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 상황은 딴판. 모아둔 돈도 없고 빚도 없는 ‘똔똔’의 처지라면 마음이나마 편할 텐데, 언제부턴가 내 재정 상황은 마이너스 계곡 아래로 추락하더니 좀처럼 올라올 줄 모른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다 보니 매달 신용카드 결제내역이 월급 절반을 넘어서는 건 월상사(月常事). 땀나게 부어대던 적금과 300만원짜리 청약예금을 신용카드 빚 때문에 깨먹은 적도 있다.
불필요한 지출 줄여 70~80% 저축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부모님과 함께 사는 총각이어선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굳이 내가 술값을 낼 자리가 아닌데도 ‘호남’ ‘쾌남’을 자처하며 기어코 수십만원을 카드로 주욱 긁고 나서는 다음 날 아침 머리털을 쥐어뜯는다. 우울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해엔 대출까지 받아 주식투자에 나섰으나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직격탄을 맞고 참패.
정말이지 탈출구가 절실하다. 생활자금, 결혼자금, 주택자금… 휴우…. 다행히 또 한 번의 기회를 맞았다. 재테크 ‘실전 체험’ 취재를 통해 종잣돈 마련 작전에 나서기로 한 것. 이 기사가 나가면 여자친구가 내 곁을 떠날 게 거의 분명하지만, 이젠 ‘폼생폼사’와 결별해야 한다.
“지금 장난하시는 거죠?”
ING생명 한솔지점의 금융자산관리사(Finanical Consultant) 김병국 씨는 내가 건넨 재정상태 리포트를 들여다보고 적잖이 놀란 기색이다. 김씨는 여유자금이 적거나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중·저 연봉의 직장인 사이에서 ‘족집게’ 재테크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보기에도 내 재무상태가 한심스러웠던 모양이다. 내 경우는 월급의 대부분이 지출로 빠져나가 재테크 자체를 시도하기 어려운 사례에 속했다.
ING생명 한솔지점 김병국 FC(오른쪽)가 기자의 재무 상태를 진단한 뒤 단기자금 모으기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또 마이너스통장에서 당겨쓴 600만원의 이자 5만~6만원, 어머니 용돈 20만원, 드럼 레슨비와 각종 동호회 회비 35만원, 경조비 10만~15만원, 헬스클럽 월회비 7만원이 나간다.
통화량이 많아 휴대전화 비용도 12만~13만원에 달한다. 이 밖에 지난해 가입한 종신보험료 17만원에 술값, 문화비, 교통비로 얼추 100만~110만원을 쓴다. 이것저것 다 합치면 월 310만~320만원이 고정적으로 지출된다.
여기에 차마 내역을 공개할 수 없는(?) 지출이 수십만원에 이를 때도 있다. 이러니 살림은 늘 빠듯하고 저축은 엄두도 못 낸다.
김씨는 “대출 이자나 생활비 등 꼭 필요한 고정지출 외에 술값이나 동호회비 등 선택적 지출이 과다하다. 선택적 지출에서 70~80%를 줄여 저축하라”고 주문했다. 강제로라도 저축해야 선택적 지출의 욕구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는 것.
단기자금 마련은 제2금융권 예·적금으로
김씨는 재테크 방법을 설명하기에 앞서 ‘3대 자산 형성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대 자산이란 ‘보장자산’ ‘투자자산’ ‘은퇴자산’으로, 김씨는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보장자산을 위한 상품에 가입하라고 권했다. 기본적으로 예기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 등에 따른 재정의 불안정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
이미 사망, 상해, 암 진단, 수술 특약이 포함된 종신보험에 가입한 상태라 해당사항은 아니지만, 직장 초년병들은 월 10만원 내에서 생명보험과 화재보험을 동시에 가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생명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질병에 대해선 화재보험으로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출을 줄여 보장자산 기반을 갖췄다면 단기 및 중·장기 자금 마련에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것이 ‘2030세대’ 직장인에게 해당하는 재테크의 정석이자 원칙이라고.
