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태권V가 다시 만들어진다고?” 이건 정말 빅뉴스였다. 영화제작사 신씨네와 3D 애니메이션 제작사 디지털드림스튜디오가 ‘로보트 태권V’를 3차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작년 9월. 제작사측은 1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로보트 태권V’를 극장용, TV 시리즈용, 게임으로까지 선보이겠다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러나 한 가지 남는 의문. 그게 언제 적 건데, 아직도 상품성이나 경쟁력이 있을까? 엄청난 기술의 진화를 이룩한 첨단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고 있는데 아직도 ‘로보트 태권V’라니. 촌스럽고 고리타분한 옛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뭘 하자는 걸까.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다. 최근 만화가 김형배씨가 지난 76년에 그렸던 ‘로보트 태권V’ 단행본을 복간한 3권짜리 만화책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초판 1만부가 완전히 동나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이를 출간한 출판사 G&S는 다음 달까지 4권을 더 출간할 예정이다. 대학가에는 태권V 관련 자료로 내부를 장식한 카페가 생겨났고, 얼마 전에는 인터넷 패러디신문 ‘딴지일보’에서 ‘로보트 태권V’ 극장판을 CD로 복원해 시판중이다. 올 5월엔 DVD까지 출시된다는 소식이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 사이트에는 ‘태권V’ 관련 동호회도 10여개에 이른다. 이 땅에 만화영화라는 것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절에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 이들 사이트의 열혈회원들은 대부분 초등학생 시절 태권V를 보고 자란 20대 후반에서 30대에 이르는 ‘젊은’ 어른들이다. 그러나 태권V를 직접 본 적 없는 N세대들까지도 동호회에 가입해 비디오를 돌려보고 포스터, 장난감 등의 옛날 물건을 사 모으며 즐거워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동호회 회원들의 말에 따르면 태권V와 관련된 물건들은 웬만해선 구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고 한다. 이런 물건들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자’까지 생겨나 포스터 한 장에 10만원이 넘을 정도로 ‘부르는 게 값’인 경우도 많다고 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가히 ‘로보트 태권V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지금의 기술로 보면 단순하고 조악하기까지 한 20여년 전의 ‘고철 로봇’이 이제 와 새삼스레 대중문화 전면에 부상하는 이유는 뭘까.
딴지일보 원미동 팀장은 “70, 8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 중 열에 여덟은 지금도 로보트 태권V 주제가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태권V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들에게 태권V는 거대한 추억의 결정체이며,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아이콘이다”고 설명한다.
그 정도인가? 어느 세대나 그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가 있고 추억의 상품이 있게 마련 아닌가. ‘로보트 태권V의 존재는 보다 특별한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우선 태권V의 탄생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보트 태권V’ 1편이 나온 1976년은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극장가가 침체에 빠지고,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바람이 사그라지던 때였다. 1971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후 5년간 국내에서는 단 한 편의 애니메이션도 만들지 않았다. 바로 이런 국산 애니메이션의 암흑기에서 ‘로보트 태권V’는 탄생했다. 또한 당시는 MBC TV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를 방영(1975년)해 한창 인기를 모으던 시기. 태권V는 저절로 ‘마징가Z’에 대적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으면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 아닐까.
“어릴 때 보고 자란 만화영화가 대부분 일본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소중한 추억을 훼손당한 듯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나마 태권V가 있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 세대에게 태권V는 단순한 만화영화 그 이상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카페 ‘내 친구 태권V’의 방장 송창훈씨(28)는 태권V가 일본 만화의 홍수 속에서 유일하게 ‘우리 것’임을 내세울 수 있었던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로봇 태권V는 일본의 슈퍼로봇보다 월등하게 큰 56m의 최고 거대 로봇이다.”
“우리의 애니메이션 역사를 통틀어 기술적 완성도나 구성의 독창성에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유일한’ 때가 태권V 시기였다.”
이러한 마니아들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 태권V 신드롬에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유달리 짙게 깔려 있다. 이는 최근 오노 사건에서 불거진 반미주의와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신세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애국주의’와 결합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신세대들에게 정치적 민족주의는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문화적 민족주의는 훨씬 자유롭고 즐겁게 여긴다”고 말한다.
태권V 살리기에 가장 주축이 되는 세대는 역시 386세대. 문화적으로 혜택이 적었고 갈증이 많았던 이들 세대가 사회적·경제적으로 안정된 위치를 차지하면서 어린 시절 추억의 상징인 태권V를 통해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상실했던 무언가를 보상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이를 프레드릭 제임슨(미국의 문예평론가)의 ‘역사 향수주의’로 설명한다. “역사 향수주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화양식이다. 역사, 즉 과거의 추억을 동시대적 유행 형식으로 끌어와 향유하고 즐기는 것으로, 386세대의 동창회 문화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달고나’ ‘쫄쫄이’ 같은 옛날 과자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사먹으면서 태권V 만화를 뒤적이는 386세대의 취미는 퇴행적인가. 미디어평론가 변정수씨는 이에 대해 “현재는 불만스럽고, 미래는 불안한 속에서 순수하고 평안했던 과거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심리”라고 정의한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나마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태권V가 ‘두 팔을 곧게 앞으로 뻗어’ 다시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남는 의문. 그게 언제 적 건데, 아직도 상품성이나 경쟁력이 있을까? 엄청난 기술의 진화를 이룩한 첨단 애니메이션이 쏟아지고 있는데 아직도 ‘로보트 태권V’라니. 촌스럽고 고리타분한 옛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뭘 하자는 걸까.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게 아니다. 최근 만화가 김형배씨가 지난 76년에 그렸던 ‘로보트 태권V’ 단행본을 복간한 3권짜리 만화책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초판 1만부가 완전히 동나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이를 출간한 출판사 G&S는 다음 달까지 4권을 더 출간할 예정이다. 대학가에는 태권V 관련 자료로 내부를 장식한 카페가 생겨났고, 얼마 전에는 인터넷 패러디신문 ‘딴지일보’에서 ‘로보트 태권V’ 극장판을 CD로 복원해 시판중이다. 올 5월엔 DVD까지 출시된다는 소식이다.
