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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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쌀 구수한 그 시절의 ‘손맛’

  • 시인 송수권

    입력2004-10-26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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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쌉쌀 구수한 그 시절의 ‘손맛’
    ‘올갱이’는 충청도 방언으로 ‘도슬비’ ‘베틀올갱이’라고도 한다. 전라도에선 ‘대사리’, 강원도에선 ‘꼴부리’, 경상도에선 ‘파리골뱅이’ ‘사고동’ ‘고댕이’ ‘고동’이라고도 하며 표준말로는 ‘민물 다슬기’라 부른다.

    올갱이는 청정수역에서 청정산소와 이끼의 성분인 클로렐라를 섭취하므로 성인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주시 상당구 중앙공원 근처 서문오거리에서 YMCA 옆골목에 위치한 ‘상주할머니 올갱이국’(043-256-7928)은 30여년의 전통을 갈무리해 오면서 올갱이 해장국과 올갱이 무침으로 이름 높다. 딸과 함께 가게를 운영하는 김월임씨(76)는 욕쟁이 할머니로도 통한다. 밑반찬도 깍두기와 초고추절임(여름에는 풋고추) 두 가지뿐이지만 이 집을 찾는 손님은 하루 100여명에 이른다.

    반딧불이가 뜨는 여름 밤 냇가는 다슬기의 서식지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슬기는 반딧불이의 먹이이기 때문이다. 반딧불이 보호구역인 무주 구천동(설천면)은 대표적인 다슬기 서식처라 해도 좋을 듯하다.

    따라서 올갱이국이야말로 해장국으로선 최상품에 드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김월임씨에 따르면 다슬기를 물에 푹 삶아 건져내 식구들이 둘러앉아 바늘로 속을 하나하나 뽑아내는 일로 한 세월 좋게 허비했다고 말한다. 다슬기를 삶아내면 초록빛이 감도는 국물에 된장을 풀고 양념을 해서 육수로 쓴다. 이 육수에서 뽑아낸 속을 밀가루에 한 번 굴려 부추와 함께 다시 솥에 안치고 마늘과 고추 양념을 풀어 푹 끓여낸다. 밀가루가 들어가 국물이 다소 걸쭉해지고, 해감내와 함께 다슬기의 쌉쌀한 맛도 없어지기 때문이란다.

    걸쭉한 국물에 밥 한술 말아 떠먹으면 땀이 훈훈하게 배어나며 온몸이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러므로 이 음식은 탁기가 아니라 청기(淸氣)를 보하는 선식(仙食)과도 같다. 욕쟁이 할머니는 반딧불이가 다슬기를 먹는다는 말에 “누가 아남? 올갱이국 많이 먹으면 몸에서 반딧불이 새어나올지!” 하며 웃는다. 그러고 보니 여름 밤을 환상적으로 수놓는 왕눈이 반딧불이나 애반딧불이가 되어 하늘로 후끈 떠오를 것 같은 청정한 기운이 온몸에서 솟아나는 것 같다. 술국으로 더없이 좋겠다고 하니 “누가 아남? 신선이 될지!” 하고 맞받아친다. “옛날에야 무심천이 참 맑기도 했지” 하며 회상에 잠기기도 한다.



    처음엔 칼국수집을 운영하며 장터에 나오는 올갱이를 사다 고향에서 하던 솜씨대로 된장찌개를 끓여내곤 했는데, 그것이 인기가 있어 올갱이 전문집으로 아예 문패를 바꿔 달았다고 한다.

    “자리가 100석인데, 점심시간엔 모자랄 정도니 이만하면 소원풀이 한 셈 아닌가유?”라며 김할머니는 웃는다. 새벽 6시30분이면 문을 열고 7시부터 손님이 들어와 아침 해장을 하는데 후루룩 국물 떠먹는 소리가 물텀벙 소리를 낸다고 우스갯소리도 한다.

    쌉쌀 구수한 그 시절의 ‘손맛’
    상주할머니 집에서 해장국을 들고, 흥덕사지(1377년)를 들렀다가 청주시내 고인쇄박물관에 들르면 무엇보다 값진 여행일 것 같다. 금속활자로 찍었다는 ‘직지심체요절’은 독일의 쿠텐베르크가 만든 금속활자보다 70년이나 앞선 유네스코 지정 유산이기에 반드시 찾아볼 문화재이기도 하다. ‘직지’(直指)란 곧 불립문자(不立文字), 이심전심(以心傳心),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내용 중 ‘직지인심’에서 따온 말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인 ‘직지’야말로 우리 역사상 한국이 세계의 문명국가로 인정받는 놀랄 만한 대사건이다. 어쩌면 금속활자의 금채와 환상적인 반딧불이는 서로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슬기를 먹고 사는 반딧불이처럼, 청주를 여행하면 꼭 올갱이국물을 먹고 싶은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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