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돌이’ ‘유순이’ ‘먹순이’ ‘알돌이’ ‘츠돌이’….
이름치곤 참 묘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 산하 국립독성연구원(원장 최수영)에는 이처럼 독특한 이름을 지닌 동물이 9종이나 있다. 바로 형질전환 생쥐들이다.
이들은 독성연구원이 암·당뇨병·치매 등 인간이 앓는 난치병에 대한 연구와 관련 신약 개발을 위한 기반기술로 활용하기 위해 유전자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질병을 유발케 한 연구용 생쥐. 모두 독성연구원의 독자기술로 개발됐다.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독돌이’가 눈에 띈다. ‘독돌이’는 인간의 약물대사 과정에서 핵심적 기능을 하는 시토크롬이라는 인간 유전자를 주입한 세계 최초의 독성 평가용 생쥐. 인간과 동일한 약물대사 과정을 나타내기 때문에 의약품이나 다이옥신 등 각종 오염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 등을 규명하는 데 쓰인다.
‘유순이’는 유방암 유발 생쥐로 자궁암, 생식기암 등 악성종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이식됐다. ‘유순이’의 생체 조직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수의대에 제공돼 유방암 연구에 이용되기도 했다.
‘먹순이’는 당뇨병 유발 생쥐다. 당뇨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이식함으로써 당뇨병의 발병 메커니즘과 신약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 치매 유발 생쥐로는 ‘알돌이’ ‘츠돌이’ ‘하돌이’ ‘이돌이’ ‘머돌이’ 등이 있다. 치매를 일으키는 많은 질환들 가운데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병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인간과 유전적 동질성 ‘최고의 마루타’
독성연구원에 따르면, 이 쥐들은 일반 생쥐에서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 수정란을 만들고 거기에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 인간 유전자를 유전자 미세이식 기술을 활용해 주입한 뒤 대리모 생쥐에게 이식해 형질전환된 새끼를 얻는 방법으로 개발됐다. 인간 질병 유전자를 지녔는지 여부는 DNA 지문검사를 통해 확인됐다.
왜 이런 생쥐들을 개발한 것일까. 독성연구원 조정식(60) 실험동물자원팀장의 설명이다. “각종 의약물질에 대한 평가와 질병의 기작(메커니즘) 연구엔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동물에 대한 실험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동물보다는 대를 이어가면서 동일한 질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재현성을 지닌 실험용 모델동물이라야 실험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유전자조작을 통해 ‘창조’한 실험동물은 그런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왜 생쥐인가. 인간과 생쥐는 2만5000여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서로 다른 것은 몇백 개에 불과할 정도로 유전적인 동질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생쥐를 이용한 질병 치료제 연구는 인간의 질병 치료를 위해 불가피하다.
자연상태의 생쥐에서도 암이나 당뇨병에 걸린 개체가 발견되긴 하지만 연구용으로는 부적합하다. 발병의 인과관계를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독성연구원이 형질전환 생쥐 개발을 연구과제로 본격화한 것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앞서 언급한 9종의 형질전환 생쥐를 개발했고, 앞으로도 심혈관 질환 유발 생쥐 등 새로운 형질전환 생쥐를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 독성연구원이 보유한 형질전환 생쥐의 개체 수는 500여 마리. 한 종의 형질전환 생쥐의 지속적인 보전을 위해서는 일정 개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형질변환 생쥐의 개발에 사용된 것은 흔히 ‘마우스’로 불리는 생쥐다. 몸길이가 어른 가운뎃손가락만한 놈들로 몸무게는 20∼40g가량. 안타깝게도 국내엔 이런 쥐가 없어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가격은 1마리당 1만∼20만원 정도. 희소가치가 있는 질병 유발 생쥐는 100만∼300만원에 달한다.
생쥐의 습성은 어떨까. 놈들은 야행성이다. 생존 기간은 2∼3년. 먹이로는 고형사료를 먹는다. 성격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제각각이다. 온순한 놈, 포악한 놈…. 아주 흉악한 놈은 제 새끼를 잡아먹기도 한다. 독성연구원에선 이를 ‘식살(食殺)’이라고 부른다. 이는 외부로부터 가해진 강도 높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인간이 앓는 난치성 질환의 유전자를 지닌 생쥐들은 건강한 생쥐와 어떻게 다를까. 외형상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치매에 걸린 생쥐의 경우 행동실험을 해보면 정상 쥐에 비해 확실히 둔감하다. 수조에 우유를 부은 뒤 목적지까지 헤엄치게 하는 실험을 하면 주춤거리면서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암에 걸린 생쥐의 경우 해당 부위가 외부로 불룩하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당뇨병이 심한 생쥐는 오줌 양이 많고 체중이 감소하는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식약청에서 한 해 실험용으로 사용되는 동물은 생쥐를 포함해 무려 5만 마리. 식약청은 실험 과정에서 희생된 동물들을 위해 해마다 10월에 위령제를 지낸다.
