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블라디보스토크역 부근 시내.
이 소식을 처음 보도한 것은 일본 마이니치신문이다. 곧바로 한국과 러시아, 일본 언론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추가 취재에 들어갔다. 이 사건이 관심을 끈 이유는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북한인이 외국 공관을 통해 탈북을 시도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미국과 한국 일본 베트남 인도 등 5개국이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에는 중국과 일본 총영사관이 있고, 북한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70km 떨어진 나홋카에 총영사관이 있다. 이중 북한이나 중국 공관이야 탈북과 무관하지만 나머지 국가들도 지금까지는 자국 총영사관에 탈북자들이 들어올 것에 대해 거의 대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경비도 허술했다.
10월29일 탈북자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미국 총영사관으로 들어간 경로.
이 북한인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미국 총영사관 안으로 들어갔다. 총영사관은 5층짜리 건물과 붙어 있다. 건물의 벽에는 화재에 대비해 지붕까지 연결된 비상계단이 있다. 그는 이 비상계단을 통해 건물 위로 올라가 지붕을 타고 총영사관 옥상으로 건너갔다. 총영사관과 옆 건물 사이에는 허술한 울타리만 있어 너무나도 쉬운 ‘탈북 경로’였던 셈이다.
사건이 알려진 뒤 미국 총영사관 측은 북한인이 영내에 있다는 사실만 확인해주었을 뿐 언론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 북한인이 자신을 블라디보스토크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고 진술했다고 알려졌을 뿐이다.
사건 이후 한국 미국 일본 총영사관은 경비를 강화했다. 그러나 11월15일 또다시 북한인 1명이 한국 총영사관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식은 국내의 탈북자 지원 단체를 통해 알려졌다. 이 북한인은 건설 현장에 파견돼 러시아어 통역사로 일하던 황대수씨(29)로 밝혀졌다.
하바로프스크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
어쨌든 미국과 한국 공관에 머물고 있는 두 탈북자의 신변 처리 문제는 장기화될 전망이다. 한국과 미국, 러시아 등 관련 나라들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 외국 공관을 통한 탈북이라는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10월4일 미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된 후 이 지역에서 잇따라 두 건의 탈북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북한인권법안은 북한인권 관련 단체에 대한 예산 지원은 물론 탈북자 망명 허용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는 미국 총영사관에 들어온 이 탈북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탈북자 정책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벌목공 등 1만2000여명 파견
북한인권법안이 극동지역의 잇따른 탈북과 관련이 있음을 말해주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두 건의 탈북이 있기 전인 10월20일 한 북한인이 ‘블라디보스토크 신문’ 편집국을 찾아와 망명을 위한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북한인이 현재 미국 총영사관에 머물고 있는 사람과 동일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역시 처음부터 탈북의 목적지로 미국을 선택한 공통점이 있다.
그는 러시아 기자들에게 미국 특파원과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동료가 얼마 전 미국 총영사관 직원들의 도움을 얻어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 기자들이 “직접 미국 총영사관과 접촉하라”고 조언하자 그는 “만일 그러다 발각되면 죽는다”며 신문사를 떠났다.
그러나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왜 지금까지 러시아 극동지역이 탈북의 무풍지대였냐는 것이다.
러시아 극동지역은 북한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지금까지 탈북 사례가 드물었다. 물론 1990년대 중반 하바로프스크 인근 벌목장에 파견된 북한 인부들이 작업장을 무단 이탈해 극동지역을 떠돈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한국 등으로의 망명을 위해 탈출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작업장을 이탈했거나 ‘사고’를 치고 도망쳤다가 러시아 각지를 떠돌면서 북한과 러시아 당국에 쫓겨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 망명에 성공해 인천공항에 도착한 탈북자들
두만강을 건너 직접 탈북을 시도한 사례도 중국과 비교하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북한과 러시아의 국경 거리는 겨우 40.3km다. 수심이 얕아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지점도 있지만 국경선이 짧다보니 경비망을 뚫기가 쉽지 않다.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탈출을 시도한 경우는 있었다. 중국 당국에 쫓기다 러시아로 넘어간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김대중(DJ) 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의 경질까지 가져왔던 호영일씨(당시 30세) 사건이다. 99년 11월 호씨 등 7명이 중국에서 러시아로 넘어가다가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됐다. 이들은 UNHCR의 난민 판정을 받아 한국행이 확정되는 듯했으나 갑자기 러시아 당국이 중국으로 되돌려 보내버렸다. 중국 당국도 이들을 북한으로 송환해 이후 생사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시 우리 외교당국은 무능하다며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이 사건은 한러 관계에도 상당히 나쁜 영향을 미쳤다.
90년대에 러시아는 ‘불법 입국’한 북한인을 체포해 대부분 송환했다. 95년 말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 1명은 국경을 넘자마자 즉결 처형됐다. 또 북-러 국경의 하산역을 통해 북한으로 송환되던 일가족이 철교에서 투신해 4명 모두 죽은 사건도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를 의식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가 탈북자들의 탈출 경로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북한과 러시아는 나름대로 탈북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러시아에 파견된 노무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것이다.
북한 노동자들은 극동지역을 중심으로 러시아 전역에 1만2000명 정도가 파견돼 있다. 주로 건설 현장이나 벌목장, 농장 등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군사시설에서까지도 북한 노무자들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지금까지 북한 노동자들의 탈출이 드물었던 이유는 이들이 원래 당성이 강한 사람들 중에 선발돼 러시아로 왔고 현지에서도 엄격한 규율 속에서 집단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족을 북한에 두고 왔다는 점도 탈북을 망설이는 요인.
그러나 최근 잇따른 탈북 시도는 이러한 ‘장치’도 한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안 제정에 맞춰 곧바로 미국으로의 망명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러시아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외부 정보와 충분히 접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 내부 정세에 따라 이들에 대한 통제력이 급격히 약화될 경우 중국에 이어 러시아 극동지역이 새로운 탈북 경로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