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래식계에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10년 넘게 정경화, 정명훈, 조수미, 장영주 등의 몇몇 스타들에게 의존하던 클래식 무대에 젊고 신선한 얼굴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중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피아니스트 네 사람을 만나보았다.
임동민(26)은 오랫동안 동생 임동혁(22)의 그늘에 가려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열린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형제가 나란히 2위 없는 3위를 차지하면서 그는 비로소 ‘임동혁의 형’이 아닌 ‘피아니스트 임동민’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사실 임동민은 그전부터 부조니 콩쿠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등 이름난 국제 콩쿠르를 섭렵한 실력파다. 동생이 과감하고 화려한 연주를 즐긴다면 형은 사색적이고 감성적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
임동민은 5월31일과 6월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의 내한 연주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그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아무래도 러시아 오케스트라와는 러시아 작품을 연주하는 게 가장 나을 것 같았다”고 운을 뗐다.
“이상하게도 저는 독일에서나 러시아에서나 항상 러시아 선생님께 배워서 러시아 음악이 친숙합니다. 러시아에는 훌륭한 지휘자들이 많은데, 이번에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는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임동민은 20대답지 않게 진중하고 조심스럽다. 그는 클래식 음악 시장이 줄어들고 ‘기획 음반’이 늘어나는 최근의 추세에 대해 “이럴 때일수록 원점으로 돌아가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다. “클래식 청중이 줄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저는 그 수보다 제 연주를 들으러 와주는 진정한 청중에 대해서 더 자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뉴에이지는 굉장히 매력적인 장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더 실력을 쌓고 싶어요.”
감상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라두 루푸를 제일 좋아하며 요즘 베토벤과 쇼팽을 탐닉하고 있다는 그는 쇼팽 국제 콩쿠르 입상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느냐는 질문에 “쇼팽 콩쿠르는 제 인생의 큰 사건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라는 긴 길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성실맨’다운 대답을 들려준다.
1993년 동아 음악 콩쿠르 우승, 1997년 빈 뵈젠도르퍼 콩쿠르 우승, 빈 국립음대 최우수 졸업, 2001년 쇼팽 스케르초 전곡 음반 출반. 현재 오스트리아 빈 거주.
한때 김정원(31)은 곱상한 얼굴의 천재소년이었다. 열다섯 살에 빈 국립음대에 최연소로 수석 합격하고, 열일곱 살에 뵈젠도르퍼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인기 방송작가 이금림 씨가 그의 어머니라는 사실도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런 김정원이 어느새 준수한 청년이 되어 돌아왔다. 5월과 6월에 열리는 그의 독주회와 실내악 연주는 모두 신선한 시도로 관심을 끈다. 5월7일에 국립중앙박물관의 극장 ‘용’에서 그는 김동률, 하림 등 대중가수들과 한 무대에 선다. 또 6월7일에는 나루아트센터에서 ‘비엔나 숲으로부터’라는 제목의 낭만주의 음악 독주회를 열 예정.
“클래식에 낯설어하는 대중을 어떻게 클래식으로 끌어들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요. 그런데 대중이 어려워하는 건 클래식이라는 음악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둘러싸고 있는 형식인 것 같아요. 5월7일 연주회는 크로스오버가 아니라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러 오는 관객들에게 제가 클래식을 들려주는 거지요. ‘클래식도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있는 음악이니 한번 들어보세요’ 하고요. 클래식을 오래되고 딱딱한 음악이 아니라 편안한 음악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요.”
많은 연주자들, 특히 남자 연주자들에게 대학 교수는 지상의 목표다. 그러나 김정원은 담백하게 “나는 연주자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 세대 연주자를 양성하는 건 물론 아주 귀한 일이지요. 하지만 저는 무대에 섰을 때, 그리고 연주할 때의 희열이 무척 좋아요. 두 가지를 다 잘할 자신도 없고요. 연주 요청이 더 이상 안 들어오면 요리사로 직업을 바꾸려고요.(웃음)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연주자로서의 삶에 대한 불안을 가져본 기억은 없어요.”
유럽 연주 일정이 점점 많아져서 한국에 오기가 힘들어진다는 그는 “그래도 한국에서 가족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은 마음에 자꾸 한국 연주를 만들려고 한다”고. 가수 김동률과 그의 우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살 위인 김동률이 그의 홈페이지에 찾아와 “사실 내가 당신의 오랜 팬이다”라고 글을 쓰면서 둘의 우정이 시작되었다고.
