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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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산 와인’ 한국 입맛 사로잡다

시장 순위 세 계단 상승 ‘올해 2위’ … 가격 비해 품질 좋고 공격적 마케팅 ‘FTA 효과도’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4-12-02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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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산 와인’ 한국 입맛 사로잡다

    서울 삼청동 와인 바 ‘더 소셜’ 직원이 와인 저장고에서 칠레산 와인을 따르고 있다.

    칠레산 와인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호텔은 물론 고급 레스토랑의 하우스와인 자리를 석권하다시피 하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을 속속 접수하고 있는 것.

    2003년만 해도 칠레산 와인의 국내 시장 순위는 수입액 기준 5위에 지나지 않았다(관세청). 그러나 올해 1~10월 순위는 놀랍게도 2위. 전년 동기 대비 197%가 급증한 670만 달러(수입원가 기준)어치가 수입됐다. 미국 이탈리아 스페인 와인을 제쳤을 뿐 아니라 부동의 1위인 프랑스 와인 점유율마저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다.

    칠레 와인의 눈부신 성장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결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올 4월 FTA가 발효되면서 칠레 와인에 대한 관세율이 기존 15%에서 12.5%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관세는 해마다 2.5%포인트씩 낮아져 2009년에는 완전히 없어진다.

    그러나 칠레 와인의 가격 책정에 관세 인하가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와인 수입 가격이라는 것이 원래 국내 소매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데다, 특히 칠레 와인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의 와인에 비해 값이 20~30%가량 싸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관세율 인하 효과는 소비자 가격에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

    부동의 1위인 프랑스 와인마저 위협



    그럼에도 ‘FTA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FTA 협정 진행 중 수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칠레 와인의 특·장점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와인 수입사 아간코리아의 최정은 마케팅 팀장은 “2002년 말부터 한-칠레 FTA 협정의 여러 효과를 논하며, 특히 칠레 와인의 수요가 늘 것이란 전망이 자주 언론을 탔다. 그때마다 ‘칠레 와인은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다’는 해설이 꼭 따라붙었던 것이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2002년 말부터 칠레 와인을 찾는 고객이 조금씩 생겨났고, 지난해 수입사와 현지 와이너리(제조회사), 칠레 대사관 등이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면서 급성장하게 됐다.

    그렇다면 칠레 와인의 진짜 경쟁력은 무엇일까. 와인 수입사인 두산주류BG 송동현 대리는 “보르도 등 프랑스 와인은 왠지 소비자들에게 ‘어렵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칠레산은 프랑스산과 맛이 비슷하면서도 부담 없는 가격과 편한 이미지 때문에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은 팀장은 “프랑스 와인에 비해 탄닌이 적어 떫은맛이 덜하면서도 색이나 보디(body)는 가볍지 않은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보디’란 우리말로 ‘틀’ 정도로 번역 가능한 표현. ‘보디가 괜찮다’는 말은 맛이 ‘밍밍하지 않고 뭔가 농도가 느껴진다’는 뜻이다. 당도가 많이 높은 것도 아닌데 동양인에겐 ‘달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한 특징이라고 한다.

    ‘칠레산 와인’ 한국 입맛 사로잡다

    한-칠레 FTA 발효를 앞둔 3월15일 서울 삼성동의 한 와인판매점에서 페르난도 슈미트 당시 주한 칠레 대사(왼쪽)가 칠레산 와인을 홍보하고 있다. 칠레의 ‘에라주리즈’ 와이너리 전경. (왼쪽부터)

