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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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발라드로 컴백한 걸그룹 영파씨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5-03-1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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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셜 앨범 ‘콜드’를 발매한 5인조 힙합 걸그룹 영파씨. [동아DB]

    스페셜 앨범 ‘콜드’를 발매한 5인조 힙합 걸그룹 영파씨. [동아DB]

    영파씨(YOUNG POSSE)는 K팝 아이돌과 힙합이라는 두 세계에 걸쳐 있는 5인조 걸그룹이다. 그 분방한 생기와 엉뚱한 기지는 그들이 시장에서 흔치 않은 힙합 걸그룹이라는 사실이나, 심지어 힙합을 ‘잘한다’는 점마저 이들의 아주 흥미로운 부분으로 포섭하는 것 같다. 3월 2일 발매된 영파씨의 스페셜 미니앨범 ‘콜드(COLD)’에서도 이 점이 잘 드러난다. 음반 발매를 ‘개봉’으로, 그에 딸린 뮤직비디오를 OST라고 소개하는 것이다. 뮤직비디오 속 소품에서 가져온 음반 커버는 그야말로 OST를 연상케 한다. 수록곡을 극중 인물과 관련된 삽입곡인 양 설명하는 것도 능청스럽다.

    물론 보기 나름이다. 레미 황 감독이 연출하고 대만 배우 증경화가 출연한 이 ‘영상’이 극장 개봉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영화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터다. 다만 이것이 영화와 OST인지, 뮤직비디오와 K팝 음반인지 아리송한 경계에서 “영화입니다!”라고 해버리는 것이 영파씨답다고 할 수 있을 법하다. 연말이 되면 음악 시상식 ‘마마(MAMA)’와 청룡영화상 중 어디로 가야 할지 첨예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그때는 감독이 외국인이라 한국인에게는 고민거리가 아닐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2000년대 힙합 발라드 연상케 하는 ‘콜드’

    타이틀곡 ‘콜드(COLD)’는 십센치(10CM) 보컬이 함께하는 감상적인 힙합 트랙이다.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한다. 살짝 엇나간 채 반복되는 까슬까슬한 비트에 한껏 발라드적으로 풀어 넣은 현악이 2000년대 ‘힙합 발라드’의 향취를 물씬 풍긴다. 마침 가족사의 비밀과 비극적인 유년기, 방황하는 청춘과 눈물이 가득한 뮤직비디오도 당대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다만 그때는 여성 보컬이 멜로디를 담당하는 경우가 흔했다면, 이 곡에서는 십센치가 등장한다. 여성 보컬의 우는 듯한 목소리가 낭만으로 소비되는 시절이 있었다. 그것을 고스란히 재연할 수 있는 남성이 있다면 그게 십센치다. 종종 울분에 찬 듯하던 남성 랩 자리는 영파씨가 차지하고 있는데, 보컬과 싱잉랩, 랩을 오가는 목소리는 왠지 이들의 다른 곡보다 더 ‘걸그룹’처럼 들린다. 그래서일까. 과거 힙합 발라드가 비극적인 정조를 아주 강하게 주장했다면, ‘콜드’는 좀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듯하다. 액면 그대로 이 감성에 축축하게 젖어들어도 좋고, 흥미롭다며 킬킬거려도 좋다. 옛날 힙합을 그리워해도 좋고, 그건 사실 조금 웃겼다고 해도 좋다. 과거를 정성 들여 참조하고 재치 있게 뒤트는 이 영리함은 양쪽 청자 모두를 사로잡을 준비가 돼 있는 듯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