연세대 음대·줄리어드 음악원 졸업, 2000년 이탈리아 산레모 피아노 콩쿠르 우승,‘전람회의 그림’ ‘센티멘털리즘’ 등 5장의 음반 출반.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박종훈(37)은 거침이 없다. 클래식과 재즈, 뉴에이지를 종횡무진 넘나들고, EBS의 ‘스페이스-공감’ 무대에 출연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콘서트를 이끈다. 2004년 한 해에 클래식 음반(‘전람회의 그림’)과 뉴에이지 음반(‘센티멘털리즘’)을 동시에 낸 것도 보통 연주자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 그러나 이 스타일리시한 피아니스트는 이런 전방위적 활동이 “전혀 외도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들었고, 여러 스타일의 곡을 써보곤 했어요. 다른 걸로 따지면 클래식과 뉴에이지만 다른 게 아니라 모차르트와 라흐마니노프도 굉장히 다릅니다. ‘다르다’고 음악을 구분 짓기 시작하면 끝이 없죠.”
그가 생각하는 ‘가장 다른 음악’은 클래식이냐 뉴에이지냐의 구분이 아니라 남의 곡과 자신의 곡이다. 남의 곡은 속속들이 연구한 뒤 연주해야 하지만, 자신의 곡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한결 자유롭게 연주하는 편이라고. 그는 벌써 자작곡 음반을 네 장이나 내놓았다. “작곡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는 내가 느낀 감정을 어떻게 온전히 담느냐 하는 겁니다. 현대음악적인 실험성도 필요하다고 보지만, 감성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 같은 음악은 피하고 싶어요.”
과감하고 시원시원한 터치가 인상적인 박종훈은 무소르그스키를 제일 좋아한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음반도 내놓았고 독주회를 할 때마다 무소르그스키의 곡은 빼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요즘 매진하는 작곡가는 베토벤. “지난해부터 이탈리아와 스위스에서 베토벤 실내악 시리즈를 연주하고 있어요. 첼리스트 비토리오 체칸티와 베토벤 첼로 소나타를 녹음하고 있는데 곧 음반이 나올 예정입니다.”
“한국은 새로운 홀과 젊은 청중이 많아서 좋고, 유럽은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러 오는 청중이 많아 좋다”는 그에게 여러 장르의 음악을 동시에 해서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명쾌하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데 힘들 리가 있나요?”
1997년 러시아 영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2위, 2002년 비오티 콩쿠르 1위, 2004년 제1회 금호음악인상 수상, 2005년 루빈스타인 콩쿠르 3위, 쇼팽 콩쿠르 결선 진출. 올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졸업.
손열음(20)은 벌써 숙녀가 된 것 같다. 갓 20대에 들어선 나이지만, 그녀는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올라 있다. 국제 콩쿠르 수상 경력도 한둘이 아니고 뉴욕 필하모닉, NHK 심포니 등 일급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할 때마다 “나이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하고 원숙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음대생들이 흔히 그렇듯 극성 엄마에게 이끌려 레슨을 받으러 다닌 것도 아니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동네 피아노 교습소에서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피아니스트가 내 운명’임을 절감했고 지금껏 한 번도 그 운명을 의심하지 않았다.
손열음은 열한 살 때부터 국제 콩쿠르에 출전했다. “떨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다 제 경험이 되는 거니까요.” 열여섯 살에 비오티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는 혼자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까지 갔다. “엄마가 고등학교 선생님이라서 저보다 더 바쁘세요. 그리고 외국이라고 해서 길 못 찾아가나요? 그런 건 한 번도 걱정 안 해봤어요.” 지금도 원주의 집을 떠나 혼자 살고 있는 그녀는 “나는 일하는 엄마가 늘 자랑스럽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2005년 임동민, 동혁 형제와 함께 쇼팽 국제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손열음의 연주는 당시 인터넷으로 결선 현장을 지켜보던 많은 음악팬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심사위원을 맡은 강충모 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열음이가 2차 예선까지 톱 5에 들 정도로 굉장히 잘 쳤는데, 결선 때 컨디션 난조였는지…”라며 아까워했다. 정작 본인에게 그때의 컨디션을 물어보니 묵묵부답. 다시 쇼팽 콩쿠르에 나갈 거냐는 질문에는 “한 번 나갔는데 뭐 하러 또 나가나요?” 하고 반문한다.
올가을 손열음은 그녀를 10년간 가르쳐온 김대진 교수의 문하를 떠나 하노버 음대로 유학 간다. “김대진 선생님을 통해 음악이 뭔지, 프로정신이 어떤 건지를 배웠다”는 그녀는 이제 자신에게 달려 있던 ‘음악 영재’의 꼬리표를 떼고 명실상부한 프로의 세계로 들어서는 셈이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 진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기교를 앞세우는 연주자가 점점 더 늘어가는데 저는 유명한 연주자보다 청중에게 진정한 음악을 들려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