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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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시니어’, 부동산시장 지각변동 불러온다

[조영광의 빅데이터 부동산] 건강·재력·학력 갖춘 초고령사회 큰손

  • 조영광 하우스노미스트

    입력2025-03-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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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부터 등장하는 고령인구는 그 수가 단순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 실로 어마어마하다. 마치 대륙 하나가 바다에서 새로 쑥 솟아오른 것과 같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에이지랩(Age Lab) 설립자이자 ‘장수 경제(longevity economy)’ 개념을 정립한 조지프 코글린 교수가 저서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에서 고령 세대의 폭발하는 경제 수요를 예견하며 한 말이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초격차·초가속 등 미래를 예견하는 데 쓰이는 키워드 ‘초’(超·뛰어넘다)가 붙을 정도로 초고령화는 이제 대한민국의 뉴노멀 트렌드이자 엄연한 현실이다.

    경기 가평의 유명 관광지인 자라섬 일대. [GettyImages]

    경기 가평의 유명 관광지인 자라섬 일대. [GettyImages]

    “젊을 때 살던 곳 그대로 거주하고 싶다”

    코글린 교수가 예견한 어마어마한 고령 세대의 경제 수요 움직임은 2025년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 부동산시장에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이다. 부동산 수요 관점에서 고령 세대를 바라볼 때 예전처럼 이른바 ‘약한 노인’을 상상했다가는 큰 투자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현 고령 세대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고 부를 만하다. 이전 노인들에 비해 건강, 재력, 학력을 갖춘 이가 많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등 개성이 뚜렷한 세대다. 이들 액티브 시니어의 주거 가치관은 이미 여러 연구와 설문조사에서 일관되게 드러났다. 한마디로 “젊을 때 살던 곳에서 계속 거주하고 싶다”는 ‘Aging in Place(AIP)’다. 한국 도시화율이 90%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령 세대는 은퇴 후에도 도시 혹은 도심에 계속 거주할 것임을 시사한다.

    정부도 폭발하는 액티브 시니어의 주택 수요에 부응하고자 대응에 나섰다. 대표적인 게 올해 재도입되는 ‘분양형 실버타운’이다. 정부는 2015년 실버타운에 대한 투기 방지 등을 이유로 분양형 실버타운을 폐지하고 임대형 공급만 허용했다. 액티브 시니어의 주거 품질에 관한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매스티지(mass와 prestige의 합성어로 대중 명품을 뜻함) 실버타운이 다시금 등장한 것이다. 다만 정부는 분양형 실버타운 공급이 가능한 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한정하고 있다. 아무리 분양형이라는 상품적 강점이 있어도 수요가 부족한 곳에선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분양형 실버타운 입지가 인구감소지역에 국한된다는 이유만으로 덮어놓고 냉대할 필요는 없다. AIP 트렌드에 부합하는 도심 근교 혹은 미래 개발 청사진이 확정된 곳은 액티브 시니어 수요를 빨아들이며 인구 유턴의 반전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 열차. [동아DB]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A 노선 열차. [동아DB]

    ‌액티브 시니어의 부동산 유동성이 집중될 미래 유망지는 어디일까. 수도권 인구감소지역 중에서는 경기 가평을 꼽을 수 있다. 최근 거론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 노선 연장이 현실화되면 가평에서 서울로의 이동성이 매우 용이해진다. 유명 관광지인 자라섬과 남이섬을 누릴 수 있는 입지도 액티브 시니어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조건이다. 최근 가평 대장 아파트 단지 국민평형(국평)은 전 고점 수준인 4억 원을 회복했다. 액티브 시니어의 주거 유동성이 이 지역에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방의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주목할 곳은 강원 평창과 부산 동구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 빅데이터를 살펴보면 평창은 지난 10년간 서울 강남 투자자들이 꾸준히 매입한 지역이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맞물려 온열질환에 취약한 시니어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산 동구는 북항 재개발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되고 친수공원이 개방됐다. 최근 랜드마크 부지에 4조5000억 원 외자를 유치해 헬스케어센터, 아레나, 테마파크 같은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동구는 현재 인구감소지역으로 분류되지만 부산의 메가톤급 개발 사업인 북항 재개발이 2·3단계까지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액티브 시니어의 주거 유동성이 쏠릴 전망이다.

