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드 알 하가르 감독은 이집트에서 태어나 카이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장편영화 ‘작은 꿈들’로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뒤 영국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했다.‘룸 투 렌트’는 감독의 영국 유학 시절 경험을 그대로 담은 작품으로 이전 작품보다 훨씬 유머러스하고 따뜻하다는 평을 받는다. ‘룸 투 렌트’는 촬영은 런던, 감독은 이집트인, 촬영과 미술 디자이너는 프랑스인, 의상 디자이너는 노르웨이인, 남자 배우는 모로코인이 참여한 퓨전 영화다.
빌리 와일더의 코미디 영화 제목이 아니다.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한 아랍인 유학생의 팬터지를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가숙 서가숙. 고국인 이집트를 떠나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면서 웨이터, 벨리댄스 강사, 녹음 더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청년 알리는 처음 발을 디딘 런던에서 잘 곳이 없다. 사람에게는 집과 절이 있어야 하는데, 알리(사이드 타그마위 분)에게는 영화라는 ‘절(숭배 대상)’이 있기는 하지만 집이라는 지상 위의 방 한 칸이 없는 것이다.
알리의 성공을 향한 질주와 고된 아르바이트 속에는 런던이라는 코스모폴리턴적인 메가시티에서 아랍인이 갖는 사회적 위상이 숨겨져 있다. 말이 좋아 벨리댄스 강사지 그는 영국인이 마다하는 일을 대신 하는 하층 노동자로, 중년 여성에게 몸을 대주며 성적 착취까지 당한다. 그런 그가 이번엔 ‘그린카드(합법적인 비자)’를 얻기 위해 위장결혼을 하려다 게이인 사진작가(루퍼트 그레이브스 분)와 마릴린 먼로를 숭배하는 여배우 린다(줄리엣 루이스 분)를 만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었다면 당신은 ‘룸 투 렌트’라는 영화에서 마치 하니프 쿠레이시(터키 이민 2세로 영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영화 각본가) 각본의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성적 경계에 대해 강경 발언하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속편 같은 영화를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집트 출신으로 영화 주인공 알리처럼 런던에서 온갖 일 다 하며 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감독 칼리드 알 하가르는 훨씬 쉽고 영리한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는다. ‘룸 투 렌트’는 유럽에 입성한 아랍인들에 관한 고도의 정치적 발언이지만 유쾌하고 편안한 다국적 퓨전 장르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슬쩍 녹여내는 재치를 발휘한다.
알리가 방이 없어 런던을 전전한다는 설정 자체가 런던을 게토화하는 각종 문화권들을 도는 일종의 작은 여행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은 모든 문화를 섭렵하고 수용하면서 모든 종류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한다는 뜻이며, 이집트에 대한 유럽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한껏 비꼬는 장치이기도 하다. 한 예로 알리에게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각본을 써오라고 부탁했던 감독은 그 찬란한 이집트 문화유산을 배경 삼아 금색으로 치장된 ‘포르노’를 찍는다! 같은 맥락에서 중산층 백인 중년 여성에게 알리는 건장하고 ‘물건 좋은’ 아랍 남자일 뿐이다. 이 영화에서 ‘방’이란 이 한 몸 고이 쉴 수 있는 자본주의의 근간일 뿐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 속에 가지고 있는 공간, 즉 누군가가 끊임없이 채워주길 바라고 누군가 끊임없이 머물다 사라져가는 마음 한 조각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이트클럽 가수와 위장결혼하려다 사랑에 빠져
그 마음 한 조각과 분방한 캐릭터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해 칼리드 알 하가르는 스토리와 색, 음악, 편집, 연출 모두를 흘러넘치듯 영화에 부어넣는다. 마릴린 먼로를 닮은 나이트클럽 가수 린다와 위장결혼을 하려다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 알리는 마치 흔한 ‘그린카드’ 연애담 속 주인공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곧 환생과 윤회를 배경으로 하는 지고지순한 멜로의 이야기로 방향을 튼다.
여기에 실제로 프랑스의 게이 예술가 커플인 ‘피에르와 쥘’의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화면은 유럽풍과 아랍풍이 뒤섞여 장면 장면 화려한 색채와 시각적 이미지의 향기를 진하게 내뿜는다. 고대 이집트의 장엄함을 상징하는 금색과 석양의 낙조를 닮은 조명술은 알리가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분홍과 하늘과 연두로 바뀐다. 영화의 에너지는 샤피 부텔라의 라이 뮤직(아랍과 알제리 민속음악을 서구화한 팝 음악의 일종)에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 듣는 이의 귀에 묘하게 감기는 이 음악은 아랍 문화에 생소한 관객들에게도 친근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연출 역시 재빠르고 흥겹다. 영화 속에서 린다가 자신을 영국인과 미국인의 혼혈이라고 소개할 때 감독은 린다를 영국 국기 위에서 마릴린 먼로가 취한 관능적인 포즈로 사진을 찍게 하고 사진기가 찰칵거릴 때마다 영화 속 컷들은 점프를 한다. 한마디로 사이드 타그마위, 줄리엣 루이스, 루퍼트 그레이브즈 같은 배우들이 어우러져 유럽과 미국, 아랍의 기호 및 문화가 섞이고 성, 인종, 국가, 고급과 저급 등 모든 것의 경계를 뛰어넘는 무국적/ 다국적 에너지로 충만한 영화가 바로 ‘룸 투 렌트’다. 결국 알리가 런던에서 온갖 문화적 충돌을 경험하게 될 때 색과 빛, 음악들은 충돌하고 사라지다 다시 살아난다. 아랍의 생명력과 온갖 취향과 문화가 공존하는 활기찬 런던의 현재는 지극히 전형적이고 불경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방식으로 재창조되는 것이다.
영혼 잠식하는 불안 대신 흥겨운 해피엔딩
그렇다면 이것이 전부일까? 모든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과잉을 보이는 영화에서 주제라고 예외일 수 없다. 알리는 주변 사람들의 사생활을 시나리오에 이름 한 글자 틀리지 않고 그대로 써나간다. 그 때문에 그는 매번 방 주인의 미움을 사서 길거리로 쫓겨나지만 개의치 않는다. 결국 주변 사람들의 사생활을 착취해살아가는 게 작가라면, 알리는 런던에서의 유학생활을 영화로 탄생시킨 칼리드 알 하가르 감독의 분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자기 반영성(자신의 고유한 위상에 관심을 갖는 예술 태도)’이 아니고 무엇이랴.
알리는 결국 이러한 좌충우돌의 소동을 거쳐 그를 죽은 이집트 애인의 환생이라고 믿는 맹인 노인 사라를 만난다. 파스빈더 감독의 그 유명한 독일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모로코 출신의 청년 노동자와 백인 할머니가 결혼했던 딱 그 방식으로. 그러나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 대신 흥겨운 해피엔딩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아마도 당신은 ‘룸 투 렌트’를 보며 기존 이미지와의 숨바꼭질에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그 다국적 기호의 콜라주와 이미지의 기이한 합성이 ‘룸 투 렌트’의 묘한 매력이라는 것을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다. 자, 그렇다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각국의 노동자들이 서울이라는 메가시티에서도 알리처럼 누군가에게 방을 빌릴 수 있을까? 톨레랑스. 관용이란 단어를 막 체득하려 하는 이 도시에서 “방 좀 빌려주시겠어요?”란 질문은 어떤 메아리로 퍼질지. ‘룸 투 렌트’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지며 그 뿌리치기 힘든 벨리댄스를 영화가 끝난 뒤에도 계속 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