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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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도둑이 ‘운 나쁜(?) 사람’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9-08-05 14: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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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미국에 거주하는 독자에게서 e메일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이 하나 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e메일에는 그가 25년 전 미국에 유학 왔을 때 겪은 일화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에 오기 전, 한국에서 3000원짜리 화학 원서 해적판을 샀다고 합니다. 당시 그 화학책은 미국에서 40달러가 넘는 고가에 팔리고 있었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빤한 학생이니 해적판을 사도 괜찮겠지’ 싶어서 그 후에도 종종 한국에 갈 때면 해적판 원서를 구입했다고 합니다.

    친구의 책을 빌려 복사할 때도 많았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료가 필요해 교수에게 책을 빌려 무심코 복사를 하고 있는데, 교수가 “자네는 지금 법을 위반하고 있네”라면서 복사를 못하게 간곡히 타일렀다고 합니다. 순간, 그동안 위법행위라는 의식도 없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관행처럼 저질러온 일이 무척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간동아 696호에 실린 저작권 관련 기사의 제목(‘운 나쁜 청·장년층 위반 급증’)이 마치 저작권법 위반자가 운 나쁜 사람일 뿐인 양 묘사돼 안타깝다”며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타인의 저작권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말로 글을 맺었습니다.

    물론 ‘저작권을 위반한 사람은 운 나쁜 사람’이라는 게 이 기사의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엄격해진 개정 저작권법의 홍보가 청소년에 집중된 나머지 청·장년층이 이에 대해 잘 몰라서 본의 아니게 위반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었습니다. e메일을 보낸 독자가 자신의 경험 때문에 좀 민감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낸 e메일은 우리가 일상에서 얼마나 아무런 죄의식 없이 타인의 저작권을 침해하는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저 역시 학창시절 다른 사람의 책을 복사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음반을 사서 듣기보다 P2P 사이트에서 음악 파일을 다운받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지식 도둑이 ‘운 나쁜(?) 사람’
    “저질 영화를 왜 돈 주고 영화관에서 봐?”라며 영화를 다운받고, 다른 사람의 사진이나 재미있는 그림을 ‘불펌’해 개인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습니다. 저작권 위반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를 보면 “저 사람들은 참 운도 없지, 안 걸리면 그만인데…” 싶기도 했고요. 개정된 저작권법이 시행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엄격한 법 조항에 불만을 터뜨리며 ‘설마 내가 운 나쁘게 걸리겠어?’ 하고 맙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쳐야만 도둑이 되는 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지식을 훔치는 것, 그것 또한 명백한 범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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