1~3년의 목적성 단기자금을 마련하는 데는 시중 예·적금 상품을 활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최근엔 은행권에서도 지난해보다 금리를 다소 올린 예·적금 상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제2금융권인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조합, 금고 등의 예·적금 상품과는 금리나 절세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저축은행의 상품들은 금리가 5%대로 매력적인 데다, 특히 신협과 새마을금고 상품은 지점마다 금리가 달라 발품을 열심히 팔면 저축은행보다 높은 금리상품을 찾아낼 수 있다. 절세 효과는 덤.
김씨는 “직장인 100명 중 95명은 제2금융권 상품에 대해 잘 모른다. 최근 한 공단 직원에게 연 6% 금리의 조합 적금 상품을 소개해줬다. 이런 상품은 이자소득세(15%)를 내지 않고 1.4%의 농어촌특별세만 공제하기 때문에 단기자금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은행 적금은 세금우대 상품이라도 9.5%의 이자소득세가 부과된다. 저축은행 상품도 일반 및 세금우대 상품별로 은행과 같은 이자소득세를 떼지만, 예·적금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신협이나 금고 상품 못지않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저축은행 중 자산규모 1위인 솔로몬저축은행은 일정 기간 여유자금을 예치하고 확정금리를 보장하는 정기 예·적금 상품 외에도 와이즈 e-뱅킹 예금, 파이팅 2030적금, 효자효부 정기적금, 파이팅 맞벌이 정기적금 등의 상품을 내놓았다. 와이즈 e-뱅킹 예금은 금액 및 예치 기간에 상관없이 입출금이 자유로운 상품으로, 이용 기간이 늘어날 때마다 추가 금리가 붙는다.
파이팅 2030적금은 20, 30대 직장인에게 0.2%의 우대금리를 얹어준다. 대학원에 다닐 경우 추가 우대금리를 적용받는다. 솔로몬저축은행은 현재 일반 정기적금의 금리를 12개월 만기 기준 4.8%로 운용하므로, 파이팅 2030적금에 가입하면 연 5.0%의 금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맞벌이 정기적금도 마찬가지. 맞벌이 부부의 경우 0.2% 우대금리를 받고 자녀가 2명 이상이면 두 번째 자녀부터 1인당 (0.1%의) 우대금리가 추가된다. 솔로몬저축은행 강남본점 영업부 최송아 대리는 “저축은행의 경우 예·적금의 기본 금리가 시중 은행보다 1~1.5% 높은 데다 추가 우대금리도 받을 수 있어 CMA보다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시중 은행들도 낮은 금리라는 ‘핸디캡’을 상쇄시키는 상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우리은행의 경우 여신, 수신, 외환, 카드 등의 은행 거래실적에 따라 최고 0.6%의 추가 금리를 지급한다. 또 우리카드 사용실적에 따라 적립되는 ‘모아 포인트’와 우리은행 거래실적에 따른 ‘멤버스포인트’를 정기예금 가입 원금에 최대 1%까지 합산할 수 있는 키위 정기예금 상품을 지난 3월에 출시했다. 현재 1년 만기 금리는 3.65%이고 2, 3년 만기는 각각 4.1%, 4.3%인데 여기에 추가 금리를 더 받을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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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운 지출 110만원 줄이기 작전
기자는 우리은행 김인응 부부장(왼쪽)에게 재테크 상담을 받은 뒤 예금 계좌를 개설했다.
김씨는 “목돈을 모은 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젊은 직장인은 지출에 대한 유혹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1년쯤 잘 모으다가 이 돈으로 차를 사거나 하는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 소비하기 위해 저축한 셈이 되기 때문. 따라서 목돈을 손에 쥐었어도 이런 유혹을 떨쳐버리고 다시 1년 더 저축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김씨는 적금으로 모든 889만원을 예금(예탁과 거치)으로 돌리고, 다시 1년 만기 적금을 똑같이 운용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889만원의 예금에 이자가 붙어가는 가운데 매달 70만원씩 1년을 같은 조건의 적금에 가입하라는 것. 김씨는 이처럼 1년씩 적금을 해나가는 게 금리와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의 간곡한 설득이 이어졌다.