그러고 보니 인터넷 사이트에는 ‘태권V’ 관련 동호회도 10여개에 이른다. 이 땅에 만화영화라는 것이 처음으로 등장했던 시절에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 이들 사이트의 열혈회원들은 대부분 초등학생 시절 태권V를 보고 자란 20대 후반에서 30대에 이르는 ‘젊은’ 어른들이다. 그러나 태권V를 직접 본 적 없는 N세대들까지도 동호회에 가입해 비디오를 돌려보고 포스터, 장난감 등의 옛날 물건을 사 모으며 즐거워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동호회 회원들의 말에 따르면 태권V와 관련된 물건들은 웬만해선 구할 수 없을 만큼 귀하다고 한다. 이런 물건들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자’까지 생겨나 포스터 한 장에 10만원이 넘을 정도로 ‘부르는 게 값’인 경우도 많다고 하지 않는가. 이쯤 되면 가히 ‘로보트 태권V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지금의 기술로 보면 단순하고 조악하기까지 한 20여년 전의 ‘고철 로봇’이 이제 와 새삼스레 대중문화 전면에 부상하는 이유는 뭘까.
딴지일보 원미동 팀장은 “70, 8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 중 열에 여덟은 지금도 로보트 태권V 주제가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태권V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들에게 태권V는 거대한 추억의 결정체이며,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아이콘이다”고 설명한다.
그 정도인가? 어느 세대나 그 세대가 공유하는 문화가 있고 추억의 상품이 있게 마련 아닌가. ‘로보트 태권V의 존재는 보다 특별한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우선 태권V의 탄생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보트 태권V’ 1편이 나온 1976년은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극장가가 침체에 빠지고,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 바람이 사그라지던 때였다. 1971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후 5년간 국내에서는 단 한 편의 애니메이션도 만들지 않았다. 바로 이런 국산 애니메이션의 암흑기에서 ‘로보트 태권V’는 탄생했다. 또한 당시는 MBC TV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마징가Z’를 방영(1975년)해 한창 인기를 모으던 시기. 태권V는 저절로 ‘마징가Z’에 대적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으면서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 아닐까.
“어릴 때 보고 자란 만화영화가 대부분 일본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소중한 추억을 훼손당한 듯한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나마 태권V가 있어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우리 세대에게 태권V는 단순한 만화영화 그 이상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카페 ‘내 친구 태권V’의 방장 송창훈씨(28)는 태권V가 일본 만화의 홍수 속에서 유일하게 ‘우리 것’임을 내세울 수 있었던 가치 있는 작품이라고 말한다.
“로봇 태권V는 일본의 슈퍼로봇보다 월등하게 큰 56m의 최고 거대 로봇이다.”
“우리의 애니메이션 역사를 통틀어 기술적 완성도나 구성의 독창성에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유일한’ 때가 태권V 시기였다.”
이러한 마니아들의 주장에서 알 수 있듯 태권V 신드롬에는 민족주의적 감정이 유달리 짙게 깔려 있다. 이는 최근 오노 사건에서 불거진 반미주의와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신세대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애국주의’와 결합해 더욱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신세대들에게 정치적 민족주의는 부담으로 다가오지만, 문화적 민족주의는 훨씬 자유롭고 즐겁게 여긴다”고 말한다.
태권V 살리기에 가장 주축이 되는 세대는 역시 386세대. 문화적으로 혜택이 적었고 갈증이 많았던 이들 세대가 사회적·경제적으로 안정된 위치를 차지하면서 어린 시절 추억의 상징인 태권V를 통해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고, 상실했던 무언가를 보상받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화평론가 이동연씨는 이를 프레드릭 제임슨(미국의 문예평론가)의 ‘역사 향수주의’로 설명한다. “역사 향수주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문화양식이다. 역사, 즉 과거의 추억을 동시대적 유행 형식으로 끌어와 향유하고 즐기는 것으로, 386세대의 동창회 문화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달고나’ ‘쫄쫄이’ 같은 옛날 과자를 인터넷으로 주문해 사먹으면서 태권V 만화를 뒤적이는 386세대의 취미는 퇴행적인가. 미디어평론가 변정수씨는 이에 대해 “현재는 불만스럽고, 미래는 불안한 속에서 순수하고 평안했던 과거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심리”라고 정의한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나마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의 친구’ 태권V가 ‘두 팔을 곧게 앞으로 뻗어’ 다시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다.