연구자들이 고유 업무를 수행하며 따로 시간을 내서 연구에 몰두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험동물자원팀 관계자가 들려주는 에피소드.
“생쥐의 수정란을 옮길 때 피펫(극소량의 액체를 계량하거나 옮기는 데 쓰는 실험용 가는 관)을 입에 물고 빨아들여 수정란을 피펫에 흡착시키는데, 초보 연구원들이 너무 세게 흡입해 수정란을 먹은 일이 있다. 또한 수정란에 유전자를 주입할 때 수정란 조작기를 사용하는데 이 기계가 조작하는 사람의 마음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아 많은 수정란을 터뜨리는 바람에 유전자를 주입할 수정란이 하나도 남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연구팀이 당초 의도했던 대로 실험결과가 나왔을 때는 즐거운 뒤풀이를 했다.”
형질전환 생쥐 개발로 특허 취득
이런 노력 덕분일까. 자체 기술로 개발된 형질전환 생쥐들은 특허를 취득하는 기쁨도 가져다줬다. 독성연구원이 형질전환 생쥐와 관련해 낸 국내 특허출원은 모두 9건. 이 중 2건은 특허등록이 됐고, 다른 2건은 관련 논문을 내고 나서 뒤늦게 특허출원을 했거나 이미 다른 기관에서 유사한 내용의 특허출원을 한 탓에 특허등록이 거부됐다. 나머지 5건에 대해서는 현재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형질전환 생쥐의 개발이 갖는 또 다른 이점은 상당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지금까지 국내 제약사나 연구기관들은 실험에 필요한 질병 유발 생쥐의 상당량을 미국·일본 등지에서 비싼 값에 수입해 사용해왔다. 따라서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연구용 생쥐들은 수입 의존도를 낮춰 수입대체 효과를 낼 수 있다.
형질전환 생쥐의 다량 번식은 지금의 기술로도 가능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연구인력과 장비, 예산을 두루 갖춘 ‘질환모델센터’의 설립이 선행돼야 한다.
독성연구원 실험동물자원팀 황대연(36) 박사는 “질병에 걸리지 않은 일반 생쥐보다 특정 질병의 유전자를 가진 생쥐를 실험에 사용함으로써 실험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것이 최근의 세계적 추세”라며 “이는 실험을 위한 일반 생쥐의 희생을 줄여주는 부수적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간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하는 형질전환 생쥐들이 생명과학 분야에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 쥐들이 문득 ‘서울쥐, 시골쥐’ 우화에 나오는 ‘서울쥐’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이름치곤 참 묘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 산하 국립독성연구원(원장 최수영)에는 이처럼 독특한 이름을 지닌 동물이 9종이나 있다. 바로 형질전환 생쥐들이다.
이들은 독성연구원이 암·당뇨병·치매 등 인간이 앓는 난치병에 대한 연구와 관련 신약 개발을 위한 기반기술로 활용하기 위해 유전자조작을 통해 인위적으로 질병을 유발케 한 연구용 생쥐. 모두 독성연구원의 독자기술로 개발됐다.
면면을 살펴보면, 먼저 ‘독돌이’가 눈에 띈다. ‘독돌이’는 인간의 약물대사 과정에서 핵심적 기능을 하는 시토크롬이라는 인간 유전자를 주입한 세계 최초의 독성 평가용 생쥐. 인간과 동일한 약물대사 과정을 나타내기 때문에 의약품이나 다이옥신 등 각종 오염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 등을 규명하는 데 쓰인다.
‘유순이’는 유방암 유발 생쥐로 자궁암, 생식기암 등 악성종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이식됐다. ‘유순이’의 생체 조직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수의대에 제공돼 유방암 연구에 이용되기도 했다.
‘먹순이’는 당뇨병 유발 생쥐다. 당뇨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이식함으로써 당뇨병의 발병 메커니즘과 신약 개발에 활용될 수 있다. 치매 유발 생쥐로는 ‘알돌이’ ‘츠돌이’ ‘하돌이’ ‘이돌이’ ‘머돌이’ 등이 있다. 치매를 일으키는 많은 질환들 가운데 가장 흔한 알츠하이머병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인간과 유전적 동질성 ‘최고의 마루타’
독성연구원에 따르면, 이 쥐들은 일반 생쥐에서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 수정란을 만들고 거기에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 인간 유전자를 유전자 미세이식 기술을 활용해 주입한 뒤 대리모 생쥐에게 이식해 형질전환된 새끼를 얻는 방법으로 개발됐다. 인간 질병 유전자를 지녔는지 여부는 DNA 지문검사를 통해 확인됐다.
