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아이 러브 유’의 네 주인공 정성화 오나라 이정화 남경주(왼쪽부터).
사랑을 꿈꾸는 20대들만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 러브 유’는 일상에 매몰된 30, 40대들이나 이제 다시는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70대 노인에게까지 새로운 사랑의 설레임을 전해줄 만한 기분 좋은 뮤지컬이다.
막이 오르면 네 명의 배우가 무대 위에 서 있다. 남경주, 이정화, 정성화, 오나라. 이들은 이제 두 시간 내내 극을 이끌어갈 등장인물의 전부다. 이 작품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표현하는 ‘레뷔(Revue) 뮤지컬’이기 때문인데, 배우들은 10~15분마다 한 번씩 바뀌는 무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다.
배우 이정화 혼자서 너무 바빠 사랑할 시간조차 없는 직장여성이 되었다가,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결혼식장에서 받은 부케만 32개에 이르는 노처녀가 되었다가, 또 무대가 바뀌면 노년에 찾아온 사랑에 갈등하는 할머니로 변신하는 등 모두 16개의 배역을 소화하는 식이다. 다른 배우들도 에피소드마다 완벽하게 새로운 사람이 되어 관객 앞에 선다.
혹시 정신없이 돌아가는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하고 있다면 그건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1막, 2막에 담긴 20개의 에피소드들은 각각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라 마치 20편의 짤막한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한 신이 끝나고 암전될 때마다 무대 한편에 붙은 작은 모니터가 새로 시작될 에피소드의 제목을 보여주고, 피아노 한 대 바이올린 한 대로 구성된 조촐한 ‘밴드’는 톡톡 튀는 연주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작품이 모두 끝났을 때 비로소 이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실은 ‘아이 러브 유’라는 하나의 주제로 묶이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게 이 뮤지컬의 진정한 매력이다.
조 디피트로가 대본을 쓰고 지미 로버츠가 곡을 입힌 ‘아이 러브 유’가 조엘 비시오프의 연출로 뉴욕 ‘웨스트사이드 시어터’에서 초연된 것은 1996년 8월1일. 이후 이 뮤지컬은 LA·보스턴·런던·바르셀로나·멕시코시티 등 세계 150개 도시의 무대에 올랐고, 2001년 9·11테러로 뉴욕의 극장가가 총체적 불황에 빠져들었을 때도 관객이 줄지 않아 공연을 이어갔을 만큼 인기를 모았다. 뉴욕에서는 지금까지 연인원 70여만명을 동원하며 계속 공연 중이다.
1분에 서너 번씩은 웃음이 터지게 만드는 재치 있는 대사와 상황, 작은 무대를 최대한 활용해 장면마다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탄생시키는 무대 연출 등은 이 작품이 세계적으로 ‘대박’을 터뜨리게 한 일등공신이다.
한국판 ‘아이 러브 유’가 가진 매력도 절반은 이처럼 잘 짜여진 대본과 음악, 연출 자체의 힘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볼 만하게 만드는 나머지 절반의 공(功)은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돌아가야 할 것 같다.
데이트 도중 슬픈 영화를 보며 펑펑 울음을 터뜨리는 울보 남자, 집에서는 아내에게 쩔쩔매지만 자동차만 타면 야수로 돌변하는 남편 등 갖가지 역을 자유자재로 소화하며 코믹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남경주, 탁월한 가창력으로 무대를 사로잡는 이정화 등 네 명의 배우들은 모두 짤막한 에피소드 곳곳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자연스런 앙상블을 이룬다.
미국에서는 이 뮤지컬이 공연되는 8년 사이에 마흔네 명의 관객이 무대 위에서 파트너에게 깜짝 프러포즈를 했고, 모두 결혼 승낙을 얻어냈다고 한다. 삶이 아무리 외롭고 팍팍해도 사랑은 늘 당신 곁에 있다고 가르쳐주는 이 달콤한 뮤지컬의 마법 덕이 아니었을까.
원제는 ‘I LOVE YOU, YOU’RE PERFECT, NOW CHANGE’. 2005년 1월30일까지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문의 02-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