 근질근질하고, 때로는 잠이 오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과정이란 바로 자신을 바르게 하기 위한 치유의 순간들이었다. 뒤틀린 자신을 바로 할 게 얼마나 많은가. 돈 때문에 받는 억압이나 불안감도 치유가 필요한 부분. 이를 벗어나는 여러 실험 중 하나가 뒷간을 짓되, 돈 들이지 않고 손수 지어보자는 거였다. 삶이 자연스럽다면 굳이 돈에 휘둘리지 않아도 되리라는 믿음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B>2</B> 허름한 곡간이지만 내 몸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곳. <B>3</B> 뒷간, 나 자신을 실험해본 첫 무대. 지붕은 나중에 돈을 들여 바꿨다. <B>4</B> 아래채를 손수 지으면서 흙으로 벽을 채웠다.
서툴기 짝이 없지만 도 닦듯이 혼자서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한마디로 도(道) 닦는 모습이었다. 어느 순간 집을 꼭 여럿이 우르르 지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연에서는 혼자 집을 짓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가. 나 자신도 자연의 일부이니 어디 한번 부딪쳐보자 싶었다. 궁금했다. 혼자 지을 때 부딪치는 문제는 무엇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소득은 무엇일까. 심지어 아내나 아이들에게도 나를 도와주지 말라고 하면서 혼자서 짓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니 어려움이 속속 드러났다. 둘이서만 해도 겪지 않을 어려움을 단단히 겪었다. 기둥을 주추 위에 세우는 일부터 만만한 게 아니었다. 믿을 거라고는 나 자신과 바로 앞에 놓인 기둥뿐. 그러니 기둥과 거의 대화하는 마음으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게 해나가다 부딪친 가장 큰 어려움은 기둥 여섯 개를 주추 위에 세운 다음,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B>5</B> 영화 ‘라이프 애즈 어 하우스(Life as a house)’의 한 장면.
두 손과 두 발은 물론 온몸 구석구석이 다 깨어나는 듯 예민해졌다. 이렇게 하면 둘이 하는 것에 견줘 시간도 몇 배는 더 걸린다. 그 대신에 순간순간 자신과 만난다. 그만큼 자신감도 커진다. 다 짓고 나니,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된 듯 뿌듯했다.
이렇게 지은 곡간, 아마추어 작품이니 전문가가 볼 때는 서툴기 짝이 없지만 그런대로 작은 집이 되었다. ‘곡간이 바로 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내 몸과 마음,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긴 곳. 이곳에다 철 따라 곡식을 들이고 또 꺼내다 보면 혼자 짓던 기억이 이따금 스친다.
그러다 이번 영화를 보면서 내가 겪은 지난 영상이 한꺼번에 오버랩된 것이다. 다만 조지와 다른 점이라면 나의 경우는 막다른 선택이 아닌 열린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나 자신을 더 치유하는 또 다른 집짓기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