    보르도아카데미 최훈 원장은 “값에 비해 전체적으로 갖출 건 다 갖췄다고 보면 된다. 이런 것을 흔히 ‘이지 드링킹 와인’이라고 한다. ‘여운’이라는 의미의 피니시(finish)도 적당한 수준이어서 웬만한 제품을 고르면 와인 마시는 즐거움을 큰 부담 없이 만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칠레 와인이 프랑스 와인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최 원장은 “칠레는 19세기부터 프랑스 양조업자들에 의해 프랑스 품종으로 프랑스식 와인을 만들어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동안 가장 많이 접해온 것도 프랑스 와인이어서 칠레산 와인에 좀더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칠레산 와인은 프랑스 와인보다 맛이 유순하다. 최 원장은 이에 대해 “프랑스 보르도는 북위 45도인 데 반해 칠레의 주요 와인 산지는 남위 30도에 위치해 있어 위도상의 차이가 맛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의 와이너리들은 의도적으로 프랑스 와인을 ‘흉내’내기도 한다. 레이블(와인 병에 붙어 있는 상표)만 해도 호주산 등은 기본 정보만 전달하겠다는 식의 모던한 디자인이라면, 칠레산 와인 레이블은 보르도산 뺨칠 만큼 장식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와인은 아직 ‘낭만적이고 특별한 행사에 더 어울리는’ 술. 그런 소비 패턴과 프로모션의 방향이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한 와인 전문가는 “호주나 이탈리아 와이너리들은 한국 시장을 아직 마이너로 보고 있는 반면, 칠레 정부와 와이너리들이 FTA가 진행되면서 한국 시장을 주요 공략시장으로 보고 열정적인 마케팅에 나선 것도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다행히 소비자들의 반응이 괜찮은 데다, 수입사들의 이해관계까지 얽혀 큰 효과를 보게 된 셈이다. 요즘은 그나마 값이 좀 올랐지만 초기에는 워낙 수입가가 낮은 탓에 이윤이 많아 수입사들이 너도나도 칠레산 와인을 들여오게 됐다는 것이다.

    ‘칠레산 와인’ 한국 입맛 사로잡다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주요 칠레산 와인들. 몬테스 알파, 까르멘, 비나 라 로사, 얄리, 산타 리타, 에라주리즈, 까미노 레알 까베르네 쇼비뇽(왼쪽부터).

    칠레 와인 인기 끌자 마구잡이 수입

    우리나라 와인 시장 자체가 커지고 있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LG전자는 올 9월부터 자체 개발한 와인셀러(와인 보관용 냉장고)를 판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한 해 와인셀러 소비량은 1000대 정도. LG전자 이영민 차장은 “3개월간 이미 500대를 팔았는데, 내년에는 5000대 판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는 만큼 새로운 수요 창출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와인 종주국인 프랑스에서조차 와인셀러는 대단한 애호가나 부호, 또는 와인 생산업자들이나 갖춰놓는 것이라고 한다.

    칠레 와인 붐이 계속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와인 수입 면허를 가진 350여개 업체 중 일부가 전혀 인지도 없는 와이너리와 손잡고 ‘한탕식’으로 수입을 하면서 질 낮은 와인들이 시장에 유입되고 있는 것. 때문에 와인 전문가들은 “칠레산이라고 무조건 믿고 마실 것이 아니라 나름의 감식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훈 원장은 “전문 판매점에서 직접 사건, 레스토랑에서 선택을 하건 판매자에게 ‘어떤 수입사에서 들여온 와인이냐’를 물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믿을 만한 수입업자는 나쁜 상품을 들여오지 않는다”는 것.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을 달라”고 하는 것도 안전한 선택법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이 팔리는 칠레산 와인으로는 나라식품이 수입하는 ‘몬테스 알파’, 프라이드오브와인이 수입하는 ‘얄리’, 두산주류의 ‘까르멘’ 등이 있다. 최 원장은 그 외에 레뱅드매일의 ‘산타 리타’, 신동와인의 ‘에라주리즈’, 아간코리아의 ‘비나 라 로사’, 한영와인의 ‘까미노 레알 까베르네 쇼비뇽’, 한국관광주류의 ‘루이스 펠리페 에드워드’, 수석무역의 ‘발디비에소’ 등을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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