왜 이런 생쥐들을 개발한 것일까. 독성연구원 조정식(60) 실험동물자원팀장의 설명이다. “각종 의약물질에 대한 평가와 질병의 기작(메커니즘) 연구엔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동물에 대한 실험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정상적인 동물보다는 대를 이어가면서 동일한 질병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재현성을 지닌 실험용 모델동물이라야 실험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유전자조작을 통해 ‘창조’한 실험동물은 그런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왜 생쥐인가. 인간과 생쥐는 2만5000여 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중 서로 다른 것은 몇백 개에 불과할 정도로 유전적인 동질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생쥐를 이용한 질병 치료제 연구는 인간의 질병 치료를 위해 불가피하다.
자연상태의 생쥐에서도 암이나 당뇨병에 걸린 개체가 발견되긴 하지만 연구용으로는 부적합하다. 발병의 인과관계를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독성연구원이 형질전환 생쥐 개발을 연구과제로 본격화한 것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앞서 언급한 9종의 형질전환 생쥐를 개발했고, 앞으로도 심혈관 질환 유발 생쥐 등 새로운 형질전환 생쥐를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 독성연구원이 보유한 형질전환 생쥐의 개체 수는 500여 마리. 한 종의 형질전환 생쥐의 지속적인 보전을 위해서는 일정 개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생쥐의 수정란에 인간 질병 유전자를 주입하는 국립독성연구원 관계자.
생쥐의 습성은 어떨까. 놈들은 야행성이다. 생존 기간은 2∼3년. 먹이로는 고형사료를 먹는다. 성격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제각각이다. 온순한 놈, 포악한 놈…. 아주 흉악한 놈은 제 새끼를 잡아먹기도 한다. 독성연구원에선 이를 ‘식살(食殺)’이라고 부른다. 이는 외부로부터 가해진 강도 높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인간이 앓는 난치성 질환의 유전자를 지닌 생쥐들은 건강한 생쥐와 어떻게 다를까. 외형상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치매에 걸린 생쥐의 경우 행동실험을 해보면 정상 쥐에 비해 확실히 둔감하다. 수조에 우유를 부은 뒤 목적지까지 헤엄치게 하는 실험을 하면 주춤거리면서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암에 걸린 생쥐의 경우 해당 부위가 외부로 불룩하게 튀어나오기도 한다. 당뇨병이 심한 생쥐는 오줌 양이 많고 체중이 감소하는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식약청에서 한 해 실험용으로 사용되는 동물은 생쥐를 포함해 무려 5만 마리. 식약청은 실험 과정에서 희생된 동물들을 위해 해마다 10월에 위령제를 지낸다.
연구자들이 고유 업무를 수행하며 따로 시간을 내서 연구에 몰두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험동물자원팀 관계자가 들려주는 에피소드.
“생쥐의 수정란을 옮길 때 피펫(극소량의 액체를 계량하거나 옮기는 데 쓰는 실험용 가는 관)을 입에 물고 빨아들여 수정란을 피펫에 흡착시키는데, 초보 연구원들이 너무 세게 흡입해 수정란을 먹은 일이 있다. 또한 수정란에 유전자를 주입할 때 수정란 조작기를 사용하는데 이 기계가 조작하는 사람의 마음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아 많은 수정란을 터뜨리는 바람에 유전자를 주입할 수정란이 하나도 남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연구팀이 당초 의도했던 대로 실험결과가 나왔을 때는 즐거운 뒤풀이를 했다.”
형질전환 생쥐 개발로 특허 취득
이런 노력 덕분일까. 자체 기술로 개발된 형질전환 생쥐들은 특허를 취득하는 기쁨도 가져다줬다. 독성연구원이 형질전환 생쥐와 관련해 낸 국내 특허출원은 모두 9건. 이 중 2건은 특허등록이 됐고, 다른 2건은 관련 논문을 내고 나서 뒤늦게 특허출원을 했거나 이미 다른 기관에서 유사한 내용의 특허출원을 한 탓에 특허등록이 거부됐다. 나머지 5건에 대해서는 현재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형질전환 생쥐의 개발이 갖는 또 다른 이점은 상당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 지금까지 국내 제약사나 연구기관들은 실험에 필요한 질병 유발 생쥐의 상당량을 미국·일본 등지에서 비싼 값에 수입해 사용해왔다. 따라서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연구용 생쥐들은 수입 의존도를 낮춰 수입대체 효과를 낼 수 있다.
형질전환 생쥐의 다량 번식은 지금의 기술로도 가능하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연구인력과 장비, 예산을 두루 갖춘 ‘질환모델센터’의 설립이 선행돼야 한다.
독성연구원 실험동물자원팀 황대연(36) 박사는 “질병에 걸리지 않은 일반 생쥐보다 특정 질병의 유전자를 가진 생쥐를 실험에 사용함으로써 실험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것이 최근의 세계적 추세”라며 “이는 실험을 위한 일반 생쥐의 희생을 줄여주는 부수적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간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 하는 형질전환 생쥐들이 생명과학 분야에서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 쥐들이 문득 ‘서울쥐, 시골쥐’ 우화에 나오는 ‘서울쥐’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