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브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새로 선보인 5인조 걸그룹 키키.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제공]
노래가 끝나면 모든 멤버가 뒤돌아 배경 속으로 뛰어간다. 흔한 장면이기는 하지만 최근 공개된 두 신인 걸그룹의 뮤직비디오가 공교롭게도 똑같이 이런 엔딩을 취한다. 아이브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키키(KiiiKiii)가 공개한 ‘아이 두 미(I DO ME)’와 SM엔터테인먼트 하츠투하츠(Hearts2Hearts)의 데뷔곡 ‘더 체이스(The Chase)’ 얘기다. 이 영상들은 인물만큼 공간이 중요한 것도 공통점이다. 시골 국도와 도심, 대자연 등으로 표현되는 공간 속으로 인물들은 모험을 떠난다.
두 곡 모두 소속사 선배들의 장점을 유산처럼 물려받고 있다. 키키의 경우 1980년대풍 애틋함이 시원하게 깃든 기분 좋은 멜로디와 기세가 분명 아이브의 그것을 닮았다. 후반부에는 장엄한 연주곡처럼 스케일을 키워 아득하고 벅찬 마음을 멋지게 담아낸다. 하츠투하츠도 R&B 분위기 속에서 풍성한 화음을 리드미컬하게 구사하는 것이 레드벨벳을 떠올리게 한다. 단호한 비트와 말하는 듯한 래핑도 에스파를 비롯한 소속사 선배들 계보를 떠올리게 하면서 매우 만족스러운 봉합을 보여준다.
차이점도 눈에 띈다. 두 그룹은 초등학생들의 영웅과도 같은 아이브, 이 세계의 초현실적 존재 같은 에스파보다는 훨씬 인간적이고 ‘소녀적인’ 얼굴을 취하고 있다. 자아에 대한 1990년대식 선언문 같은 이름 ‘아이브(IVE)’에 비해 한결 장난스럽고 감각적인 인상을 강화한 키키도, 같은 소속사의 신인 보이그룹 디어 앨리스와 나란히 놓으면 소녀만화 세계관에서 함께 길어 왔을 것 같은 하츠투하츠도 그렇다. 어쩐지 홀가분하거나 가벼워 보인다. 수수께끼 같은 장면들은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고 궁금하기도 하지만, 알더라도 아주 중요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예쁘고 즐겁고 기분 좋아 보이는 소녀들이 있을 뿐이다.
즐겁고 기분 좋아 보이는 소녀들
이런 경향성이 친구들과 나누는 한밤의 통화 같은 질감을 내세운 뉴진스로부터 촉발된 것임을 부인하기는 어렵겠다. 그러나 이른바 ‘4세대 걸그룹’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음을 느끼게도 된다. 과거 걸그룹은 남성 팬과 대중적 인기가 관건인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중점이 여성 팬덤의 단단한 지지로 옮겨갔다. 그 시작 단계에서는 자기 증명이 중요했고 강렬한 의지, 화려한 자기애, 독보적 세계관, 공격적인 개성 같은 콘셉트가 필요했다. 대를 이은 신인 걸그룹들이 훨씬 편안하고 인간적인 매력과 설레는 출발을 표현하게 된 것은 이 같은 걸그룹 시장의 변화가 새로운 규칙으로 안착했음을 얘기하는지도 모르겠다. 잔디와 젖은 흙이 짓이겨진 무릎을 툭툭 털어버리는 장면처럼, 이 소녀들의 모험 길은 설렘과 자신감으로 가득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