“2년이 지난 후 적금을 통해 얻은 돈을 기존 예금에 다시 얹고, 다시 70만원짜리 적금을 돌리면 3년 뒤엔 얼마를 쥘 수 있을까…, 이런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기쁘겠어요.”
재테크 과정에선 단기자금뿐 아니라 3~4년 이후에 써야 할 자금 마련도 고려해야 한다. 2말3초(20대 말, 30대 초)의 직장인이라면 결혼, 주택 마련, 사업 목적 등 자금 수요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다. 결혼을 했다면 자녀 교육비도 이에 해당한다. 이런 중·장기 자금 마련엔 복리효과를 얻을 수 있는 상품이 좋다는 게 김씨의 조언. 매년 원금과 이자를 합친 금액에 다시 이자가 붙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미가 여간 짭짤하지 않다는 것이다.
복리 상품으로는 적립식 펀드, 비과세 장기저축 보험, 변액보험상품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상품들이 각각의 장점을 갖고 있지만, 나는 현재의 주식시장 분위기를 감안해 어떤 방법으로든 지출을 줄여 30만원 정도를 변액보험상품에 투자하기로 했다. 펀드와 95% 정도 흡사한 상품이지만 주식시장이 좋지 않을 경우 국·공채로 바꿔 탈 수 있고, 수시로 증액과 추가 납입이 가능해 공격적인 투자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출에서 100만원을 줄여 예금, 적금, 변액보험상품에 넣어 3년만 굴리면 4000만원 이상의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결론이다. 여기에 주식시장까지 계속 좋아진다면 금상첨화, 그야말로 쥐구멍에 볕 들 날이 올 터.
비상자금은 맞춤식 하이브리드 통장에
그런데 김씨는 지출을 10만원만 더 줄여보라고 권했다. 아직 30대지만 노후도 염두에 둬야 한다면서. 내가 60대가 됐을 때는 국민연금만으론 생계를 이어나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술 한 잔 덜 마신다는 생각으로 개인연금도 들기로 했다.
김씨는 효율적인 재테크를 위한 마지막 작업으로 통장을 급여 통장, 잔고 유지 통장, 주식거래 통장 등 기능별로 다양하게 쪼개라고 충고했다. 한 곳에 돈을 모아두면 빠져나가기도 쉽다는 얘기. 그러면서 최근 각 금융회사별로 은행과 증권사의 장점을 다양하게 접목해 내놓은 ‘하이브리드’ 통장을 소개했다.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금융지주회사, 증권사, 은행에서 나온 상품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예금 인출이 잦거나 주거래 은행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타행 자동화기기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SC제일은행의 ‘두드림’ 상품 같은 것이 유용합니다.
평소 투자를 많이 하거나 급여 통장의 평균 잔액이 많다면 증권사 CMA통장, 아니면 잔액에 따라 우대금리를 적용하는 국민은행의 스타트 통장이나 우리은행의 AMA플러스 통장을 써볼 만합니다. 특히 AMA플러스는 20대 고객에게 100만원까지 연 4.1%의 고금리를 지급하고 있으며, 급여를 한 달만 이체(우리은행이 선정한 기업체에 해당)해도 즉시 신용대출이 가능합니다.”
나는 AMA플러스를 선택했다. 이제 남은 일은 지출을 계속 줄이면서 김씨와 짜놓은 금융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고 저축 비중을 높여가는 것이다. 정밀하게 쓰지는 못하더라도 수입과 지출의 흐름을 대충은 읽을 수 있도록 가계부도 쓸 참이다. 자, 이제 남은 건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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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취재에는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이은택(서울대 정치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