    액티브 시니어 ‘가성비 주거지’ 2기 신도시

    수도권 신도시를 향한 액티브 시니어의 주거 수요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존하는 수도권 신도시는 크게 1기와 2기로 나눌 수 있다. 1990년대 준공된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는 이미 완성된 생활 인프라가 강점이다. 액티브 시니어가 살기에 불편함이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인프라 노후화다. 1기 신도시에는 준공 후 10~15년이 지나 세심한 안전관리가 필요한 도로·교량·건축물 등 ‘3종 시설물’이 많다. 가령 경기 성남에 있는 3종 시설물 중 약 70%가 분당에 있고, 경기 고양의 3종 시설물 약 60%가 일산에 집중돼 있다. 노후계획도시특별법에 따른 1기 신도시 재건축 기대감이 크지만 3040세대와 5060세대 액티브 시니어 사이에 온도차는 확연하다. 3040세대의 경우 자녀가 성인이 될 무렵에는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다. 반면 5060세대는 기존 아파트 철거 후 이주 기간이 훨씬 길고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재건축이 지연될 경우 ‘잃어버린 시간’이 주는 압박감도 클 수밖에 없다.

    위례신도시 아파트 단지. [뉴스1]

    위례신도시 아파트 단지. [뉴스1]

    ‌1기 신도시 후배 격인 2기 신도시가 액티브 시니어에게 갖는 소구력은 어떨까. 2기 신도시는 1기 신도시보다 외곽에 있지만 향후 교통 인프라 확충이 기대된다. 계속 확장되는 수도권 순환도로, 높아지는 모빌리티 기술을 감안하면 2기 신도시는 액티브 시니어에게 가성비 도시로서 매력을 더할 것이다. 동탄·위례·송도 등 2기 신도시에 대학병원 분원이 들어서는 것도 강점이다. 액티브 시니어 입장에선 건강한 여생을 뒷받침하는 전문의료기관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모든 액티브 시니어가 도심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24년 농업·농촌 국민의식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도시민의 귀농·귀촌 의향은 크게 증가했다. 해당 조사에서 “귀농·귀촌 의향이 매우 많다”고 응답한 비중은 2023년 8.9%에서 2024년 16.9%로 증가했다. 최근 10년 동안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액티브 시니어가 귀농·귀촌을 바라는 이유는 뭘까. 같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생활하고 싶어서”라는 응답이 49%로 가장 많았고,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어서”(28%)가 뒤를 이었다. 30~40대에 과밀도시에서 생존 분투에 지친 액티브 시니어의 속마음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 같은 액티브 시니어의 잠재 수요는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소도시의 생존전략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어설픈 도시 따라 하기 전략보다 자연이 주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생활환경을 어필하는 게 유효하다는 것이다.



    귀농·귀어 인구 몰리는 곳 부동산 주목

    실제로 도시민을 ‘유턴’하게 만드는, 귀촌이 활발한 지역은 어디일까.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경북 의성(202명)과 상주(167명)가 귀농인이 많은 지역 1·2위에 올랐다. 같은 시기 귀어(歸漁)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충남 태안(114명)이었고 전남 여수(58명)가 뒤를 이었다. 인구 소멸이 뉴노멀로 자리 잡아가는 지방 소도시의 경우 액티브 시니어를 끌어당기는 것만으로도 지역 부동산시장에 상승 훈풍을 가져올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의 주거 향배가 도시뿐 아니라 지방 부동산시장에도 격변을 예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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