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아 레반도프스키, ‘Berliner Zimmer’, 설치, 2002.
때마침 베를린에 사는 독일 친구에게 가볼 만한 미술관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해놨던 저는 ‘함부르크 기차역 박물관(Hamburger Bahnhof Museum)’에 가자는 제안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독일이 철도산업으로 유명한 건 알지만 굳이 시간을 내서 철도박물관에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죠. 친구는 실망한 제 얼굴을 보고도 태연히 앞장서더군요.
그런데 고풍스러운 역사(驛舍)에는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댄 플래빈의 형광등 작품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기차역과 관련짓기 어려운 현대미술 작품이 기차역 정면의 기둥들과 나란히 있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죠. 게다가 기차역 입구 왼쪽 벽에는 앤디 워홀이 연상되는 노란 바나나 마크가 스프레이로 그려져 있었는데요. 제가 알기로 바나나 마크는 독일에서 현대미술품이 소장된 미술관을 표시하는 상징이었습니다.
정문을 열고 역사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곳이 철도박물관이 아니라 기차역을 개조해 1996년에 문을 연 현대미술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베를린 국립미술관 제3분관인 이곳에는 요셉 보이스, 백남준,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소장돼 있습니다. 또 매우 실험적인 전시를 지속적으로 기획하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제가 본 전시는 ‘Mind the Gap!’(간격을 조심하세요)이었어요. 지하철 승강장과 전동차 출입문의 간격 때문에 생기는 안전사고 방지 안내방송에서 따온 제목인데요. 이 간격이 의미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조각 작품에 초점이 맞춰진 전시에서 관객들은, 견고하다고 믿던 건축 구조물들이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 틈과 구멍들을 갖고 있는지 재인식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이런 위험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망에 편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비아 레반도프스키(Via Lewandowsky, 1963~)의 설치작품 ‘베를린의 방(Berliner Zimmer)’은 이 두 가지 특징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한 가정의 응접실을 그대로 재현한 이 작품은 옆에서 보면 이렇다 하게 눈에 띄는 것이 없는 평범한 응접실입니다.
하지만 정면에서 보면 응접실이 반으로 나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장식장, 카펫, 테이블, 소파 심지어 소파 위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까지 반으로 절단돼 있습니다. 옛 동독의 드레스덴 출신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직전 서베를린으로 이주한 작가는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베를린의 응접실이 감추고 있는 냉전의 상흔을 대담하게 드러내는데요.
그의 작품은 우리가 몸을 누이고 휴식을 취하는 개개인의 집이 얼마나 이데올로기에 좌우되는 위태로운 구조물인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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